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 선생님의 하루

by 스테이시

아침 9시가 다가오는 출근길, 길거리에서 수많은 외국인이 스쳐간다. 자꾸 보다보니 왠지 인사라도 건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디서 근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할지는 알 것 같다. 적어도 우리는 이 동네에서 마주쳤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 곳은 국내에서 영어 유치원이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 중에 하나이다. 8시 58분, 뛰어야 한다. 9시 전에 지문을 찍어야 한다. '출근 '라는 문구가 뜨면 회사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잠깐 만끽해 본다.


이제 하루의 시작이다. 책상을 소독제로 닦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이제 곧 아이들이 올 것이다. 교실에 이 고요함은 아주 잠시만 허락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Good morning, teacher.”


다른 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은 자기 반 선생님이 아니어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처음 보이는 선생님한테 종알종알 이야기를 건넨다.

“Teacher, 이거 엄마가 어제 사줬어요.”

새 신발을 자랑하는 아이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저 녀석 오늘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보낼 수 있겠지 라는 마음에 마치 내가 신발을 산 것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고, 꼬꼬마들 실내화를 갈아 신는 속도가 천차만별이다. 마음 같아서는 후딱 내가 나서서 신겨 주고 싶지만, 스스로 할 수 있게 기다리고 지켜보아 주는 것도 선생님의 역할이다.


복도에서 만나는 한국인 동료들에게 눈빛으로 오늘도 잘 지나가 봅시다 라는 말을 전하고 마주치는 외국인 동료들에게 짧은 한마디 격려를 던진다.

"Friday!", "Yeah!", “Almost!”

교실에 돌아와 보니 우리 반 녀석들은 교실에 들어와서 배시시 웃기만 하고 인사를 안하고 서있다. 아이들이 집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원에 와서 다시 영어 모터를 켜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아침에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Song Contest때 부를 노래와 율동을 연습해 본다. ‘그새 제법 동작이 많이 잡혔네’ 라며 지켜보다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공부할 때 보다 더 진지한 표정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연습이 끝나자 녀석들 어제 집에서 이 노래 연습해 왔다며 재잘재잘 어제 일과를 이야기 해준다.


1교시 시작 종이 울린다. 공부라는 것이 이제 익숙해진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렇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시간이 왔다. 원어민 선생님께서 대학생 때 그 단어에 대해 알게 되었던 에피소드를 잠시 이야기해 주시자 한 녀석이 손을 든다.

“선생님, 선생님은 이것을 대학생 때 배웠는데 우리는 왜 지금 배워요?”

원어민 선생님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아, 이럴 때는

“선생님 아가는 어떻게 태어난 거예요?”

이런 질문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정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답을 해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화장실은 매 40분마다 간다. 어린이집처럼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는 일을 원할 때마다 해야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지만, 일단 규칙으로 쉬는 시간에 하도록 정해진다. 대부분의 영어유치원은 학교처럼 명확히 1교시 2교시 이렇게 스케줄이 정확히 짜여져 있고 매 시간 마다 각 교재의 정해진 진도를 꼭 끝내야 하는 커리큘럼을 베이스로 돌아가기 때문에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한 해 그 반 농사의 기초이다. 물론 화장실이 급하면 당연히 갈 수 있다. 일단 규칙을 최대한 다 같이 지키는 것을 연습한다는 것이 곧 더 큰 단체생활을 해야 할 친구들에게 의미가 있다. 인원 수가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 보다 적어서 세심한 케어를 바라시며 영어유치원에 보내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명 이상이 되는 순간 25명이든 12명이든 단체 생활이라는 점을 보호자들께서도 이해해주시고, 아이들에게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시면 모두 더 감사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녀석들,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나한테 와서 투정 부릴 때도 있고 울 때도 있다. 아무래도 원어민 선생님은 자꾸 이것도 하라고 하고 저것도 하라고 하고 공부를 주는 사람으로 보이고 나는 교실 엄마처럼 보이나 보다. 그래도 내가

“우리 Lucy, 힘들지? 그럼 이거 하나 빼 줄게.”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친구들이 나한테 그걸 기대하고 올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이렇게 잘해 왔잖아. 이거 조금 어려워 보여도 우리 Lucy가 할 수 있는 건데, 잘 안 풀려서 마음이 슬펐구나. 선생님이 앞에 조금 같이 풀어줘볼게. 자 1번 같이 보자. “

이렇게 잘 달래서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꼭 안아주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주어진 과업과 씨름을 이어가는 친구들이다.


아이들의 등 뒤에서 한 명 한 명 바라보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 조그마한 몸에서 친구들을 향해

"Line up! Follow me!"

를 외치는 걸 보면 괜스레 내가 뿌듯하다.


내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낼 때는 아이들이 안전에 우려가 될 만큼 큰 액션으로 장난을 칠 때 이다. 그 전에도 서로 신체 접촉이 있으면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코로나 시대를 맞아서 더더군다나 강하게 그런 부분을 훈계하고 있다. 하지만 녀석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이미 친구와 깔깔거리며 웃느라 내 잔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녀석들이 서로 호흡을 맞춰가는 것, 그 바운더리 정도를 지켜주려고 한다.


대망의 점심시간, 카트로 식사가 교실 앞에 와 있다. 식판을 펼치고 인원수에 맞게 모든 음식을 담는다. 오늘 점심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제일 고생스러운 메뉴기도 하다. 얼굴과 옷에 범벅이 될 것이 뻔하다. 하얀 옷을 입은 친구는 없는지 돌아보고, 자리마다 물 티슈를 배달한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다시 쓰기 전에 꼭 입을 닦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돌아다니며 한 명씩 다시 꼭 내가 확인을 해준다. 사실 한국인 강사들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은 앞으로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본다.


코로나 시대여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마스크를 벗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전에도 이미 여러 이유들이 존재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으려고 하면 정말 체할 것 같다. 아이들 배식을 마치고 먹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나서 이제 나도 먹어볼까 하는 순간 아이들은 나를 부른다.

“선생님 반찬 더 주세요.”

그 친구를 도와주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또 나를 부른다. 몇 번 반복하다 이제 먹어야지 하는 순간 이 소리가 들린다.

“다 먹었어요.”

빨리 놀고 싶으니 빨리 치워 달라는 이야기다. 안 그래도 쉬는 시간이 짧은 이 아이들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고문이다. 하는 수 없이 내 밥은 두고 아이들의 식판부터 치운다. 지금은 코로나상황이라서 하지 않지만 대부분 이후에 바로 아이들 양치 시간이 돌아온다. 식어 있는 밥이라도 먹으려는 의지를 세우는 순간 화가 나기 때문에 점심은 거의 포기한다. 점심이 그렇게 눈앞을 스쳐간 한국인 선생님들은 오후 3-4시가 되면 과자를 허겁지겁 먹고 초등부 수업에 들어간다. 때로 상담전화를 많이 해야 하는 날은 무언가 먹는 시간을 입에 허락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한국인교사의 점심시간이 따로 있다는 것은 굉장한 복지가 될 수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육, 음악, 미술 시간 등이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Play Time이다. 다치지 않게 놀아줬으면 하는 이 아줌마 선생님의 바람을 아이들은 애석하게 잘 몰라준다. 내가 개입하고 화를 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안전문제가 틀림없다. 해 맑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공부할 때는 적어도 중학생 같아 보이던 아이들이 다시 꼬꼬마로 보인다. 오늘 공부를 다 못 끝내면 놀이터에 못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녀석들, 오늘 하루 종일 긴장하며 공부를 제 시간에 끝내려고 애썼다는 것을 안다.


한국인 교사에게는 대개 하루에 한 타임 정도 Preparation 시간이 주어진다. 그 때는 컴퓨터로 일하는 시간이다. 보고서 종류도 다채롭다. 일반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도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영어유치원 교사는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선택하기엔 회사원스러운 일도 많다.


일과가 끝날 때쯤 되면 아이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Teacher, Shuttle? Pick up?"

그렇다. 이 녀석들도 엄마가 데리러 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득하다. 셔틀을 타고 멀리서 오고 가고 하는 녀석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때로는 부모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아이가

“선생님, 오늘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라고 말해서 셔틀 타기전에 부랴부랴 전화를 할 때도 있다. 대부분 녀석들의 바람으로 판명된다. 휴, 이렇게 유치부가 하원 했다. 딱 한숨만 쉴 수 있다. 이제 곧 초등부가 온다. 정확히는 대부분의 원에서 유치부의 하원과 초등부의 등원 시간은 오버랩 된다.


그래서 3시를 기점으로 마인드를 바꿔 장착해야 한다. 케어에서 티칭으로! 영어 유치부를 졸업한 초등부 수업을 들어가면, 진짜 중학교에서 배울 만한 내용의 책들을 만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이 내용을 이해한다는 말인가 라는 고민은 아이들의 시험성적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 시험성적을 기반으로 상담을 해야 되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적에 내가 더 민감해 지는 것 같다.


아, 어떤 원에서는 3시에서 4시 사이에는 셔틀을 타기도 했었다. 그 때는 셔틀 도우미 선생님 역할까지 하면 내 직업이 몇 가지 인지 헷갈리고는 했었다. 면접 볼 때 셔틀 타는 것을 알았으면 그 곳에서 일을 안 했을 것이다. 계약서를 쓰게 되는 날 알게 되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못하겠습니다 라고 바로 말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나는 1년 내내 책임져야 했다. 셔틀에서 멀미를 하고 바로 다음 강의를 들어가던 이야기가 과거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직 하루일과가 끝나지 않았다. 정말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장이다. 오죽하면 이 직업의 장점을 너무 바빠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들 할까 싶다. 자, 새로운 역할의 추가이다. 학부모님 전화는 명칭이 상담전화이다. 내가 하는 아이들 이야기도 있지만,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역할을 하다 보면 한 분과도 30분 이상 통화하게 될 때도 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선생님, 고생이 많으시죠."


하면 그냥 인사말일지라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너무 힘들어서 당장 내일부터 이 일을 못할 것 같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라도 한 부모님이

“선생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해주시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월급 받고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지만, 누군가 전해준 따뜻한 마음에 다시 버텨볼 힘을 얻고는 한다.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 내일도 모두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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