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글/사진] [청주 이야기]
낡은 주택의 책 이야기 - MY FAVORITE THINGS (마이 페이버릿 띵스)
하얀 페인트칠이 벗겨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외벽과 금이 간 콘크리트 계단,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낡은 격자무늬 창문까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 낡은 공간은 버려진 집을 리모델링해 책을 판매하고 있는 작은 서점 ‘MY FAVORITE THINGS(마이 페이버릿 띵스)’다.
서점 안은 마치 공사가 덜 된 듯 회색 콘크리트 벽과 목재가 드러나 있다.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오래된 주택의 분위기를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게 꾸며놓은 것이다. 공간을 넓히기 위해 벽을 부수는 일도 없이 방문만 없애 입구를 만드는 등 낡은 가정집이 가지고 있던 정취를 그대로 살려놓았다.
밝은 형광등 대신 천장에 달아놓은 노란 조명은 아늑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넓은 창으로 간간이 들어오는 겨울 햇살은 아늑한 분위기에 나른함을 더해줘 서점 안을 순식간에 포근한 기운으로 가득 채운다.
안쪽으로 난 작은 방엔 창문 높이까지 쌓아둔 책이 방안을 뒤덮고 있다. 그리고 책장 맞은편엔 나무 책상까지 놓여있어 공부방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낡은 격자무늬 창문 주위로 빼곡히 채워진 책들을 보니 학구열에 불타오르던 외삼촌의 방이 생각난다. 출입금지 명령이 내려진 외삼촌 방은 어린 나에겐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나무로 지어진 외갓집은 걸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곤 했는데,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고 외삼촌 방으로 가기 위해 발끝을 세우고 걷으며 치밀한 작전을 펼치곤 했다.
책으로 가득했던 외삼촌 방엔 막상 어린 내가 읽을 만한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모두 암호같이 느껴지는 어려운 책들뿐인데도 괜히 오기를 부리며 어른이 된 척 책장을 뒤적이곤 했다. 어른놀이를 졸업하고 진짜 어른이 된 지금,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 속에서 내가 읽은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될까? 이젠 웬만한 책은 이해할 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어린 시절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자신을 반성하며 읽을 책을 찾아 서점을 좀 더 둘러보았다.
대형 서점과는 달리 이곳에는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이나 동네서점 특별판으로 나온 희귀한 서적이 많다. 표지만으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아기자기한 책 앞에서 충동구매를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했다.
마이 페이퍼릿 띵스는 책 외에도 엽서, 스티커, 노트 등 직접 만든 문구상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벽에 걸린 빈티지 달력과 나무를 깎아 만든 만년필은 소장 하고 싶을 정도로 특이한 디자인을 뽐낸다. 각종 영화 포스터까지 판매하고 있어 책뿐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서점은 좁고 아담한 크기지만 구석구석 진열된 상품을 보다 보면 어느새 훌쩍 시간이 흘러간다. 밖이 어둑해지자 서점 안 조명들이 더욱 빛을 발하며 책을 돋보이게 했다. 좁고, 앉을 곳도 없고, 넓은 창이 머쓱할 만큼 볼만한 풍경도 없는 낡은 서점이지만 발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가득하다.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인 생활은 얼마나 행복할까? 서점은 이름 그대로 주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모아놓은 공간이다. 주인의 사랑이 듬뿍 담긴 ‘마이 페이버릿 띵스’는 소소한 행복의 기운을 뿜어내며 오늘도 청주의 낡은 주택가를 환하게 빛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