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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Jun 12. 2023

#20

  삶의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의 부고를 들으면 제일 먼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하필 저 사람일까. 저 사람이어야만 할까. 그럴 때면 내 삶을 대신 뚝 떼주고 싶어 진다.


  부고를 전달받은 건 오후 다섯 시경이었다. 모처럼의 정시 퇴근을 앞두고 들떠 있던 차였다. 전화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을 것 같아 메시지를 남긴다며, 다경은 친구들에게 대신 전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메시지에는 ‘아침에 엄마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적혀있었다. 단어 하나하나와 그것들이 만들어낸 문장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숨을 참게 됐다. 그것도 잠시, 승오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음을 알아차렸다. 제정신이 아니겠지. 승오는 다경의 오빠이자 내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였다. 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면서 동아리 선배들에게도 부고를 전했다. 예상대로 선배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몇몇 선배에게는 내가 모르는 승오의 친구들에게도 부고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천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몇 해 전 이천에 다녀왔던 기억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다경의 결혼을 두 달 정도 앞둔 스물여덟의 어느 날이었다.


  경기도 각지에서 모여 전교생 기숙사 생활을 했던 우리는 대부분 다른 도시 출신이었고, 그 도시 중 대부분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거나 심지어 처음 들어보는 곳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는 너희 집에 놀러 갈게, 너희 집에 놀러 갈게, 몇 번이나 약속했다. 진심이었고 간절했지만 우리 집과 너희 집은 서로 너무 멀었다. 그런 핑계로 오산에 살던 나는 그때까지 이천 다경이네 집에 한 번도 놀러 가지 못했다. 둘 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각자의 본가보다는 서울에서의 만남이 자연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졸업 후 다시 이천에서 자리를 잡은 다경이 친구들 중 제일 먼저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건 다경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 이천에 가더라도 다경의 엄마 계숙과 시간을 보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염려 때문이기도 했다.


  자영업을 하느라 바빴던 나의 엄마 상순은 나를 일일이 챙겨줄 수 없었던 대신 알아서 잘하는 나를 믿는다고 말했다. 상순이 바쁜 건 사실이었고, 그것이 그녀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과 그녀의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정말 알아서 잘하려고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혼자 지내는 시간에도 면역이 생겼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쓸쓸해지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계숙의 다정에 빚을 졌다. 계숙은 학교에 남는 주말이면 면회시간마다 내 몫까지 챙겨주었고 나까지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고, 내 농담에 진심으로 웃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계숙도 엄마라 부를 수 있었다. 졸업 후에도 메신저나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셨고 이따금 생일도 챙겨주셨는데. 한번 놀러 오라고 하실 때마다 네, 정말 갈게요,라고 하고선 막상 찾아뵙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이천에 방문했던 그날, 계숙은 현관을 열자마자 진선아, 우리 한 번 안아보자, 하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 포근한 품을 기억한다. 내어주신 편한 옷과 자두. 자두를 먹으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다 보니 깊어진 새벽. 다경이 씻는 동안에도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계숙에게 복이 사진도 보여주었다. 계숙은 개와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개가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복이 이야기를 하는 내 눈빛에 사랑이 가득하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개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것도 신기하고, 개의 방귀 냄새가 지독한 것도 신기하고, 개가 모든 가족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고 그중에서 제일 아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고. 나는 복이의 편식과 복이의 짓궂은 장난과 복이의 특이한 성격, 복이의 능청스러움과 뻔뻔함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다경이 너무 빨리 결혼하는 것 같아 서운하다던 계숙이 너한테 복이가 나한테 승오, 다경이 같은가 보다, 하며 내 무릎을 매만졌다. 나는 아마도요, 하고 대답했다. 계숙은 내가 한 살 터울 남매인 승오, 다경과 모두 친해서 정말 막내딸 같다고 하셨다. 우리는 승오와 다경 이야기를 얼마간 더 나누고 자꾸만 눈이 감길 때에야 그만 자기로 했다. 이미 잠든 다경 곁으로 가 보송보송한 새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아침에는 오랜만에 따뜻한 집밥을 두 공기나 먹었고, 점심에는 다 함께 외식도 했다. 헤어질 때는 왜 이제 왔나 싶어 괜히 엄마, 하며 계숙의 손을 꼭 잡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던 시기였는데 그런 나를 SNS로 지켜보았던 계숙은 미리 준비한 용돈 봉투를 건네면서 다시 한번 나를 안아주었다. 또 보자, 하시면서.


  다경은 병원에서 마주한 계숙이 마치 잠든 것 같았다고 했다. 까진 곳 하나 없이 잠든 것 같았던 복이가 떠올랐다. 남매는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을 자꾸만 후회했다. 모든 상황을 가정법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마음. 시간을 되돌려 없던 일로 만드는 것만이 위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나는 계숙이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그저 승오와 다경을 안아줄 뿐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나는 계숙과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발인일에 다시 이천에 내려가 추모공원까지 계숙을 배웅했다. 내 생일이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습도가 높은 유족대기실에서 다경과 머리를 맞대고 계숙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넉넉한 품이, 둥근 미소가, 소곤대는 다정함이 하얀 가루가 되었다.

  

  며칠 후 다경에게서 연락이 왔다. 복이를 안고 화장터에 다녀오던 새벽, 나는 다경과 친구들에게 복이가 ‘죽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떠났다’고 했다. 그 주 어느 저녁에 전화를 걸어온 다경이 울고 있어? 하고 물었다. 나는 울면서 걷던 중이었다. 걷고 있어, 하고 대답하자 울지 마, 왜 걸으면서 울고 그래, 하던 다경. 계숙만큼이나 다경도 개를 낯설어해서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다경은 어린 복이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계숙의 장례 내내 복이가 떠올랐음에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엄마를 개에 비유하는 건 실례가 될 수 있으니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그만 울라는 말에도 알았다고 대답만 할 뿐 더 말을 붙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다경이 말했다. 복이를 잃었을 때 네 마음을 너무 몰라줬던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제대로 위로를 못해줬던 것 같다고. 이제야 네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고.

  

  수능을 마친 다경은 어린 복이를 만났다. 사회인 승오는 중년 복이를 만났다. 다경은 복이를 무서워했고 승오는 복이를 좋아했다. 계숙은 복이를 만나지 못했지만 궁금해했다. 가끔 계숙과 복이가 만나는 상상을 한다. 소곤대면서 산책도 하고, 승오와 다경 이야기도 나누고 내 이야기도 나누면서. 쟤네들 운다, 하고 놀리기도 하면서. 계숙은 복이를 안아주고, 복이는 계숙에게 기대면서 따뜻한 햇볕을 쬐었으면. 흰나비를 따라 풀냄새를 가득 맡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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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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