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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며 인류는 시간과 공간이 얽힌 시공간이라는 물리량 안에 거주하게 됐다. 이미 존재하던 사실을 나중에 발견한 셈이기에 ‘거주하게 됐다'라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20세기의 시작을 상대성이론으로 열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의미심장하다. 세기의 천재가 정리해 역사를 바꾼 엄청난 이론을 단 몇 줄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모할뿐더러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기에. 상대성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시사점 하나를 알아보자.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는 약 30만 km/s으로 고정되어 있고 우주 안의 어떤 물질도 이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빛의 속도를 우주 제한속도라고 부르는 이유다. 재밌는 현상도 발생한다. 우리 인간의 몸을 포함한 모든 물체는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수록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축소된 공간을 경험한다. 지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빠르게 움직이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고 온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더 늙어있는 사실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대성이론은 말하고 있다. 온 세상의 시간과 공간은 엮여있고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물리법칙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이후 인간은 줄곧 빛의 속도를 뛰어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시공간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시공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주 끝 경계선에 다다르기, 순간이동, 영생. 신은 이와 같은 능력이 상상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길 원하는지 아직 비밀을 푸는 열쇠를 넘겨주지 않고 있다. 짧게는 몇 세기 동안, 어쩌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물리적으로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류는 다른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현대에 다다라서 발견한 우회적인 해결책 하나.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시공간이라는 물리 법칙에서 탈출하기 위한 발로. 인간을 모사하는 인공지능의 개발이다.
여러 기능별로 나의 특성을 반영하는 인공지능을 상상해보자. 내가 매일 쓰는 일기를 학습해 나의 글 쓰는 스타일로 책을 집필하고, 나의 목소리를 학습해 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내 목소리로 대화하고, 나의 얼굴을 학습해 내 표정을 정확하게 모사하는 인공지능이다. 진짜 ‘나'는 해외에서 여행하고 있는 동안 인공지능들은 나 대신 글을 쓰고 대화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시공간의 감옥을 탈출하지 못했으나 인간이 도전해 얻어낸 최선의 해결책인 셈이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인공지능을 인간의 물리법칙 탈출 시도가 지속되는 이상 언젠가 맞이할 필연적인 미래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순차적으로 수행해야 했던 작업들이 동시에 여러 공간에서 병렬적으로 이뤄지는 양태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정신. 병렬성(Parallelism)이다. 단순한 멀티태스킹(Multitasking)과 다른 개념이다. 후자의 경우 한 주체가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상태라면 전자는 하나의 정체성을 지는 여러 주체가 각기 다른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개념이다. 한 인간의 여러 특징을 학습해 구현하는 개인화된 인공지능(Personal Artificial Intelligence : PAI)은 병렬성을 목적으로 개발되며 일정 수준에 이르기까지 진화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변화가 그러하듯 길고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며 어느새 우리 삶의 당연한 일부로 스며들 테다. 확보한 병렬성은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몇 배수의 다중 차원으로 확장시켜 인간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자. 우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가끔 또는 자주 여러 상황에서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보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족과 있을 때의 편안한 모습, 친구와 수다 떨 때의 활발한 모습, 회사에서 일할 때의 차분한 모습, 혼자 있을 때의 은밀한 모습. 모두 같은 ‘나'이지만 상이한 페르소나를 드러내며, 심지어 비슷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예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나’, 또 다른 이에게는 ‘나쁜 나’, 스스로에게는 ‘이상한 나’ 일 수 있다. 이와 같은 무작위성(Randomness), 그 안에 내포된 다중성(Multipleity)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인간을 기계와 구분할 수 있는 인간다운 인간성(Humanities)을 나타내는 증거다.
정교하게 발전한 PAI는 다중적인 삶의 양태를 학습하고 여러 상황에서 진짜 ‘나'가 취했을 법한 인간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다양한 여건에서 여러 계층의 페르소나를 구현하는 PAI는 인간을 모사하는 인공지능의 최종 단계다. 이 핵심 개념이 증강된 자아(Augmented Ego)다. 누군가에게 좋은 나, 또 다른 이에게는 나쁜 나, 스스로에게는 이상한 나라는 존재를 모두 담고 있는 개념이자 실체. 완성된 PAI는 어쩌면 부모조차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본모습을 온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일 수 있다. 인공지능은 지금도 증강된 자아라는 최종 지향점을 향해 진화해가고 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언뜻 생각하기에도 수많은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그중에서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수반하는 문제점. 개인정보 보안에 관한 여러 쟁점들. 개인 데이터를 활용하는 인공지능 개발의 특성상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다. 혹자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장을 담그기도 전에 구더기가 우리에게 해를 입힌다면 안 되지 않겠는가. 우리 각 개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자산이 된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내 자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재산권'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개인정보가 가득한 보물창고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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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는 말의 진짜 의미
이어지는 글
4. 내 개인정보는 정말로 얼마일까 (1/2)
5. 내 개인정보는 정말로 얼마일까 (2/2)
6. Passive Incomer. 새로운 부르주아
7. 기억, 사진, 영상 그리고 다음
8. BTS는 일곱명이어야 하는가
9. 창백한 푸른 점의 역설
10. Epilogue. 어떠한 신기술도 익숙해지리
* 본 글은 (주)에스알유니버스가 제작한 콘텐츠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