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이가 너무 늦는다 싶었다. 2시면 돌아오고도 남는 시간이어는데, 2시 반이 넘고 있었다. 전화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 아이가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의 잔잔한 시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더 컸다. 아이가 먹을 고기와 누들이 식어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일을 처리하면서 훌쩍 세 시가 됐다.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아이의 얼굴이 울음으로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바로 알았다.
-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버스 번호를 보지 않고 타서, 공원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배는 고프고 목은 마른데, 물은 없고… 공원에서 집까지 3킬로미터. 게다가 책가방은 자기 몸무게 만큼 무거웠다.
-아들아...!
나는 바로 아들을 안았다.
-어떻하니!! 힘들었겠다.
그날 아침, 학교에 간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체육가방이 없으니 버스 정류장으로 가져다 달라고. 집에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가지고 나가는 걸 본 것 같은데...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버스 정류장에 걸아가는 길.
그날 남편이 차를 가지고 갔다. 가방을 찾더라도 학교까지 가져다 줄 수 없었다. 그 학교는 언덕에 있어서 전동차로 가기에도 어려웠다. 어쩌지…
버스 정류장 벤치 옆 땅에 아이의 가방이 누워있었다. 어떤 여자가 그걸찾으러 왔냐고 바로 물었다. ‘그래요. 내가 그 칠칠한 아이 엄마요.’ 여튼 그걸 기쁘게 받아들고 아이에게 전회했다.
-아들아, 미안하지만 차가 없어서 그걸 못 갖다주겠어. 체육시간이 한 시간이고. 이번에 벌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너도 네 행동에 책임을 져야겠네.
아이 목소리는 침울했지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걸 기억한 아이는 차가 없는 내가 자기를 데리러 오지 못한다는 걸 예상하고 그 먼데서 집까지 걸어올 생각을 한 거다. 배고프고, 목이 말라도...
-그런 거라면 엄마한테 전화를 하지. 전동차를 타고 가던지. 엄마가 널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아이고, 엄마 아들아...
그러면서 물을 떠다주고, 음식을 데워서 주니 아이는 그걸 게눈 감추듯 먹었다.
그런 아이는 그 전날은 지갑을 잃어버렸다. 그 날은 지갑을 찾았지만, 그 안에 버스 카드가 없었다. 이런 경우, 아이를 탓하면 구석에 몰면 소리를 지르거나, 자기도 어쩔 수 없었다고 버팅겼다. 그 대신, 유연한 반어법을 썼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아...아들아 너는 모험적인 삶을 살고 있어서 재밌겠다. 응?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 말을 이해했고, 그런 자신 때문에 트러블이 생겨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게 장하다. 네가 너를 감당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관전하는 나는 아슬아슬하고, 네가 좀 안타까울 때도 있겠지만, 네가 어떤 삶을 살아도 엄마는 지켜봐줄란다. 오늘처럼 그렇게 혼자서 걸어올 수 있다면, 그 만큼 참을 줄 알고 단단하다면, 충분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