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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HR Sep 27. 2022

냉정과 열정 사이

HR 컨설턴트 혹은 현업 인사담당자 그 사이...

 '인사(HR)'이라는 일! 즉, 사람과 조직에 대해 늘 고민하고, 구성원의 행동양식과 규범, 준거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10년 가까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어렵게 느껴진다. '사람 관련된 일에 무슨 정답이 있으리오'라는 생각과 함께 정답이나 공식이 없기에 나의 일이 매우 재미있고 도전적이면서도, 한없이 모자란 나를 스스로 꾸짖는다. 오늘은 짧지 않은 경력 생활 중 인사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는 2가지 직업을 체험한 필자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HR 컨설턴트와 현업 인사담당자는 같은 대상/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데 공통점을 보인다. 하지만 업무 수행 방식, 관점, 업무 보고 대상자 등을 달리하는 등 천양지차이기도 하다. 같은 듯 매우 다른,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직업을 경험한 나는 상황에 따라 다른 옷을 입으려고 노력했다. 먼저 '냉철한 얼음' 같은 이미지를 가진 HR 컨설턴트는 고객사의 요구에 따라 명확한 스콥 내에서 한시적으로 깊은 고민을 하며 결과물을 산출한다. 가령, 3개월 내 "○○회사의 평가/보상제도 개선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현황 진단(issue finding) → 新 인사제도 설계 제언 → 세부 실행(안) 수립'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소위 외부 공인된 전문가로서 특정 회사의 이슈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한 결과를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특정 모듈/주제에 대한 고민의 폭을 깊이 하고, 현재 혹은 중장기적으로 적용 가능한 옵티멀 솔루션(optimal solution)을 제안한다.


 높은 전문성을 담보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과 근거를 고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산업군 혹은 기업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 이력이나 벤치마킹 레퍼런스, 많은 분량의 보고서 제공이 실례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약 3개월 간 프로젝트 멤버들과 밀도 있는 고민과 대화를 하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엎어지기를 반복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개인적으로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스스로 끝없는 고민을 하며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이면에는 '과연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과 함께 벽에 부딪힐 때도 많았지만, 고객에게 최종 결과물을 전달할 때는 매우 짜릿함과 동시에 지적 갈증이 채워지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컨설턴트의 한계점으로 마음 한 켠에는 '내가 공들여 쓴 보고서나 작업물이 현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금은 잘 운영되고 있을까?'와 같은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컨설턴트는 과업의 시작과 종료가 명확한 만큼 이후의 과정을 경험하기 매우 어렵다(물론 때에 따라 roll-out과 같은 실행 지원 프로젝트가 있기도 하다). 가끔은 내가 만든 결과물이 탁상공론이나 멋들어진 보고서에 지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빠질 때도 있다.


 그에 반해, 현업 인사담당자는 '열정' 그 자체다. 매일 조직 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리스크를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다. 또한, 경영진과 구성원을 대리/대표하는 가운데 미묘한 간극을 조율하고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다 보면, 중천에 떠 있던 해는 어슴프레 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에는 인사가 관리/통제의 개념보다는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 관점에서 개별 구성원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정서를 케어하는 차원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인사담당자가 현장 속으로 깊숙이 다가가서 직원들과 1:1로 대화하며, 고충사항을 적극 경청하는 등의 미팅 일정도 많이 마련되고 있다.


 기업 내부 인사조직 구성 및 역할에 따라 다르겠지만 구성원들과 접점이 높을 경우에 필연적으로 운영 업무가 많아지고, 인사제도 설계/기획을 하는 등의 여유가 사실상 없기 마련이다. 가끔 이런 상황이면 인사라는 업무를 하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혹은 인사 본연의 기능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물론 인사기획이 고차원의 업무이며 난이도가 높은 반면, 운영 업무는 가치가 낮은 것으로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가끔 직원들이 "○○님이 신경 써준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와 같은 피드백을 주는 경우에는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낄 때도 있다(이 맛에 HR 업무 하는구나~!). 단지 2가지 직업군을 경험한 입장에서 나에게 어떤 옷이 더 잘 맞고 어울릴까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또한, 경영진의 대리인 입장에서 치열한 고민과 접근도 요구된다. 최근 HRBP라는 개념이 대중화되면서 인사가 back-office가 아닌 front-office로 변모하며,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함께하는 것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회사가 더 높은 성장을 구가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 형태와 의사결정 체계는 무엇일지 혹은 신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내/외부 인력은 누군지 등과 같은 고민을 선제적으로 경영진과 함께하는 것이다. 이에 HR은 본연의 인사 기능뿐만 아니라 사업과 시장환경, 재무지표 등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요구된다. HRBP와 함께 객관적이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people analytics도 각광을 받고 있으나, 아직까지 두 개념 모두 국내 기업에 뿌리 깊게 정착하지는 못한 듯하다. 이 또한 컨설턴트처럼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이기에 경영진을 설득할 객관성이나 명분 부족 혹은 의사결정 체계/위계상 한계를 보이는 것 같다.


 『객관적/분석적인 컨설턴트 vs. 구성원과 공감하며 함께하는 현업 인사담당자』 같은 주제와 현상을 고민하지만 요구되는 모습과 역량이 매우 다르다. 개인별 커리어 지향점에 따라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다르겠지만, '사람과 조직'이라는 명제는 바뀌지 않는다. 요즘따라 인사(HR) 본연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곱씹으며, 매일 똑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여전히 답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지금 이 일이 재미있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며,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증명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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