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는가

니체의 한마디가 끌어올린 내 안의 목소리

by 장대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라던가.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나락으로부터, 심각한 질병과 심각한 회의로부터 돌아온 자는, 반드시 새로 태어난다.


이 얼마나 투기 넘치는 단언인가. 어디 한번 두드릴 대로 두드려 보라는 깜냥, 사회를 향한 으르렁거림, 세상에 내놓는 으름장! 질병 속에서도 이렇게 파이팅 넘칠 수 있는 니체를 보면 그가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강철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 건강하다. 적어도 몸에 심각한 질병은 없다. 뼈 마디마디가 쑤시고 만성 피로를 달고 사는 정도지만 이건 현대인의 키링 같은 거니까. 하지만 정신은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몸이 감기에 걸리면 눈에 보이는데 마음이 감기에 걸리면 그건 보이지 않으니까, 잘 모르겠다. 몸이 아프면 병가를 낼 수 있듯이 마음이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저 마음이 너무 아파서 오늘 출근 못 할 것 같아요."


몸이 아파도 꾀병이라 하는데 마음이 아프다 하면 어떤 말이 돌아올까.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돌아와서, 니체가 말한 심각한 질병은 나를 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락과 심각한 회의는? 나락까지 가진 않아도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다. 그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면 끝없이 시커먼 구렁텅이가 보인다. 저게 나락이겠지. 가보고 싶지는 않다. 잠깐 몇 발자국 물러서본다.


남은 건 심각한 회의다. 회의(懷疑). '근거가 없기 때문에 판단을 보류하거나 중지하고 있는 상태' 즉, 의심하는 상태. 깊고 절박한 의심과 고뇌가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이건 가능성 있다. 마음이 아릴 때까지 의심하고 고민하는 건 내 취미니까.


힘들다. 괴롭다. 내 삶인데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삶이니까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는 고집이 괴롭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헛헛함이, 무엇을 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무망감이 괴롭다. 이 모든 고민을 붙들고 앉아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힘들다. 나이를 먹고도 아직 고집 센 철부지 같은 나를 일으키는 일이 고되다. 얼마나 더 쉬어야, 얼마나 더 시간을 주어야, 얼마나 더 괴로워해야 나아질 수 있을까. 나아질 수는 있을까. 나아져야 하는 걸까. 아니, 나아지고는 싶은가?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나락으로부터, 심각한 질병과 심각한 회의로부터 돌아온 자는, 반드시 새로 태어난다.


다르게 말하면, 새로 태어나지 않으려면 나락과 심각한 질병이나 회의로부터 돌아오지 않으면 된다. 나락과 질병과 회의, 그곳에 머무르면 우리는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 더, 우리는 반드시 새로 태어나야 하는 존재인가? 이미 한번 태어나 지금까지 먹고 자고 숨 쉰 것도 용한데, 다시 한번 새롭게 탈피해야 하는가? 그것이 존재의 과업이라면 가혹하다.


하지만 지금 괴롭고, 불편하고, 바뀌고 싶다면 그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심각한 회의, 여기 머무르면 나는 영영 가라앉고 쭈굴쭈굴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축축하게 부패할 것이다. 심각한 회의는 보송보송하거나 열성적이지 않고, 칙칙하고 물컹하며 짓무른 성질이기에 말라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죽어도 끈적하고 질척하게 썩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사라지고 싶지 않으니 벗어나야겠다. 심각한 회의를 털고 일어나 그 자리에 두고 떠나 와야지. 반드시 새로 태어나야지.


그러기 위해 오늘도 글을 써본다. 니체를 좀 더 읽어봐야겠다. 강철 망치를 휘둘렀던 그를 반면교사 하든 주워섬기든, 아무튼 그를 더 읽어보기 위해 잘 살아봐야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앞의 고난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