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코비드 19로 인한 팬데믹 선언과 미국의 셧다운으로 집에만 있은지 어언 두 달 하고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평일과 주말의 구분도 힘들다. 아니, 사실 무의미하고 구분도 안 간다. 눈 뜨면 아침이고 피곤하고 졸리면 저녁이다. 남편 도시락을 싸면 평일이고 싸지 않으면 주말로 구분하기도 한다. 며칠 전엔 남편이 오전에 운동을 마치고 평소와 달리 말끔한 복장으로 식사를 하러 나오길래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디 가냐고 물었다가 되려 남편이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몇 번의 대화를 주고받아도 서로 다른 소리만 하다 남편의 출근이 오후 1시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남편 점심 차려주고 부랴부랴 남편의 저녁 도시락으로 김밥을 말아서 보냈다. 이렇게 거의 정신줄을 놓고 살고 있다. 호기롭게 준비해서 4월까지는 잘 지키던 아이들 시간표도 이젠 내가 지쳐 쳐다보기도 싫은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지 -아마도 돌아가는 상황이 다행은 아닌 것 같다- 미국 내 대부분의 주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내가 살고 있는 텍사스는 여러 주 중에서도 특히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서두른 주인데 그래서인지 확진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평소 확진자 수로 전체 주에서 12위를 기록하던 텍사스는 미시간과 플로리다 등을 제치고 7위를 달리고 있다. 어제 메모리얼 데이 휴일까지 겹치면서 앞으로 확진자 수는 더 증가할 테고 과연 일상으로의 복귀는 언제 이루어질지 불투명하다. 정말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건 여러모로 불가능할 것 같고 당최 어떤 모습으로 미래가 전개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 불투명이 주는 무기력감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둘과 거의 집에서만 지내는 생활에서 정말 잘했다 싶은 건 수면교육이다. 지금 56개월인 첫째는 만 4세가 되도록 옆에서 잠들 때까지 시체처럼 누워 있어야만 하는 아이였다. 밤에 자다 깨서 대성통곡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첫째가 만 3세가 될 즈음 둘째가 태어났는데 수면교육에 대한 의지가 희미 해질 정도로 잠을 그럭저럭 잘 자는 아이였다. 워낙에 첫째가 수면으로 힘들게 했던 터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느껴졌던 부분도 있다. 그러다 6개월이 되어가던 즈음 첫째의 모습이 오버랩되던 순간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이 수면교육을 할 시간이다. 그렇게 수면교육이란 걸 하고 나니 지금 20개월인 둘째는 세상 수월한 아이가 되어 있다.
한 번 수면교육을 하고 나면 그걸로 끝은 절대 아니다. 한국에 몇 주 다녀오거나 3-4일 여행을 다녀온 후엔 혼자 자는 걸 여느 아기들처럼 싫어했다. 시차 적응도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시차적응이 끝난 둘째는 하루 이틀이면 금세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들 때 그리고 매일 밤 몇 번씩 깨서 울어재끼던 첫째의 만 4년간의 눈물과 수면교육으로 2-3일 바짝 울었던 둘째의 눈물을 비교하면 첫째의 눈물이 단연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쪽잠만 잤던 만 4년을 생각하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수면교육이란 걸 알았더라면 첫째도 당연히 했을 텐데 말이다.
요즘 아이들과의 일정은 이러하다. 저녁식사 -샤워-수면 의식( 책 읽기+ 안고 노래 한 곡 불러주기) 끝낸 후 적어도 7시 반에 둘째를 먼저 둘째 침대에 눕히고 나온다. 눈을 맞추며 "잘 자, 아침에 데리러 올게. 사랑해"라고 인사를 해 주면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는 보통 바로 잠드는 것 같다. 바로 첫째를 데리고 첫째 방에 가서 수면 의식을 한다. 책 3권을 읽어 주고 노래 한 곡을 시원하게 뽑아주고 100까지 세며 등을 토닥여 준 후, 역시 "잘 자~ 아침에 만나. 사랑해"하고 나오면 그 길로 나는 해방이다. 물론 가끔 브런치에 우리 애들 잘 자요..라고 입방정을 떠는 날엔 애들이 교대로 깨면서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잘 자는 편이다. 둘째는 보통 저녁 7시 반에 잠들어 아침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깨고 첫째는 밤에 한 번 정도 깨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통잠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엔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깬다.
그렇게 시작되는 긴 하루도 둘째 아이의 낮잠 시간에 수면교육이 빛을 발하기 때문에 견딜만하다. 점심을 12시 전후로 먹이고 조금 놀리다 소화가 되었겠다 싶은 때에 둘째 손을 잡고 "낮잠 자러 가자"라고 하면 같이 놀던 오빠에게 뽀뽀를 날린 후 내 손을 잡고 본인 방으로 아장아장 걸어간다. 그리고 노래를 불러주고 침대에 눕히고 나오면 방 안에서 한참 옹알옹알 거리는 소리가 들리다 잠잠해진다. 이 얼마나 간단하단 말인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제 한국 나이로 6살인 첫째도 5분 정도의 시간은 레고나 책을 읽으며 기다릴 수 있다. 불과 1년 전처럼 동생 재우는 방으로 들어와 혼자 못 있겠다며 울며불며 둘째 잠까지 싹 달아나게 하지 않으니 나는 숨 쉴만하다.
첫째가 만 1살이 되기 전만 해도 낮잠을 2번을 자야 할 때였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아기 띠를 두 번씩 해야 했다. 밤에 몇 번씩 풀었다 채웠다 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에어컨도 잘 안 나오는 한여름 낮에 두 번씩이나 아기띠를 하고 그마저도 눕히다 깨면 내 인내심은 바닥을 보였다. 그래서 낮잠으로만 1일 2 드라이브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둘째까지 어느 정도 크면서 육아 용품을 처분하면서 첫째가 쓰던 아기띠를 중고로 내놓으려니 남편이 그 아기띠는 우리의 추억과 눈물이 가득한 것이니 팔지 말자고 하기도 했다. 듣고 보니 그러하여서 지금도 보관 중이다. 그러고 보니 둘째는 아기띠로 안아 본 기억도 없다. 첫째가 만 4살이 넘어가면서 아이 둘 재우는 것이 첫째 어릴 때 혼자 재우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하다.
요즘처럼 팬데믹으로 아이 둘과 지지고 볶으며 집 안에서만 머무는데 아이들 잠으로까지 힘들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둘째 수면교육을 만 6개월에 시킨 것, 그리고 첫째의 수면교육을 만 4세에 시킨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그나마 내가 팬데믹을 견딜 수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