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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Nov 15. 2024

성적보다 중요한 건 행복


일요일 저녁에는 그 다음주의 아이들의 스케줄을 한 번 훑어본다. 첫째는 영어 시험이 있다고 했고, 둘째는 책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고 했다. 흘려 들었다. 딱 그때, 남편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둘째의 담임 선생님이다. 

요지는 4학년 수준으로 둘째의 읽기와 쓰기 능력이 떨어진다. 매일 십 분 책 낭독하기를 하고 학원(Nachhilfe)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지금까지 한번도 교과목 학원에 보낸적 없이 알아서 잘했다.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인문계를 추천 받아서, 원하는 중등학교에 들어갔다. 독일에서 학원을 보내야 한다는 건, 나머지 공부하는 것만큼의 뒤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충격적이었다. 여러 번 같은 말을 들었고, 그래서 집에서 꾸준히 책을 읽게 했다. 다독으로 자연스럽게 읽기 능력이 향상하기를 바랐는데, 지금 상태로는 그렇지 않다는 처참한 결과지였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다음 주에 벌써 겨우 3학년인데 상등학교로 갈 시험을 친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책 프리젠테이션이 독일어 성적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는 것도 생각났다. 아이가 인문계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한다면? 나는 문제가 없지만, 남편은 꼭 인문계를 보내고 싶어했다. 

문제는 아이의 털팔이 성격. 

아이는 물건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다. 신발 끈이 풀린채로도 잘 걸어다닌다. 신발 끈 좀 묶어. 라고 하면 괜찮아. 냅둬. 그런 귀찮음이 어떤 것인줄 아는 나는 그냥 내버려 둘 때가 많다. 가방도 삐뚤게 매고 다닌다. 가방 좀 제대로 매자.라고 해도, 상관 없어. 라고 한다. 그런 아이가 쓰기를 할 때 문장 요소와 철자를 빠트리고, 혹은 L를 너무 짧게 적어서 E처럼 보이게 쓴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책을 읽을 때도, 수사를 똑바로 읽어야 하지만 하나씩 음절을 빼먹고, 긴 단어가 나올 때  주저한다. 털팔이 성격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나와 남편은 독일어가 상급학교에서의 중요도를 강조했고, 쓰기에서 아이가 저지르는 실수를 언급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방법을 말했다. 

“그럼, 첫번째로 학원을 가고, 그 다음은 신경 써서 낭독 책 읽기를 하고, 다음으로 친구들이랑 노는 시간을 줄이자.” 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 말을 듣고 아이는 눈물을 터트렸다. 

놀기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는, 종종 학교가기가 싫다고 했다. 학교를 가는 이유라면 좋아하는 펠릭스라는 다른 친구와 놀기 위해서? 좋은 장난감이 있어도 친구와 놀아야지 재밌는 이 아이는 사교성이 좋고, 봉사정신이 뛰어나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친한 다른 아이들은 모두, 다 방면에서 뛰어나다. 게다가 모두가 노력형이라 아무 생각없이 놀았던 아이에게는 타격이었다.

아이는 눈물을 감추려고 노란색 담요를 푹 덮어썼다. 

우리가 자기 성적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토론하는 데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둥그런 노란 머리를 글어안았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났다. 

“아들아, 성적보다 중요한 건 네가 행복한 거야.”

“나는 성적 미(3)를 받고도 행복했어.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네가 최선을 다 한다면 3이나, 4,를 받고 인문계를 못 가도 상관없어. 제일 중요한 건 네가 읽기와 쓰기를 잘 배우는 거야.”

“왜 다른 애들은 그렇게 잘 하는 거지?”

“펠릭스와 마테오는 독일어만 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니콜라는 아버지가 엄하니깐 그렇겠지.” 남편이 그런 설명을 내려서, 수긍했다. 

“걔들은 정말, 뭐든 잘한단 말이야.” 아들이 반박했다. 

“걔들은 걔들이고, 너는 너고. 비교하지 말고, 네가 발전하는 것만 생각하자.”

아들은 그래도 속상한지 덮은 담요를 내릴 기미가 없었다. 

“걱정하지 말아. 아들아 다 잘 될 거야.”


그렇게 말하고도 아들의 마음이 걱정됐다. 아들이 겪을 스트레스와 실패했을 경우에 실망감에 대한 우려, 그리고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원망할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아이 앞에 서 있다는 게 보였다. 그 시점에서 나는 아들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고 지지해주고 싶었다. 

남편은 이런 일에 나보다 더 염려를 많이 한다. 나는 우리를 위로할 말들을 찾는다. 예를 들어, “남편아, 잘 생각해봐. 둘째는 좀 억울한 환경인 것 같아. 반에 잘 하는 남자애들이 많으니깐 비교가 되잖아.” 

 첫째 때는 반 애들이 다 잘 못해서, 비교 대상이 없었다. 

“그리고, 둘째는 걔네들에 비해 몇 개월이나 어려. 어릴 때는 몇 개월의 차이만으로 발달 차이가 많이 나는 거 알지?거의 5개월 차이 나는 아이랑 다른 애들이랑 비교하는 건 불공평하지 않아? 선생님들은 한 반에 있으니 걔네들을 비교하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사실 그 차이에 대해서 선생님도 좀 알아둬야하는건데.” 

실제로 <탈렌트 코드>의 실험 결과, 스포츠 경기에서 한 해의 일찍 태어난, 한국의 경우라면 새 학기에 입학하는 3월 생과 12월 생의 차이는 9개월로, 3월 생의 아이들의 운동력이 더 발달되어, 그들을 높게 평가하고 그런 평가와 지지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원래 운동력과 그 이후의 발달 정도와는 상관없이 지지를 받고 더 운동을 많이 하게 되어서 훌륭한 운동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둘째도 이제 현실을 보는거야. 자기보다 다른 애들이 더 잘 한다는 걸 이제 인식했지. 세상이 원래 그런 걸.” 

“세상이 그래, 그리고 네가 세상이 원하는 것만큼 잘 못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

세상을 탓할까? 아니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할까?  

환경 탓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도 될까? 

학생으로서 학업 스트레스를 치워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고난을 치워버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은 아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세상에 부딪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잘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게 내할 일이다. 그래도, 그런 스트레스에 직면한 아이가 안쓰러운 건 엄마의 진심이다. 

그래,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 어느 날, 네가 펠릭스보다 잘 하게 되고, 정말 더 잘 할 때 지금을 돌아보면 또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 앞의 그 장애물을 잘 뛰어 넘기로 하자.

적어도 네게는 그 장애물을 함께 분석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지 않니. 같이 울어주는 엄마가 있지 않니. 너는 3를 받아도 행복하고, 4를 행복하지만, 1을 받으면 더 행복할걸. 그건 네가 애써서 쟁취한 것이니깐. 극복하고 나면, 네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걸 보고 스스로도 놀랄 걸. 

그것만이 세상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났을 때의 성취감은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엄마에게는 그게 거의 모든 삶에서 중요한 것으로 자랐지만, 나를 증명하는 길이 남들을 위해서 제일 중요했지만)다. 너는 이미 행복한 아이라니, 내가 너한테서 배워야 할 것 같다. 


둘째는 새처럼 글감을 물어다 준다. 

직접 쓰는 네임스티커 기계의 스크린이 깨졌다. 그래서 길게 나왔다. 나는, 스크린이 깨져도 잘 써서 내는데, 속으로 비웃었다. 아이는 그걸로 한참 놀았다.  

취침 시간, 아이는 “엄마, 등 좀 돌려봐.” 했다. 아이가 내 등에 그 남은 스티커를 붙이려는 걸 이미 알았다. 다 알고 있는 건 재미없다. 모르는 척 등을 내줬다. 그걸 등에 붙이고 잤다. 다 잊고 있었는데, 조깅을 다녀와서 벗어놓은 파자마 셔츠에 글자가 보였다. Mama 물론, 좀 더 스펠이 많은 마마다.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며 썼을 그 마마. 라는 말에 그냥 뭉클해졌다. “아들아, 그래 너에게는 너를 생각해주는 엄마가 있어. 그러니 힘내!”


시시때때로 배고픈 아들의 밥을 챙겨주는 중,

“아들아, 너는 좋겠다. 엄마가 때마다 너한테 먹을 걸 주니깐.”

“응, 좋아.”

“근데, 나는 해줄 사람이 없네. 할머니는 한국에 있잖아.”

“그래도, 이미 할머니가 엄마 어릴 때 맛있는 거 많이 해줬지롱. 에헤헤헤..”

얼레리, 꼴레리, 라고 놀리는 내 마음에 단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아들 입장이 좀 처지는 것도 은근히 기분이 좋다. 

“나도, 지금 엄마가 이렇게 먹을 거 챙겨주지롱. 에헤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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