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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경혜 Feb 10. 2022

후크의 눈으로 세상 구경하기.

한번 고영희가 되어보겠습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목욕탕 의자가 하나 있다. 후크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베란다에서 나도 잠깐 앉아 책도 보고 시간을 보내려고 가져다 놓은 것인데 캠핑용 의자가 생겨 베란다 구석에 밀어놓았다. 근데 어느 날부터 후크가 그곳에 올라가서 바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3층 높이 같은 2층이라 창문을 활짝 열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소리도 잘 들리고 목욕탕 의자 위로 올라가면 아래가 잘 내려다 보였다. 열심히 구경하길래 나도 후크옆에 쪼그려 앉았다. 후크의 눈높이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매번 봐왔던 풍경이 좀 더 세세하게 개별적인 생경함으로 다가왔다. 낙엽 굴러가는 모양과 소리, 나무 한그루 한그루의 이파리 생김새, 등걸의 무늬, 코 앞 방충망에 앉은 먼지 같은 날벌레부터 냄새까지. 나는 후크가 자리를 뜬 후에도 한참을 쪼그려 앉아있었다. 나의 높이에서는 볼 수 없던 것들을 왜 후크의 높이에서는 보이고 느껴지는 것인지 후크가 된 듯 킁킁거리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게 보였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풍경으로만 인식되던 것이 생명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덩달아 나도 여기, 함께 살아있구나. 이 나무들 생명들과 함께 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동질감의 편안한 감정이 온몸을 감쌌다.


어느 책에서 구본창 선생이 일상의 보석이라는 제목으로 쓰다 만 비누조각들을 정성스레 나열해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에 대충 훑어봤을 때는 보석 인 줄로만 알았던 그것이 비누, 그것도 화장실에서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쓰다만 비누 조각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으로 쓰임 받다 버려진 비누의 마지막을 정성스러운 손길과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은 낯선 공간에 낯설게 배치되어 비누조각의 생애, 하찮게 여겨지던 그 생애가 한 인간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고귀하고 경건하게 느껴졌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어 범접할 수 없는, 새 비누는 따라 하려야 따라 할 수 없는 고귀함. 비누의 초상.


아! 그리고 눈높이를 같이하며 후크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함께 바깥을 구경할 때, 우리 둘은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나는 마치 작은 고양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며시 후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매번 귀엽게만 봐오던 후크의 뒷덜미로 이어진 등이 어쩜 그렇게 새삼 듬직하고 든든해 보이던지. 그 등에 기대고 싶어 져서 살포시 기대 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영화 고양이의 보은 속 고양이처럼 우수에 찬 빛나는 눈을 하고 신사복을 늠름하게 차려입은 후크가 통통하고 솜방망이 같은 두툼한 팔로 나를 토닥일 것만 같은 달콤하고 엉뚱한 상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매일 보는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어 하나하나 정성 들여 보아야 겨우 가능한 일이다. 내 눈에 낀 일상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 가끔은 후크와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고영희가 되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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