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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 위로 불쑥 네가 들어왔다

by 원더혜숙



운전대 위로 불쑥 네가 들어왔다


노오란, 빠알간 색


저토록 환할 수가




빛의 길 따라


잠시 걸어간다


어린 송아지처럼


고개 들어 바라보다




타탁타탁 떨어지는


잎을 처음 발견한 듯


숨을 멈춘다




이태껏 바라봤던 계절이


눈 앞에 펼쳐진 네가 있기에


켜켜이 더 파고드는 것이겠지







독일 가을은 축축합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눅눅하고 추워서, 가을이 오던지 말던지 무심하게 일상을 지냈습니다. 그 날은 하루에 세 번 가을을 경이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길. 파란 신호를 기다리는 중. 보리수 나무가 샛노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자체 발광. 이파리가 미치지 않았을까.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또 한번 신호를 기다리는 중, 이번에는 단풍나무의 빨간 잎이 멀리서 저를 불렀습니다. 와, 쟤는 또 저렇게 빨갛대. 누구를 유혹하기 위해 저러는 걸까. 그리고, 또 한 번은 집으로 가다가 플라타너스를 스쳤습니다. 3층 건물과 키재기를 할 만큼 컸는데, 사방으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가지를 뻗었더라구요. 기를 쫙 펴고 자란 그 모습이 너무 장해서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몇 몇 순간에 들어온 가을입니다. 켜켜이 쌓인 낙엽처럼 두툼하고 폭신하게 마음을 파고 듭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보는 가을은 이전에 보았고 느꼈던 가을들이 겹치면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가을의 까르마처럼, 어릴 적, 청년 시절의 가을 그리고 오늘 내가 보는 가을이 쌓여서, 지금 내가 느끼는 환희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가을이 노인처럼 줄어들었다고 해도,


그 동안 지내 온 가을을 꺼내 지금의 가을과 같이 두면, 아쉽지만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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