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이 한겨울 캠핑에 뛰어들면 교훈이라는 매를 맞습니다
눈앞에서는 불이 타들어가고, 머리 위에서는 눈이 오고, 꽁꽁 얼어붙는 몸을 데우기 위해 제자리에서 종종걸음으로 뒤뚱거리며 생각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서 나는 또 한껏 배우겠다고.
2024년 막바지. 겨울이면 늘 갔던 글램핑 혹은 템플스테이를 아직 다녀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길로 곧장 당일 예약이 가능한 글램핑장을 찾아봤다.
파주.
당시 고양시에 있었기에 딱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글램핑장은 인생이 늘 그러하듯 상상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추웠다. 호수 바로 옆에 위치해 물멍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지만 나와 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해가 진 이후라 캄캄했다. 윤슬은커녕 먹물을 푼 것처럼 으스스한 강물이 눈싸움을 져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열심히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라면도 끓였다. 하지만 기온이 너무 낮아서인지 고기가 서서히 익었다. 라면 물도 도통 끓을 생각을 안 했다.
우리에게는 한 대의 카라반이 숙소로 주어졌지만 바베큐장은 가림막 하나 없었고 조리대와 식탁도 카라반 밖으로 연결된 텐트에 있었다. 평소라면 불편한 줄도 모를 구조였지만 그날은 너무 추워서 온기 한 점도 소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화장실과 부엌 모두 카라반 안에 잘 구성된 글램핑만 다녀본 나에게 이곳은 레벨 2의 캠핑장이라는 것을.
레벨 1의 캠핑이 허허벌판에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이라면 레벨 2는 침대뿐인 카라반이 있다는 것이다. 레벨 1보다야 나을지 모르지만 진짜 캠핑은 해본 적 없는 나와 일행에게 한겨울의 레벨 2는 너무도 가혹했다.
눈은 며칠 전에 내렸을 텐데 파주의 산골은 여전히 군데군데 빙산 같은 눈이 쌓여 있었다. 오케이. 이게 겨울 캠핑이지. 그런데 예고 없이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좋아... 운치 있어.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모닥불 앞에 앉아 타들어가는 장작을 바라보며 가야금 캐럴을 들었다. 고생했고 행복했던 한 해를 떠나보내며 건배도 했다. 무릎에는 담요를 꼬옥 두르고. 강한 그리움이 삐져나왔다. 따듯하고 천장이 있는 집. 우리 집. 슬슬 이번 여행의 테마에 가닥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너무 추워서 일찍 잠들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깜깜하고 추우니 산책은커녕 모닥불도 사그라든 지금 할 수 있는 건 카라반 콕 뿐이었다. 하지만 레벨 2는 꿀잠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카라반은 침대 두 개가 마치 테트리스처럼 겨우 끼워져 있는 크기였다. 라디에이터가 있지만 강한 외풍을 막아주진 못했다. 전기장판마저 두께가 얇아서인지, 날씨가 유난히 추워서인지 제 기능을 뽐내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챙겨 온 작은 라디오를 켜며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겠다고 웃었다.
카라반의 천장은 세모 모양이어서 침대에 누울 수는 있지만 앉을 수는 없었다. 앉으려면 희한하게 휘어 자란 고목처럼 등을 요상하게 구부려야 했다. 바람이 불면 벽이 흔들렸다. 산짐승이 내려온 건지 한 번씩 바깥의 나무 데크가 삐걱거렸다. 영화에서는 이럴 때 괜히 나가보는 사람이 먼저 건사하지 못하므로 얌전히 있었다. 몸을 고쳐 누우면 카라반에 끼워진 침대가 흔들리며 그 반동에 문까지 덜컥거렸다. 애초에 문은 잠기지도 않았다.
우리는 허탈하게 웃으며 체념했다. 아니 근데 진짜,라는 말이 나와도 결국엔 허허 웃었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지. 차라리 잘 차려진 야외 캠핑이 낫겠어. 허리는 펼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런 대화를 하며 코 앞에 있는 천장을 멍하니 응시했다.
집이 그리워졌다. 이것이야 말로 사서 고생이 아닌가. 발가락이 시렸다. 코끝도 시렸다.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린 겨울에 외풍을 막아주고 천장이 높은 집에서 추위에 떨지 않으며 누군가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침입할까 봐 걱정하지 않고 잠드는 건 크나큰 행복이구나. 거기서부터 모든 행복이 시작됐던 거구나. 그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을 되돌아보게 됐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더니. 아직 부모님 집에 붙어사는 나는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저 내쫓지 마세요. 바깥은 너무 추워요.
집 말고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은 넘쳐난다. 멀쩡한 신체. 앞을 보고 걸을 수 있는 것. 지금처럼 글을 쓸 수 있는 것. 숨을 쉬고 맛있고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는 것. 전부 나열하기엔 끝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나의 부족함만을 찾으려 애썼던 걸까. 나를 괴롭히면서까지.
사람들은 종종 본인이 지나온 길을 당연하게 여긴다. 물건이든 경험이든 지식이든 '나'를 한번 거치면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은 거쳐간 것이라고 어림잡게 된다. 내 세상에서 옵션이었던 것이 디폴트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종종 '내가 아는 걸', '너는 모를 때' 부조화가 생긴다. 처음엔 놀랄 수도 있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남에게는 그렇지 않다니, 생각조차 못했겠지. 하지만 이런 차이의 자각이 경멸 혹은 불가해가 아닌, 이해와 도움으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내가 알고 있으니까 남도 알고 있을 거라고 여긴 것들, 내가 가졌으니까 흔한 것이라고 치부한 것들 중에 반짝거리는 게 있다면 꺼내서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그 보석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렇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릴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있지만 간과했던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내 지식과 능력, 그리고 경험들을 평가절하했다. 나도 아는 건 남도 알 테니까 내세우는 건 창피한 거라고 나 자신을 단속했다. 왜 그랬을까. 나에게 미안해진다. 나아가 나만의 지혜를 전수받지 못한 세상에도 미안해진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노하우가 될 수도 있는데. 겨울 캠핑은 큰맘 먹고 도전해야 한다는 당연한 조언이 내게 필요했던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나를 스피커 삼아, 그 안에 담긴 교훈과 철학을 바깥으로 꺼내보려 한다. 이 소리 한 줌이 누군가에게 아하! 혹은 오호라, 하는 순간이 될 수만 있다면 성공이다. 그렇게 좋은 이야기가 날개를 달고 널리 퍼져 한 줌의 온기라도 선명히 전하는 천마가 되기를 바란다.
제목을 다시 보니 중의적이다.
누군가 당연하게 생각한 무언가에게 보내는 연하장인 동시에, 무언가 당연하게 생각한 누군가에게 보내는 초대장 같다.
물론 전자를 생각하고 쓴 제목이지만 두 가지의 구분이 중요할까. 결국엔 일상에서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을 되돌아보고 그 소중함을 다시금 곱씹어 음미해 보자는 취지의 글이니까. 올해는 어느 때보다 춥고 시리지만, 그만큼 더 진하고 따뜻한 맛이 퍼지는 해로 기억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