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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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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Mar 16. 2020

#8

  미세먼지 농도가 좋지 않은 날이었다. 한밤중인데도 대기가 뿌연 것이 느껴졌다. 동생이 목욕탕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집 앞 목욕탕은 저녁 여덟 시까지만 운영해서 우리는 짐을 챙겨 이십 분 정도 걸어야 하는 옆 동네 목욕탕으로 향했다. 동생이 내게 팔짱을 걸어왔다. 둘 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어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동생이 팔짱을 끼게 내버려 두었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구보다 동생과 있는 것이 불편했다. 동생 앞에서는 잘 버티는 모습도 보여줘야 하고, 동생을 챙기기도 해야 해서 기운을 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나마 버틸 만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렇게나 울어도 상관없었고,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말없이 휴지를 건네주고 그러려니 이해해줘서 억지로 참지 않아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동생의 말이라면 다 들어줘야만 할 것 같았다. 동생은 가급적 나랑 있고 싶어 했다. 아기처럼 나를 찾았다. 나만이 동생의 슬픔을 비슷하게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느릿느릿 걸으며 아무 이야기를 했다. 그즈음 우리의 대화는 자꾸만 길을 잃었다. 이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저런 말을 하네, 이 말은 역시 안 되겠지, 하면서 자꾸만 흐름에서 벗어나는 말을 했다. 그런데 동생이 회사에서 구조된 강아지를 임시보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개에 관련된 이야기일 뿐인데도 나는 조금 움찔했다. 그래? 하고 물으니 동생이 말을 이었다. 입양처는 정해졌는데, 그분이 연말에 일이 바빠서 한 달간 사무실에서 데리고 있기로 했다고. 그런데 회사도 연말에 바쁘니 사무실이 완전히 비는 날에만 언니가 봐줄 수 있냐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고작 며칠인 데다 개의 사연이 딱하기도 했고, 동생이 들어주길 원하는 눈치여서 알았다고 했다.


  목욕탕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샤워를 하고 탕에 들어가서 우리는 구조된 개 이야기를 더 했다. 구조되기 전 사연이라든지 현재 상황 같은 것들을. 분개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복이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가듯 조심조심 천천히.


  다 씻고 나오니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몸이 가벼워져서 깡충깡충 걷고 있는데 동생이 추운데 국수나 먹고 갈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하고 영업시간이 한참 남은 근처 국숫집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하는 수없이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몇 개의 골목을 지났다.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연립주택이 밀집한 동네여서 초행길에는 길을 잃기 쉬운 동네였다. 동생이 언니, 나는 이제 길이 그냥 다 미워,라고 말했다. 아기가 어디에서 사고가 난 지 모르니까 이 길일까, 저 길일까, 하면서 모든 길이 다 밉다고. 택시만 봐도 화가 난다고.


  복이는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아서 길에는 아무 흔적이 없었다. 그래서 동생은 내가 말하기 전까지 사고 지점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랬구나, 하면서 천천히 입을 뗐다. 어딘지 말하면 네가 그 길로 못 다닐까 봐 말 안 했는데. 힘들 것 같아서, 하고. 동생은 말이 없었다. 그런 동생을 잠깐 보고 집 바로 앞이야, 하고 말했다. 거실 창 쪽 길. 거기야.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럴 거 같더라, 하고 말했다.


  집 앞까지 와서 우리는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맥주 한잔만 하고 가자고. 그곳에서 익숙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바른 바디로션 향에 대해 얼마간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이부터 닦으라며 동생이 칫솔에 치약을 묻혀 건넸다. 으아아아 싫어. 이미 침대에 누운 나는 구시렁거리면서 다시 일어나 칫솔을 물었다. 동생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실에 선 채로 양치를 하고 있으니 바로 창 밖 골목이 보였다. 괜히 몸을 돌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양치를 마친 동생이 이 닦으면서 무슨 냉장고 문을 여냐고 물었다. 그냥, 하고 말했다. 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입을 헹궜다. 벌써 누웠는지 동생이 나 물 좀, 하고 말했다. 알았어, 하고 입을 몇 번 더 헹궜다. 코끝이 매워져서 수면크림을 듬뿍 바른 얼굴도 씻었다. 기다리던 동생이 다시 물 좀 달라고 할 때까지 세수를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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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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