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영어유치원에서 일하나요?

by 스테이시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본다면, 아마 영어 유치원 교사라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영어 유치원에 취직하기 위해 취업을 준비를 하는 취준생 또한 없을 것 같다. 그럼 도대체 어떤 사람이 영어유치원에서 일하게 되는 걸까? 나 또한 영어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을 목표로 살아야 겠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영어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무슨 일 하세요?"

"영어유치원에서 일합니다. "

하면은 십 중 팔 구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아, 유치원 선생님이라고요?"


사실 우리에게는 영어유치원 선생님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Korean Manager이다. 한국인 강사는 한 반의 아이들과 애착을 형성하고 돌보며, 학생들의 부모님과 상담전화를 하며, 원어민 강사를 매니징하는 역할을 기대 받는다. 원에 따라서는 한국인 강사가 몇 개의 과목을 맡아 가르치기도 한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사실 영어유치원에 구인공고를 보면 우대조건이라는 적혀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영어 전공자

- 교육 전공자

- 보육교사 자격증 및 유관 업무 경험자

- TESOL

- 영어 능통자 (원어민 수준)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선호한다는 것이지 일하기 위한 최소 자격 조건은 아니다. 나는 시기적으로 늘 일찍 결정을 하는 편이었었기에 이런 풀 공고를 보고는 했는데, 언젠가 학기가 시작할 때가 다 되어 구하는 공고를 보니 모든 조건이 빠져 있었다. 거기에는 기초 회화만 되시면 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저 조건을 맞춰야 일을 할 수 있는 줄 알고 서울교대에서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자격증 과정을 수료했다. 대상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뿐 아니라,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장치들을 알 수 있었고, 40분짜리 강의를 직접 설계하고 강의까지 해내야 하는 과제들은 정말 영어 강사 로서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수업료가 대학 한 번 등록금 정도 된다 하더라도 TESOL은 정말 추천하고 싶다.


그래서, TESOL이라는 영어유치원에서 요구되는 아니 있으면 선호한다는 자격증까지 따고 취업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TESOL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가 학부모로서 영어유치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환상을 깨졌었지만, 직업인으로서의 환상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리고 TESOL 있으면 급여적으로 더 우대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었다. 물론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는 조금 더 갖춰진 강사로서 더 양질의 것을 제공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지만, 최소 자격증을 갖추고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처우 차이가 없어서 놀랍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 나는 사회 생활한지도 너무 오래되어서 세상 물정을 몰랐고, 협상 같은 것을 할 용기 따위는 없었던 경력단절 여성 이어서 우대 조건들이 거의 다 있음에도 처음에는 최저시급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몇 년이 지나서 다른 곳에서 나의 이력서를 보던 리더분이 물어보셨다.

“아니, 그 때 왜 이렇게 적게 받고 일 하신거예요?”

돌아보면, 자존감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없을 때였기에, 그 제시하신 급여도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 건가 싶은 마음까지 들 때였다. 그 때는 그 면접에서 합격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어려워 보였다. 나는 이렇게 나름의 준비도 하고 아마도 많은 지원자 중에 뽑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왔건만, 그 해 일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사실 이런 자격 같은 거 없어도 되니까 이 페이에 동의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영유 구인광고를 보시면 영어능통자 (원어민 수준)을 보고 지레 겁을 먹는다. 나도 그랬다. 영어 능통자라니 말부터 가 누가 만든 건지 정말 위협적이다. 영어 능통자 말고 영어 융통자 (융통: 금전이나 물품 등을 막힘없이 돌려씀) 라고 하면 딱 일 것 같은데. 진짜 첫 면접을 볼 때, 영어 자기소개 랑 예상 영어 질문과 대답을 빼곡히 써서 준비 해갔던 것이 생각난다. 나름 걱정을 하고 갔는데, 한국인으로부터 영어 질문 하나만 받았다. 이 상황은 뭐지? 생각보다 영어가 안중요한가? 라는 인상을 주었다.


일하면서 보니 다들, 단어를 융통하든 몸짓을 융통하든 원어민과 의사 교환만 할 수 있으면 일을 해 낼 수 있었다. 물론 영어를 할 수 있으면, 오후 초등부 영어 강의를 더 맡게 될 수도 있다. 다만, 보상이라는 점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강의를 더 하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개인적 성장에 욕심이 있는 강사들은 강사로서 역량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의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영어가 자유하면 분명 플러스 알파가 있겠지만 영어는 영어유치원 강사에게 있으면 좋을 몇 가지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이렇게 영어실력에 대한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고 보는 게 맞다. 어떤 곳에서는 아주 드물게 한국인 강사에 대한 소개도 공개한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대부분 원에서 원어민 강사에 대해서만 출신학교, 경력 등을 공개하고 있다.


사실 소개되는 스펙보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아이들과 현장에서 어떤 호흡을 갖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가끔은 차라리 내가 어떤 과목을 책임지고 가르치는 선생님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의 교육, 인격, 생활 습관, 교우관계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역할이 도전적인 과업인 이유는 내가 길러내야 되는 아이가 대개는 12명이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공평하게 하려고 애쓰지만 내 몸이 하나이므로 한계가 있고, 아이들 특유의 예상치 못한 행동을 바로 실행하는 특성 상 현장은 바람 잘 날 없이 돌아간다.


이렇게 원어민과 소통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 아이들을 돌보는 바른 마음 외에도 일을 잘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적지 않다. 부모님이 보실 때 흡족하실 수 있는 사진도 찍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신규교사 트레이닝 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학생 부모님이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셔도 괜찮을 정도의 구도로 찍어주세요.”


라고 말이다. 이것도 코로나가 터지면서 늘 마스크를 쓰고 칸막이 사이에 앉으면서 사실상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또 때로는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일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반쪽은 회사원 같은 이 직업은 당연히 Excel, PPT 등의 기본 컴퓨터 사용에 대해 요구를 받으며, 매일 부모님과 키즈노트로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글 쓰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능력이고 몇 년이 지나도 자신감을 얻기 힘든 부분은 학생 부모님과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상담전화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참,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 정말 하나도 없다.


한국인 강사가 커버해야 되는 역할이 학급 담임, 보육 교사, 급식 도우미, 셔틀 교사, 회사원, 초등부 영어강사, 상담원까지 펼쳐져 있고 그에 따른 능력들이 요구되고 있지만, 우리가 이 모든 역할을 다 잘해낸다고 해서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존중을 받는다 라는 느낌은 현재까지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잘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오히려 역할이 너무 많다 보니까 어느 하나에서 라도 누수가 발생하면 자신의 모든 퍼포먼스에 스크래치가 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매년 부모님들의 기대치는 더 높아져 가고 있다 라는 것을 우리는 현장에서 실감한다. 우리는 직업 특성상 99명의 고객이 만족을 하시더라도 단 1명에게서 컴플레인이 생기면, 그동안의 노고가 폄하되기도 한다. 그래서 베테랑 강사라고 할지라도 올해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 부모님들을 겪어 보기 전에는 올해도 잘해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난 해를 잘 마쳤다고 하더라도, 새해가 시작되면 다시 제로 베이스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라도 우리는 긴장을 한 순간도 풀고 살 수가 없는 느낌이다. 내 원어민 파트너 중에서는


“내가 이것 계속하다가 제 명까지 못 살 것 같아.”


라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영어로도 그런 정서가 있구나 하고 둘이 너털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여러 가지 역할을 카멜레온처럼 수행해 가던 어느 날, 나는 미술수업 때 쓸 만들기 재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손톱 보다 더 작은 구멍을 뚫어야 하는 재료를 보자, 그냥 배부했다가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를 1초간격으로 듣게 될 것이 너무나 상상이 되어 모든 재료의 구멍을 미리 뚫어 놓기로 결정했다. 구멍이 너무 작아 손으로 잘 되지 않자 나는 갤럭시 노트에서 S펜을 뽑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 펜이 마치 나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멋진 회의록도 만들 수 있고, 설계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녀석을 가지고 구멍을 뚫고 있다니. 나는 어떤 역할과 능력을 부여 받고 이 땅에 태어난걸까? 그 순간에 더 울컥했던 것은 그 와중에도 난 이 일에 몰입해 있었다. 아주 작은 만들기 하나라도 어떻게 내가 사전작업을 해주면 아이들에게 더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만난 복잡한 감정이었었다. 참 이렇게 내부적으로도 이 직업에 나름의 애착을 갖는 것에 오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외부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


인터넷상에서는 영어유치원 한국인 강사들의 자격 논란에 대한 글이 심심치 않게 출몰했고, 현장에서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부모님도 감사히 계셨지만, 손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이 직업이 누군가 존경해주지 않는 직업이라는 것을 바닥부터 겪어 와서 이미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이 모든 일은 내가 겪은 것이 아닐지라도 화가 났다.


누군가 쉽게 던진 말이 선생님들의 심장을 관통하여 눈물이 되는 것을 볼 때 , 나는 오히려 영어유치원 분야에도 직업적 전문성을 구축되어, 교사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책이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씨앗을 심어 본다. 영어유치원에서 일하는 이들이 더 존중 받길, 또 스스로도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되길 욕심 내 보려는 것이다. 쓰다 보니 너무 거창한 이야기 같은데, 이 일에 담겨 있는 분들이 조금 이라도 더 기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더 큰 이야기를 하자면 그것이 영어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에게도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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