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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먀우 Sep 19. 2020

당신의 독일은 내 독일과 다를 거에요

당연한 소리를 길게 해 봄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모든 사람의 삶은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여러 요인들로 인해 다를 수 밖에 없다. 유전, 기후와 환경, 나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은 개인의 삶을 거의 대부분 결정짓는다.


일단 개개인이 가진 유전적인 특성이 다르다. 내가 뭘 할 때 기쁜지, 어떨 때 슬픈지를 포함한 상당수의 개인적 특질들은 각기 다르게 작동한다. 물론 우주 전체로 보았을 땐 인류 내에서의 유전적 정보값의 차이가 대동소이하기에, 남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보면 어느정도 내가 뭘 좋아할 지 대강의 예측이 가능하다. (어쨌거나 초음파를 쏘고 바닷속에서 생해파리를 먹거나 산소가 없는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개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미세한 차이를 아주 크게 증폭시키는 것이 가능해진 현대 사회에서 행복의 디테일을 발견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그 다음은 개인이 태어나는 시간과 공간에 따른 맥락이 다르다. 16세기 힙스터가 알고 있는 과학은 새로운 걸 멀리하는 21세기 사람이 접하는 기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이집트에서의 삶과 북극에서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는 만큼, 자연과 기후 또한 삶의 큰 틀을 결정한다. 기후에 따라서 재배할 수 있는 작물과 생존할 수 있는 야생동물의 종류, 토지 면적당 인구 부양력이 달라진다. 시, 공간적 맥락은 삶의 모습과 생존 전략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개인이 바꿀 수 없는 큰 틀들이 정해지고 나면, 지엽적인 사회 문화적 맥락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피부색, 성별, 키, 외모와 같은 가만 있어도 항상 드러나 보이는 유전적 요인들과, 경제적, 교육 수준, 구사하는 어휘력, 문화적 백그라운드와 같은 내 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들이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어디에 가고, 무엇을 하고, 삶의 철학은 무엇이고, 향후 목표는 무엇인지. 주변 맥락 속에서 권장되는 삶의 방식은 메뉴판처럼 선택의 분기점마다 들이밀어진다. 누군가는 버거와 세트메뉴로 구성된 패스트푸드점 메뉴판을 받아들고, 다른 사람은 파인 다이닝 메뉴판을 받아들고 전식, 본식, 후식을 고른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남들보다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한참을 고민하다 메뉴판에서 고개를 들어 그 중 하나를 시켜먹는 같은 식당 속 사람들을 둘러본다. 아무거나 하나를 모험 삼아 시킬 수도 있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뭐가 괜찮은 지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 메뉴판을 곱씹어 읽고 어떤 게 나올 지 상상하며 충분히 숙고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선택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누군가는 빨리 선택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자기가 진짜 원하는지도 알 수 없는 메뉴를 주문한다. 다른 누군가는 옆 사람이 메뉴판을 채 가고는 이거 먹어, 이게 맛있대 하고 대리 선택을 당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대부분은 내가 받아 든 메뉴판 안에서 어떻게 한 가지를 시킨다. 메뉴판을 덮고 그 식당을 박차고 나가 다른 식당으로 들어가 선택을 0부터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리스크가 따른다. 이미 앉아있는 곳에서 선택을 내리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고, 익숙하고, 안전하다. 이미 내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일 때도 잦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매일 가던 단골 식당에서 나와 처음 보는 다른 식당에 들어가는 일이다. 어느 나라에서 출발해 어디가 종착지가 되었느냐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다. 어느 식당엔 "여성 출입 금지"가 붙어있기도 하고, 어느 식당에선 들어서자마자 "우리와 다르게 생겼어" 하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문화적 백그라운드를 얼마나 공유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브랜드의 같은 버거집일 수도 있고, 듣도 보도 못한 분자요리를 파는 식당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컨텍스트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큰 임무를 지게 되었다는 점, 다른 세계의 레퍼런스를 가지고 그 세계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점이 있다는 것, 같이 앉아있던 사람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점은 누구나 엇비슷하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생겨나는 비슷한 생각들과 정서들이 있고, 또 살고 있는 나라에서 오는 다른 불평들과 만족감들이 존재한다. 일년에 한 번 찾아보기도 힘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기분이나, 언어로부터 오는 갑갑함, 외국인이라는 입장에서 오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사회적 위치는 새로운 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교적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들을 압도하는 개인의 경험 차가 존재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굴 만났느냐, 무엇을 전공했느냐, 어떤 신분으로, 언제, 어느 나라에 갔느냐, 누구랑 같이 갔느냐, 어느 도시에 살고, 어느 정도의 돈이 있느냐, 정착을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 정보가 얼마나 있는가, 그 이상의 요인들에 따라 삶은 수만 수천만개로 갈라진다. 한국 사람들의 삶이 하나도 같지 않은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독일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그렇다. 누군가는 독일어를 하나도 못 해도 취업해 일하며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누군가는 일을 구하지 못해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누군가에겐 수많은 먼지차별 (마이크로 어그레션) 이 그 사람의 자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누군가에겐 인생을 흔들 만큼의 큰 타격이 된다. 누군가는 외국어를 학습해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생각들을 끄집어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평생 모국어와의 격차가 한이 된다. 누군가는 가족을 떠나와 외롭고, 누군가는 그 자유에 기뻐한다. 누군가는 인정받지 못하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받게 되고, 누군가는 인정받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2019년 외교부가 발표한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독일이 유럽 내에서는 영국(40,770명)을 제치고 거주 중인 한인이 44,864명으로 가장 많다 (p. 22). 하지만 이는 미국의 254만명 (p. 19)을 따라잡기엔 한참 역부족인 숫자다. 그래서 독일과 유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전투애로 뭉치기도 하지만, 가끔 그 삶의 모습이 과도하게 뭉뚱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각각은 판이하게 다른 환경에서, 명백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잡지에 기고할 정도로 독일어를 유려하게 하며, 누군가는 4인 가족의 형태로 독일에 오고, 누군가는 이미 와서 정착해 있는 가족이 있고, 누군가는 생활하기 넉넉한 돈을 가지고 독일에 온다. 누군가는 외로움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견딜 수 있고, 누군가는 날씨에 크게 영향 받지 않고, 누군가는 독일 빵을 맛있어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내 세계관을 통째로 재개편하는 것을 견딜 수 있다. 모두는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독일에 와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나라는 한 개인의 단편적인 기록들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풀어낼 수 없는 생각들과 삶의 단편들이다. 사실은 명확하게 남겠지만,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모쪼록 이 모든 글들은 내 '독일을 싫어하는 1001가지 이유'의 회고록이 될 테지만, 내가 독일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적응하여 즐겁게 살고 있다. 독일은 분명 내가 쓰는 것 이상의 것이며, 내가 한계라고 생각했던 선을 누군가는 만나지 않거나, 누군가는 더 빨리 만날 것이다.


혹시나 독일에서의 살이에 관심이 있다면, 내가 그 땅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 지 궁금하다면, 인생 향후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 지 궁금하다면, 여러 가지 정보와 남의 경험들을 찾아서 충분히 읽어 본 다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나랑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뜻을 가지고 떠난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랑 정확히 일치하는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을 확률이 아무래도 이민 혹은 유학으로 유명한 나라들보다 아무래도 보다 적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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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2019). 재외동포현황 2019. http://www.mofa.go.kr/www/wpge/m_21507/contents.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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