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영감일지 feat. 아침의 라디오>
모처럼 말간 하늘빛이 따뜻한 아침 식탁에 내려앉는다. 작년 엄마 생신 때 선물한 레트로 라디오를 켜고 가만히 앉아 귀 기울이는 아침. 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 이어가는 행복한 순간이다. 오전 10시 조규찬의 라디오 <매일 그대와>- 잠시, 멈춤 코너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멋지게 보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멋진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활기를 느끼는 순간, 활기찬 사람으로 보이고, 주눅들어있는 사람은 아무리 멋지게 차려입어도 초라하게 보인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몸의 느낌들이 쌓여간다는 점이다. 어릴때부터 소심해서 늘 주눅들어 지냈던 사람은 그 주눅든 자세가 몸에 붙어버린다.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고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버릇이 된 느낌이다. 느낌을 느낄때마다 취했던 자세다. 습관이 된 동작을 오랜 세월 반복하면서 특정 근육이 짧아지고 딱딱해진다. 그러면 몸 표정이 시무룩해지고 그 몸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모두 조각가들이다. 매 순간 피와 살과 뼈를 가지고 스스로의 모습을 조각하고 있다."
- 곽세라 <앉는 법, 서는 법, 걷는 법>
몸의 표정이라는 자세는 그 사람의 평소 성격과 그가 반복해서 느꼈던 감정을 드러낸다. 늘 조급한 사람은 의자에서 일어날 때도 구부정한 자세가 앞으로 쏠려있다. 늘 걱정이 많고 긴장해 있는 사람은 어깨가 안으로 말린채 딱딱하게 굳어있다. 생각과 감정이 몸을 지배하고, 결국엔 거꾸로 굳어버린 몸 자세가 정신을 가두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벽에 비친 내 그림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 앉고, 서고, 걸을 것인가. 어린 아이처럼 새로 걸음마부터 배우고 싶을때가 많다.
- 조규찬 라디오 DJ 멘트 중에서
순간, 내 시선이 나로 향했다. 평생 뻣뻣했던 나에게로 말이다.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던 무언가를 끄집어낸 기분이었다. 자신의 몸의 표정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듯, 그간의 세월에 따라 감정은 얼굴에 스미고, 자세의 습관은 몸에 붙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온당한 말이다. 하지만, 몸의 표정이 있다는 사실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저 내 몸을 위한다는 행위는 운동이나 식단조절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운동하는 단 한 시간 외에 나머지 평소 생활 자세와 움직임으로부터 내가 어떤 인간인지 결정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몸을 구성하는 근육의 경도, 모양, 배치만으로도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지 까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바쁜 현대 사회에 매몰 당한 채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모르고 지내는 사실이다. 죽으면 몸 하나가 어쩌면 전부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몸이 고갈되어 가는지 모르고 혹사 시키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몸의 표정은 어떠할까?
디제이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의 표정이라는 말도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이 사실에 대해 온 몸으로 깨우친 몇 달 전의 일이 번뜩였다. 인생 최대 암흑기였던 작년 십월, 퇴사하고 다녀온 장기 유럽여행을 끝으로 몸이 결국 탈이 났다. 직장인 2년차 때부터 지금까지, 만성적인 긴장성 두통과 목,어깨 통증을 달고 살았다. 병원도 자주 찾았다. 10년이 넘어갈 즈음, 허리에도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낌적으로 알고 있었다. 퇴사 후, 찌부등한 마음을 다잡으려 갔던 유럽에서 장시간 비행과 캐리어의 무게까지 더해져 10년간 사무직이라는 고행의 무게가 결국 걷기도 힘들 정도로 내 몸을 짓눌렀다. 결국, 다시 찾은 정형외과 의사의 소견은 허리디스크, 일자목, 척추측만증이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진단을 받았다.
도수치료 첫 날,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내 몸을 진단해본다며 근육을 몇 번 눌러보시더니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제가 물리치료사 일을 10년 가까이 했는데, 선생님 연령대의 같은 성별의 환자 기준으로 봤을 때 근육의 경직상태와 뻣뻣한 정도로 Top 5 에 듭니다..하루 종일 컴퓨터하는 사무직으로 오래 일하셨나봐요?"
그렇다. 물리치료사 선생님은 내 근육의 모양과 경도만으로 나의 직업을 간파했다. 파릇한 이십대 청춘부터 지금까지 10년 7개월을 회사 컴퓨터 앞에서 내 인생의 2/3를 소진했다. 일에 대한 여유가 생기는 연차였지만, 그간의 세월은 딱딱하게 굳어진 내 몸이 증명하듯 말했다. 늘 마감기한, 신제품 출시, 고객 행사 일정에 쫓기듯이 처리했던 업무, 고효율을 추구하는 마케팅 프로젝트, 당연한 멀티플레이어 역할, 더 잘하려는 욕심들로 점철되었던 십년이라는 세월은 자연스레 어깨가 말리고 등, 어깨, 목 줄기를 타고 뒷머리까지 근육을 경직시켰다. 퇴사를 선택하고 휴식기인 지금도 아직 만성두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연봉, 성취, 성과욕과 맞바꿔온 십년이었기에 몇 개월 만에 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몸 뿐이랴 마음도 굳어진 것을..
왜 기쁘면 기쁘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을 못하니!
직장에서는 감정을 숨긴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다양한 인간이 존재하는 조직 안에서 원만한 인간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프로라고 신입 때부터 배웠다. 사회초년생 시절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 계속되는 파트너의 말도 안 되는 업무 실수의 반복과 대충하는 업무 태도에 꾹꾹참다 화를 한번 냈다가 나만 감정적인 인간으로 분류되고 마는 우를 저지른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철저한 포커페이스의 달인이 되려고 노력해왔다. 그 이후 사회 생활에 탁월한 직장인으로 거듭났지만, 부작용은 경직된 내 몸으로 표출되었다. 스트레스와 분노를 감추고 살아가다 보면 몸으로 터져 나온다. 그러다 보니 개인생활에서도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이 어색해졌다. 마음의 표정도 몸의 표정으로 나타난다.
인생 휴식기를 가지며 두번째 삶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나는 말랑말랑해지고 싶다.
긴장감으로 스스로 내몰았던 고효율형 생활 습관을 내려놓고,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며 유연하게 둥둥 떠다니는 말랑한 구름처럼 살고 싶다. 파란하늘의 뭉게구름으로, 높은 새털구름으로, 바람 한 점 없는 날 천천히 흘러가는 게으른 구름으로, 때로는 비를 한껏 머금은 먹구름일수도 있겠다. 어떤 두 번째 직업을 갖더라도, 일상의 습관이 내 몸의 표정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나이 들어 가며 비춰지는 내 그림자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아장아장 아기 걸음마 배우던 시절로 돌아가 서는 법, 걷는 법, 앉는 법까지 내 몸의 표정을 위해 새롭게 더듬어가야만 건강한 내일이 있다. 변덕 있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며,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더 많이 표현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소리 내어 울어보자.
<말랑말랑해지는 사소한 습관>
1. 더 많이 웃고, 덜 걱정하기
2.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 그리고 알아차리기
3. 매일 3km 걷기 운동을 하며, 내 몸의 표정 돌보기
4. 우리집까지 17층 계단 오르기 (허리 디스크에 최고의 하체운동이다.)
지난 세월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생기를 얻는 하루다. 말랑말랑해지는 나를 기대하며 어떤 기분 좋은 속삭임이 들려올지 매일 아침의 라디오에 귀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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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image source: Photo by Jonas Weckschmied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