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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영혼 Mar 21. 2020

이제 겨우 시작인 것 같은데...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보름여만에 꺼내 든 DSLR 속에 담긴 지난 몇달 간 찍은 사진들이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최근에 DSLR로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더랬다. 계획하는 것도 있고 아이 둘 일상도 이쁘게 담아보고 싶었다. 매일 지겨우리만치 반복되던 일상들이 이젠 더 이상 일상이 아닌 아이러니함을, 불안감을 애써 감춘 채 바라보자니 더욱 낯설기만 하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면서 첫째 아이 프리스쿨이 문을 닫은 지 이제 겨우 열흘 남짓인데 우리 가족의 일상은 너무나 달라졌다. 아이 둘과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아이들과 시간 보내기 좋은 도서관에도 갈 수 없고 -도서관을 비롯하여 극장, 백화점, 식당 (드라이브 쓰루나 포장은 가능) 등등 모두 3월 말 까지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 놀이터에도 아무 때나 갈 수가 없다. 장보기 또한 아이들과 시간 보내기 좋은 아이템인데 이젠 남편이 전담하기로 했다. 일단, 휴스턴의 경우는 4월 10일까지 학교 문을 닫기 때문에 남편과 함께 아이들 생활 계획표를 만들었다. 첫째 아이 프리스쿨 일정과 둘째 낮잠 시간을 배려한 생활 계획표에는 아침 식사 후 체조를 비롯해 하루 두 번의 산책이 포함되어 있다. 첫날에는 만 4살 아이를 해병대에 보낸 듯한 꽉 찬 스케줄에 혀를 내둘렀는데 계획표가 없었으면 아이들도 지루해하고 우리도 벌써 지쳤을 것 같다.





 

아침 산책길 (목요일이라 각 집의 쓰레기통이 길가에 나와있다.)






  첫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둘째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아침 식사와 체조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는 시간이 아침 9시. 아이들 각자의 물병과 손 세정제만 챙겨서 나선다. 첫째 아이가 다람쥐라고 부르는 청설모들이 풀밭을 뛰어다니고 새소리가 귀가 아프도록 들리는 아침을  두 아이와 거의 일정한 시간에 비슷한 장소에서 맞이한다. 15분여 걸어가면 나오는 놀이터는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북적북적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많아야 2-3 가정만 있고 그나마도 모두 거리를 유지하고 놀고 있다. 다들 떠날 때는 손세정제와 티슈로 아이들 손을 꼼꼼하게 닦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리는 그 몇십 분 동안 아이들이 놀다가 손으로 입이나 눈을 비비지는 않나 신경 쓰고 주의를 주느라 놀이터에서 오히려 나는 더 피곤하다. 그러나 오늘처럼 하루 종일 비라도 내리면 그런 놀이터도 아쉽다. 비 때문에 외출도 힘들고 뒷마당에서 잠깐 앉아 빗소리나 듣고 들어오니 하루가 더욱 길기만 하다. 이런 생활을 8월 말까지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앞이 깜깜하긴 하다.


  주말엔 외식도 하고 어디로든 나들이를 했었는데 그것 또한 모두 당분간 못하게 되었다. 물론, 그 당분간이 얼마간 일지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


  장보기는 이제 남편이 하기로 했다. 지난주 Costco에 장을 보러 갔던 남편은 명품 매장 들어가 듯 입구 앞에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한 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며 경찰까지 입구에 서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었다. 소수 인원만 정해진 시간에 들여보내니 -밖에서 기다리는 것 빼고- 장 보는 것은 매우 순조로웠으나 역시 없는 물건들 (화장지, 세정제 등)은 여전히 없었고 이젠 계란마저 1인당 1판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동네 마트, HEB (텍사스 지역 대표 대형마트)에서 과일을 사려던 남편은 여지없이 줄을 서야 하는 광경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한꺼번에 몰리지 않으니 물건이 다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계란도 물도 여전히 없다며 2주째 장보기를 도 맡아하는 남편은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단다.






동네 마트( HEB),  거리를 유지한 채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이런 일상을 상상이나 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보다 내가 필요한 물건을 제때 살 수 없다는 사실이 공포까지는 작지 않은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사재기를 하는 것일까? 그 많은 물과 화장실 휴지, 손세정제 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마스크야 원래 미국에서 보기 힘들었고 쓰지도 않으니 열외다. 마스크는 살 수 있는 곳도 거의 없고 살 생각도 못 했다. 다만, 통근 전철을 이용하는 남편을 위해 면 마스크를 하나 만들었다. 내 남편 지켜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지난주만 해도 마스크까지 써야 하냐는 남편이 먼저 만들어 달라고 했으니 이런 상황에 완벽한 밀폐공간인 통근 전철로 출퇴근하는 남편이 안쓰럽다.


  오늘은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2만 명에 육박했다. 오늘만 5천여 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새로 걸렸다기보다는 이미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이제야 찾아낸 것일 게다. 플로리다 해변에 사회적 거리는 잊은 채 모여든 젊은이들로 씨끄러웠던 요 며칠이 지나고 플로리다에서 확진자가 더욱 늘자 뒤늦게 플로리다 해변도 셧다운 명령이 떨어졌다. 안일하고 미흡한 미국의 대처에 이러한 상황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이미 더 많은 확진자들이 존재하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다. 단순한 독감으로 치부하던 트럼프도 미국이 이탈리아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코로나 19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플로리다 그리고 뉴욕은 움직임의 제한을 더욱 강화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는 락다운 명령이 떨어졌고 약국, 식료품, 주유소 등 필수 서비스만을 제외하면 모두 닫도록 했다. 마스크를 하지 말라던 초기와는 달리 보건당국의 지침이 틀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지난 금요일부터 2주가 고비라고 했으니 앞으로 벌어질 1주일은 더욱 무시무시할까? 모두들 현명하게 잘 이겨내길 바란다.


  새삼, 내 나라 대한민국이 참 고맙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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