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개랑 친구해?”

by 스테이시

나와 내 동생은 이사를 자주 다니셨던 부모님을 따라 전학 또한 자주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학년 바뀌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야 했던 것인데, 전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었던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압박은 대단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그룹에 자주 던져졌던 나는 일단 내가 던져진 환경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해야 했다. 어떤 친구들이 이 학급에 소위 잘 나가는 그룹인지 어느 그룹이 아직까지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등 말이다. 그렇게 전학생이 둘러보다 보면, 어느 아이가 아직 친구가 없는지 같은 것도 한눈에 보이고는 했다.

나는 너무 시끌시끌하지 않은 그룹을 골라서 정착하고는 했는데, 그 다음에 내가 한 일은 항상 반에 소외된 학생들을 내가 정착한 그룹 안으로 넣어 주는 일이었다. 나도 전학생인 주제에 갈 길이 구만리였지만, 정의감에 불타던 그때의 나는 내 눈앞에서 누군가 대놓고 소외받는 것을 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 친구들이 너무 조용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뚜렷이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든가 그런 이슈였지, 어울리기 힘든 친구들은 아니 였다.

언변이 화려했던 친구들 주변에는 친구들이 쉽게 모이고는 했던 것 같다. 키가 크고 옷을 잘 입는 친구들에게도 그러했다. 혹은 공부를 잘하거나. 한 번은 초등학교 때 어떤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너 왜 개랑 친구해?”

소외받던 애는 아이들이 다 기피했던 대상인데 내가 친구가 돼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 질문에서 반 아이들의 두려움이 느껴졌었다. 그 아이가 굳이 싫은 이유는 없었지만 인싸인 누군가 별로라고 하니까 다 같이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랑 놀면 너도 그런류다 라고 겁을 준 모양이었다. 나라고 무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미 친구가 된 아이에게 너랑 이제 친구 할 수 없어 라고 말해야 된다면, 나는 그게 더 못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소신 있는 어린이였지 싶다.

참 이렇게 나는 친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막 즐겁지 많은 않았던 반면, 나랑 같이 전학을 다닌 나의 쌍둥이 동생은 어떻게 보면 나랑 다르게 똑똑한 아이였다. 어딜 가든지, 그 반에 공부 잘하는 애, 엄마가 힘이 있는 애 등을 딱딱 찾아서 사귀었다. 부럽거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보면서 정말 저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싶었다.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께서

“애 네 동생은 어쩜 전학 온 지 얼마 안돼서 그렇게 좋은 친구들만 딱딱 골라서 사귀었니? 깍쟁이 같아 얄밉더라.”

라고 나에게 말을 하시더라.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때 나는 10분 먼저 태어난 언니로서 동생을 걱정하던 차에 친구를 잘 사귀었다고 하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동생은 언제나 나보다 현명했다. 동생과 달리 나는 정이라는 단어에 끌려 다니며 맺고 끊는 것을 잘하지 못한 대가를 많이 치러야 했기도 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게 나란 사람이 인간을 대하는 인간론이고 철학이었기에 딱히 동생처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때는 못한 건가.

누군가랑 친구가 되어서 나한테 유익이 된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내가 왜 애랑 친구 하지 라는 것을 돌아보았을 때, 애가 나한테 도움이 되어서 라고 대답한다면 솔직히 이렇게 되묻고 싶을 것 같다.

"그럼, 그 친구도 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이제는 안다.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정의를 구현하는 세일러 문처럼 일당 백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이것이 씁쓸할 때도 있고 한편으로 안도될 때도 있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으며 더 현명해져서 친구를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춰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참 어른이 되고 나서는 더 노골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만을 만나려고 하게 되는데, 사회적 캐파를 올려주는 아이템을 인맥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서로 시너지를 내는 관계가 된다면, 그들의 관계는 꽤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더 이해해 주고, 더 나눠줘야 한다면 아주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관계가 병들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이런 의도가 너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결국 점점 멀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내게서 무언가 얻고 싶은 것이 너무 명백한 사람들은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와 내가 무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는 것 같으면 할퀴며 가버렸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마음 아픈 적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잘 된 일인 것이다.


감사하다. 그들이 찾는 것이 내게 없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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