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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위원 살인 용의자로 몰려 도망자 신세

[장사꾼 송 여인의 기막힌 인생 1부]

보위원 밥 해 먹이던 부자 장사꾼 



2003년 함경북도의 한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송 여인은 먼 거리 장사꾼이었다. 그녀는 90년대 초 남들이 장사라는 것을 모를 때부터 국경 쪽으로 먼 거리 장사를 다녔다. 당시 중국에서는 명태, 낙지 같은 북한 해산물의 인기가 높았다. 북한 해산물이 국경을 통해 물밀 듯이 중국으로 밀려들어갔다. 바다를 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송 여인은 국경 장사꾼들과 거래를 트며 개인무역에 동참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국가무역은 알아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개인무역이란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듯이 개인주의가 자라고 자본주의에 눈뜨기 시작한 시기였다.


송 여인이 살던 지역은 바다를 낀 고장이라 돈만 있으면 많은 양의 해산물을 사들일 수 있었고, 역전 보안원들과 사업하면 많은 양의 짐도 기차로 헐하게(어렵지 않게) 운반할 수 있었다. 여인은 달에 한 번씩은 고정된 직업처럼 국경을 오갔다. 몇 년을 장사하니 동네에서 부자라고 불릴 정도로 살림이 풍족해졌다. 고난의 행군으로 시내 바닥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어갈 때도 여인의 장사는 멈출 줄 몰랐고 여전히 잘 되었다. 이사를 간 큰 집도 장사꾼들이 중국과 거래해서 가져오는 현대식 타일과 벽지로 멋지게 꾸려 놓았다. 집에 오가는 사람들 모두 그녀를 부러워했다.


거기다가 남편이 큰 수산기지에서 인수원으로 일하고 있어서 잘 물어들이는 바람에 항상 먹거리가 넘쳐나고 걱정이 없었다. 남들이 기름 한 병을 사서 방울방울 떨구어 먹을 때 여인은 병째로 사두고 푼하게(넉넉하게) 먹었다. 부족한 것이 없이 사는 그녀의 집에는 남편의 공장 간부들과 동 간부들, 보위원들, 보안원들까지도 늘상 기웃거렸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베풀지 않는 송 여인이었지만 간부들과 보위원, 보안원들에게는 통이 컸다. 공산국가에서는 잘 살아도 죄였다. 자꾸 나다니는 여인에 대해 보이지 않는 눈초리들이 오갔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알랑거려야(비위를 맞춰야) 했다.


무더위가 시작된 여름 날, 점심 때가 훨씬 지난시간이었다. 더운 날씨지만 전기가 없어 선풍기는 장식품처럼 윗방 구석에 틀어 박혀있었다. 여인은 양 쪽문을 활짝 열어 제쳐놓고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으로 몸을 식히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보위부의 반탐과 보위원이 배를 슬슬 만지며 문 안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송 아줌마, 있소? 물 좀 먹기오. 날씨가 왜 이리도 덥고 목은 왜 이리도 타드는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여인이 뛰어 나왔다. 보위원은 아직도 배를 슬슬 문지르고  서있었다. 여인은 눈치를 제꺽 알아차렸다. 배가 고프다는 소리였다. 세월이 하도 힘들다보니 점심을 굶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보위원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인은 가여운 생각이 들어 냉큼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어이구, 보위원동지, 어서 들어옵쇼. 시장하시죠? 밥 드시고 가소.”
“아, 거 뭐 밥까지야, 먹긴 먹었는데……. 좀 그러네요. 들어가면 신세라니까.”


반탐과 보위원은 좀 멋쩍은 듯이 하더니 신발을 벗고 넙죽 방안에 들어와 앉았다. 극도로 어려운 때라 체면을 가릴 형편이 못 되었다. 조금 후, 여인은 알뜰하게 밥상을 챙겨 들여왔다. 잠시 후 반탐과 보위원이 차려 준 밥을 한 그릇 뚝딱 다 먹고 일어섰다.


“사실 배가 고팠소. 송 아줌마 아니면 지금 같은 세월에 뉘 집에서 밥 한 그릇 얻어먹을 데가 있겠소? 점심에 집에 들어가니 아들 녀석이 손가락 빠는 바람에……. 이 신셀 잊지 않겠소.”


송 여인이 일어서 보위원의 발을 내려다보니 덧댄 양말에 감자알 같은 엄지발가락이 빤히 내밀고 있었다. 얼른 일어나 윗방에 있는 서랍장에서 새 양말 한 컬레를 쥐어주었다.


“갈아 신고 가우다.”
“이 신세를…….”


보위원은 감동에 젖은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래서 송 아줌마 일에는 내가 목숨을 내대고 막아 나선다오. ”


여인이 잘 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 반에서는 중년의 반장이 여맹원들의 동원에도 잘 참가하지 않고 장사만 다니는 송 여인을 자본주의 냄새가 난다고 보위부에 꼬집기 일쑤였다. 더욱이 중국에 친척이 있고 국경으로 장사를 다니는 것이 보위부의 표적으로 찍혀 있기도 했다. 그걸 막아주고 알려주는 것이 반탐과 보위원이었다.


송 여인은 시라져 가는 반탐과 보위원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정부는 보위원들에게만은 배급을 끊기지 않고 줬다. 일년 분 식량을 한 번에 몰아 줬지만 정식 배급분량은 6개월 분이나 다름없었다. 원래의 배급에서 30%를 자르는데다, 검부러기나 돌같은 불순물이 가득하고 물에 불린 것 같이 젖은 옥수수를 다듬어 말리고 나면 6개월 식량이 빠듯하다. 거기에다가 쌀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었다. 불도 때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하고 아이들을 공부도 시켜야 하니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했다. 거기에다 보위부, 보안소 가족들은 장사를 못하게 했다. 마누라가 장사를 하는 날에는 보위부에 사직서를 내야 했다. 그러니 고작 6개월분 식량으로 죽을 써서 1년을 살아야 하니 죽을 지경으로 살아간다.


보위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송 여인


보위원을 보내고 시계를 보니 체육구락부에 다니는 딸 승희가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승희는 훈련을 하고 나면 들어서는 순간부터 배고프다고 아부재기(아우성)를 친다. 두어 시간 후면 일 나간 남편도 돌아온다. 저녁에 먹으려고 남긴 반찬들을 보위원에게 말끔히 먹인터라 저녁준비를 다시 해야 했다. 여인은 불 아궁이를 열어 놓고 반찬감들을 다듬기 시작했다. 물을 부어놓은 가마가 끓어 번지기 시작하자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문을 닫았다. 가마에 기름을 두르기 전에 하는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어렵게 살아가는 세월에 밥술을 뜨고 기름 냄새까지 잔뜩 풍기는 것이 동네사람들에게 죄스러운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문을 닫아도 냄새는 거미줄로 동여 놓은 듯 숨길 수 없이 솔솔 빠져나갔다. 벌써 길가에서는 “아, 맛있는 냄새, 기름 냄새…” 하고 흡흡 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조금 후, 저녁 준비가 거의 끝나 앞치마를 벗으려는데 복도에서 구둣찡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보안원이나 보위원들만이 이 더운 날에도 구두를 신고 다닌다. 그런데 한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고 몇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여러 사람이 누구네 집으로 가나?’ 여인은 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구둣발 소리를 가늠하며 설마 우리 집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 앞에서 구두찡 소리가 멎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인가? 아니면 맞은 편 집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 이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쾅, 쿵쾅”


여느 때의 문 두드림 소리보다 강렬한 울림이었다.


“누구요?”


여인이 문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을 때 밖에서도 잡아채고 있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여인도 함께 밀려나갔다. 낯이 익은 군 보위부의 반탐과장이 두 명의 보위원과 함께 서 있었다. 여인은 이 사람들이 왜 왔을까? 하고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모두 눈빛이 날카로웠다. 사적인 일로 함께 몰켜(몰려) 올 사람들이 아니었다. 반탐과장이나 그 옆의 보위원들은 이미 송 여인과 안면이 깊었다. 모두 몇 차례씩 송 여인이 지어준 밥을 먹고 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리를 지어 출입한 적은 없었다. 전처럼 살갑게 다가들던 표정은 다 어디가고 심각한 얼굴들이 차갑게 내려다보고 섰다. 무슨 일이 있어서 왔다는 느낌이 확실히 전해졌다.


잘 사는 것도 죄가 되는 세상이라 잘사는 죄를 감추기 위해 그들이 오면 아낌었이 주던 송 여인이었다. 눈빛만 보고도 알아차릴 만큼 눈치가 단련된 여인은 곧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저번에 갔다 온 국경장사가 규모가 큰 장사여서 아마 그게 잘못 걸려든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국경장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잘못 걸리면 안기부 돈을 먹었다고 걸고 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걸리면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세상이었다. 그는 장사를 다녔지 보위부가 몰려올 정도로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숨이 차오르고 당황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여인은 이 순간만큼은 사투리가 사라지고 표준어가 튀어나왔다.


“아줌마, 다른 말 말고 빨리 옷 입고 나오오. 보위부에 다녀올 일이 있소. 잠깐이면 되오.”


앞에 선 보위원이 급하고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여인은 대답도 못한 채 윗옷만 주어입고 따라섰다. 보위부에 당도했을 때에야 여인은 그제야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아까 오후에 집에 들려 밥을 먹고 간 그 보위원이 여인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의 산기슭에서 칼에 찔려 숨졌던 것이다. 거기다가 꽁무니에 찼던 권총까지도 사라졌다. 보위원은 발견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출혈이 심해 숨지고 말았다. 문제는 그 보위원이 여인의 집에서 밥을 먹고 나가는 것을 동네 여인들이 보았고 연결고리가 되어 불려온 것이었다. 여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술을 먹였는가부터 물어보았다. 여인은 죽은 보안원이 반찬이 고급지다고 딱 술 한 잔만 청해서 주고 말았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심문하는 보위원들도 그 여인의 집에 드나들던 사람들이여서 별다른 말이 없이 받아쓰기만 했다. 그렇게 몇 사람이 엇바꾸어가며 반복적으로 질문했다. 그리고는 여인을 좁은 철문으로 된 감방 안에 밀어 넣고 문을 잠그고 나가버렸다.


여인은 살아 생전 처음으로 감옥 안에 들어왔다. 네모반듯하게 생긴 작은 방이었다. 눅눅한 방안에 허름한 침대가 덩그렇게 놓여있고 콘크리트 벽체 한 면 위쪽에 귀가 빠진 것 같이 작은 뙤창이 보이고 철문이 앞을 가로 막았다. 한동안 정신이 없더니 감방 안에 들어와서야 더럭 겁이 나고 숨이 막혀왔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잘못한 것이 없으니 별일 없겠지 하고 혼자서 위안을 거듭하며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어제 마지막에 심문하던 보위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심문하던 방으로 데리고 갔다. 똑같은 심문이 또 반복되었고 대답은 어제와 꼭 같았다. 심문이 끝나자 여인은 사정하기 시작했다.


“보위원동지, 집에서 입은 옷차림으로 그냥 나왔는데 옷도 좀 갈아입고 먹을 것도 좀 꾸려오게 집에 좀 갔다 오게 해주십시오.”


보위원은 안 된다는 소리도 없이 휭 나가더니 이내 돌아왔다. 그리고는 큰일은 없는 듯 씩 웃으며 “뭐, 별일이 아니니 이내 나가게 되오. 갈아입을 옷 한 벌만 가져오면 되오. 갔다가 이내 돌아와야 하오.” 하고 선선히 내보내 주었다. 여인은 “알겠습니다. 옷 갈아입고 밥 한술 뜨고 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인차(금방) 오겠습니다.” 하고 말한 뒤 보위부를 나섰다. 보위부는 경호도 붙이지 않은 채 여인을 믿은 듯 선선히 보내주었다. 여인은 훗날에야 ‘별일이 아니니 이내 나가게 된다’는 보위원의 말이 그녀가 도망칠까봐 안심시키기는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부 사러 간다고 나와 중국으로 도망쳐 


여인은 집에 오자마자 머리부터 감았다. 머리를 감으면 나쁜 운이 빠져나간다는 속설을 따라 세 번이나 비누를 묻히고 헹궈냈다.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르는데 담당 보위원이 문가에 나타났다. 이내 뒤따라 온 것이 분명했다. 담당보위원은 송 여인의 신세를 가장 많이 진 사람으로서 친누이 같은 신뢰관계가 있었고 어려운 말도 서슴없이 나누던 사이었다. “나, 언제쯤이면 풀려날 수 있수? 내 죄란 술 한 잔에 밥 먹여준 죄밖에 없는데… 그게 무슨 죄겠소? 내 손에서 밥 먹은 보위원이 어디 한 둘이요?”하고 배심을 부리듯 말했다. 담당보위원은 한참을 말없이 담배만 뻑뻑 빨아댔다. 송 여인은 말해놓고 보니 좀 겸연쩍은 생각이 들어 보위원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다른 때와 달리 정색한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시작했다.


“아줌마, 여기 좀 앉아보오. 아줌마나 일반 사람들은 우리사업에 아주 철부지요. 아직 당해보지 못했으니. 쯧쯧쯧. 이제 다시 들어가 보면 알게 될게요.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오늘까지는 아마 그 방에 있을 거요. 취조가 들어가면 이제부터는 지하 감방에 가야 할 거요. 1평방밖에 안 되는 방이요. 그 안에 들어가면 나오기 바빠요(힘들어요).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소. 혹시 모르겠지만 이게 마지막으로 집에 온 것일 수도 있소.”

보위원의 말은 농담이 아니고 진지했다. 송 여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오래 붙들어두겠소? 아무렴 보위부가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소? 말도 되지 않는 소리 싹 그만두오.” 하고 부엌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여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밥을 하려고 쌀 함박에다 쌀을 붓고 돌을 이려고 하니 손이 떨려 쌀 함박이 미끄러져 내렸다.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으로 마음이 앞서가고 행동이 잘 되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겨우 가마뚜껑을 닫고 일어선 여인은 방안에 있는 보위원에게 한마디 건넸다.


“반찬감이 없어서 두부나 한 모 사오겠소.”


여인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능청스럽게 한마디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얼핏보니 보위원은 태평스레 방안에 앉아 서재에 있는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빨리 다녀오오.”


여인은 밖으로 나섰다. 밖에 나서니 마을 여인들이 여기저기서 반기며 조심히 떠들어댔다.


“승희 엄마, 보위부에 잡혀 갔다고 해서 모두 걱정을 했는데 나왔구려.”


“아이구, 내사 잘못한 일이 있어야지 감금되지. 반찬감 사러 나가는 길이우.” 


여인은 천연덕스레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는 넒은 시내의 아파트를 요리조리 빠져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활랑(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안고 부들부들 떨며 시내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여인은 드디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는 이미 머릿 속에 또렷이 그려져 있었다. 오랜 장사 경험을 통해 국경 쪽으로 빠지는 길은 이미 익숙했다. 어디에 가면 국경으로 나드는 차들이 있으며 어떤 차들에 얼마씩 주면 국경 초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지는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여인은 아까 집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몸 안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두툼히 숨겨가지고 나왔다.


일단은 몸을 중국으로 피하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이 땅을 뜨지 않는 한 걸음걸음 위험이 따라올 것 같았다. 엄마가 중국 출신이어서 이모들과 외삼촌들이 중국에서 살고 있었다. 이모사촌들을 전화로 불러내 국경만 무사히 넘으면 보위부가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국경까지 오는 기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국경에 도착하자마자 이모사촌언니에게 제꺽 전화를 걸었다.


“에그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다니… 너 하마터면 죽을 번했구나… 빨리 움직일게.”


한 시간 후에 탈북이 시작됐다. 이모사촌언니가 공안과 국경 경비대원들에게 돈을 찔러 주고 강을 넘을 수 있게 해줬다. 사촌언니와 형부가 차를 끌고 국경까지 마중 나왔다. 사촌언니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무사히 도착하고 나니 뒤에 두고 떠나온 남편과 아이들 생각에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아무튼 여인은 지혜롭게 대처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중국으로 들어온 송 여인은 보위부가 분명 사촌언니네 집으로 추격해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그 쪽으로 가지 않고 사돈 집에 은신했다. 거기서 한 달간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사촌언니가 시키는 대로 식당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돈도 벌고 자리를 잡은 여인은 브로커를 통해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무사하다는 연락을 보냈고 가족들의 소식도 알게 되었다. 여인이 없는 가족들은 쓸쓸하고 힘들지만 모두 무사히 지내고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별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국경에 장사를 다닐 때 불이 환하게 켜진 중국의 도로와 아파트들을 건너다보면서 저기에서 사는 느낌은 어떨까하고 생각했는데 정작 와보니 이제야 사람 사는 세상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마음대로 벌 수 있고 생활총화와라, 학습와라, 동원 나와라 하고 통제하는 사람도 없으니 북한에서 살아온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가족을 중국으로 탈북시켜 함께 모여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떠날 때 군대에 있던 아들이 엄마가 보위부의 시선에서 도망쳤다는 이유로 감정제대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2부에 계속)


* 편집자주 : 북한 보안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사건을 기록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당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 업무를 담당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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