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경혜 Feb 03. 2022

들키고 싶지 않은 얼굴.




찰리 채플린이 유명인사들 앞에서 으스대는 동안 우울한 표정으로 떨어져 앉아 있는 그의 아내를 그녀는 놓치지 않는다.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는 중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미국 여행기 속 그녀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대한 예를 든 위의 글을 읽으면서 꼭 내 모습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움찔했다.


  전쯤이었을까? 오랜만에 시댁에 올라가기로   우리는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카톡 하느라 정신없는 그가 불쑥 그의 지인을 만나 같이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시댁은 그의 고향이었고 오랜만의 방문에 고향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틈틈이 잡는 중이었다. 사람들과 대화하길 좋아하는 그라 그동안 타지에서 외롭게 지내던  생각해 그러자고 얘기했다. 저녁에 만나기로  지인은 한때 그와 같이 합주를 했던,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열정적인 기타 연주자이자 영어 선생님인 누나였다.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자주 했던 누나는 음악을 전공하고 재즈에 조예가 깊은 그를 높게 평가했는데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강의를 듣는 학생처럼 열렬히 경청하곤 했다. 열렬히 경청하는 학생이 앞에 있으니  신이  그가 시간 가는  모르고 자신의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언제나 누나를 만나면 그런 광경이 연출되곤 했는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전보다 훨씬 심했다. 저녁 6시에 만나 밥을 먹고 슬슬 이야기에 시동을 걸던 그가 10시가  되어가도록 자신의 강의를 끝낼  몰랐다.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뻔히 알고 기다리시는 시부모님과 음악에는 문외한이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는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  얼굴 점점 굳어 갔다. 열렬히 경청하던 누나가 어느 순간  표정을 보고 말을 걸었다. 관심도 없는  근황을 물은 것인데 그것이 나를  화나게 했다. 물론 누나로서는 어쩔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어쩔  없는 질문을 하게 만든 상황과 들키고 싶지 않은 표정을 들킨 것이  화가 났다. 그는 잠시 꿈에서 깨어난 , 그제야 내가 눈에 들어왔고  안위를 살피는 듯하다 또다시 자신만의 꿈의 세계로 빠져 들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음악이.. 하면서 말이다. 머리끝까지 화가  내가 아버님 어머님이 너무 오래 기다리실  같다고 얘기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를 정리했다.

 

시댁으로 가는  안에서 앞으로 둘이 만날  나는 빠지겠다고 화를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한 눈치였다. 미안한 눈치가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래, 저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타지에서 친구도 없이 있었으니 오죽 말하고 싶었을까 이해해주자.. 했지만  뒤로 나는 그의 열렬한 경청자인 누나를 대하기가 껄끄러워졌다.  ‘치부 들킨  같았기 때문이다.  ‘치부라는 것은 남편이라는 사람이 나를 챙기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기 급급한 사람이고 또한 나는  모습을 사랑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의 친구 부부들의 들키고 싶지 않은 표정을  본적도   있지만 그게  인상으로 남거나 하지는 않았다. 부부 사이에  그럴 수도 있으니 그런 표정 따위야 무슨 ‘치부 것까지 있을까. 하지만 나의 ‘치부라는 것은 왠지  크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치부라는 거창한 단어만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면, 그것을 그들의 ‘치부라고 여길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 부부처럼 알콩달콩 티격태격하며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한층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치부를 들켰다는  생각과 마음이 만들어낸 태도가 문제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 뒤로도 다른 부부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하느라 나는 안중에 없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럴 때면 그래. 나는 워낙에 낯가림이 심하고 그가 대신 나서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분위기를 이끌어가니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 생각한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 여행기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가 목격한 찰리 채플린의 아내는 자신의 우울한 표정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표정이든 말이다. 찰리 채플린이라고 명시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 미국 여행기를 본 그의 아내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을 것이다. 굳이 누구라고 명시하지 않았어도 찰리 채플린의 아내는 움찔했을 텐데. 나처럼 말이다.

그가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이 몹시 부럽다. 말하고 싶은 것이 가득 쌓여 흘러넘쳐도 말하지 못하는 나 같은 내성적인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라도 토해내니 다행한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