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삭 Nov 11. 2022

오전 10시, 나는 매일 사치를 부린다

평일 오전 10시, 나는 어김없이 요가를 하고 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요가원 앞에 도착하면 8시 55분. 요가원에 들어가 매트를 펴고 9시에 맞춰 나만의 세계에 돌입한다. 얼마나 바랐던 삶인가. 학창 시절 하필 1교시에 내가 싫어하는 수학 수업이 있는 날이면, 창밖에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벚꽃 잎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름다운 봄날, 저 벚꽃잎처럼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아 마우스 커서만 바라보던 회사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창밖의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면 내 인생도 저렇게 속절없이 질 것 같아 슬펐다. 이쯤 되면 문제는 자연을 수시로 변화시키는 사계절일까, 그걸 고대로 보여주는 창문인 걸까.           


내가 좋아하는 오전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세상을 떠날 때 이 아름다운 순간을 아무렇게나 써버린 것을 가장 후회할 것 같았다. 오전 시간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알람을 맞춘 듯 언제나 일출 직전에 일어나는 나의 생체시계도 한몫한다. 아침형 인간에게 오전 시간은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넘쳐나는 시간대다. 이 시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게 곧 나에게는 성공한 인생이었다.           

8년 전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1년은 매일 아침 7시마다 요가를 하고 회사로 출근했다. 그러고 나서 1년은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느라 퇴근 후 밤늦게까지 수업을 들었다. 이어 1달간 인도로 수련하러 떠났다. 돌아오니 때마침 요가대회가 있다길래 주말에도 연습하며 출전하기도 했다. 사랑에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 하면 할수록 신나기만 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요가를 할 수 있는 시간대는 출근 전 아침 시간, 식사를 포기하면 가능한 점심시간, 퇴근 후 저녁 시간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전 반차를 낸 어느 날, 우연히 아침 10시 요가를 접해본 뒤로 오전 시간이 나에게 딱 맞는 요가 시간대임을 깨달았다. 비몽사몽 하지도 않고(새벽), 후다닥 하느라 바쁘지도 않고(점심),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에 급급하지도 않는(저녁), 아침형 인간에게 완벽한 시간대였다. 이후로 오후 반차 대신 오전 반차를 쓰기 시작하고, 그때를 이용해 요가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휴가를 내지 않아도 오전에 마음껏 요가를 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오랜 시간 쌓아 올리는 반복의 힘을 믿는다. 시공간을 초월해 대상과 오롯이 나만 존재하는 몰입의 힘도 믿는다. 요가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존재한다. 언제 떨어질지 몰라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도했던 시르시아사나(물구나무서기 자세)는 이제는 기다리던 게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땅에 박는다. 땅을 딛고 바르게 서는 타다아사나와 머리를 바닥에 대고 똑바로 서는 시르시아사나가 결국은 같은 동작임을 알고 있어서다. 두 팔을 직각으로 바닥에 댄 후 두 다리를 거꾸로 세우는 핀차마유라아사나(공작새 자세)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바닥에 육중한 몸을 패대기치기 일쑤지만, 잠시라도 균형을 잡았을 때 느끼는 고요를 맛보려고 오늘도 두 다리를 공중으로 차올린다.     


선 채로 두 손을 뒤쪽 바닥으로 짚었다가 다시 올라오는 드롭백컴업은 잘되기도 했다가 아예 안 되기도 하는데, 결국은 잘해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오늘의 실패가 속상하지만은 않다. 아르다마첸드라아사나(척추 비틀기 자세)는 아이를 많이 안은 날에는 오른쪽 등이 심하게 수축되어서 양쪽 불균형이 심하지만, 아이의 ‘안아’ 병이 잦아드는 내년쯤이면 수월해질 것도 알고 있다. 고난도 아사나일수록 한번 흐름을 타면 쭉 잘되는 걸 알고 있고, 아직 그 흐름이 나에게 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매 순간 나는 좀 더 나은 ‘나’에 가까워지고 있다.            


두 아이의 임신 기간에도 요가를 했고, 출산 전날에도 요가를 했다. 만삭일 때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위로 향한 활 자세)를 한 후 드롭백컴업을 했을 때는 뱃속 아이도 같이 신난 것 같아서 흥에 겨웠다. 가뜩이나 솟아 있는 배가 하늘을 향해 보란 듯이 번쩍 들어 올려지면 뱃속 아이도 신나는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이, 꼬맹이, 스릴만점이지?’라고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출산 후 조리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요가원부터 찾았다. 요가하는 내내 젖이 불어서 집에 오자마자 아이에게 폭포수 젖을 먹였다. 출산으로 벌어져 있는 골반이 행여 더 벌어질까, 남들은 골반을 유연하게 하는 자세를 할 때 나는 골반을 조이는 자세를 하면서 지난 몇 달간 고생한 몸을 살살 달래주었다.       

     

내게 요가를 하러 가기 싫은 날은 없다. 요가하러 갈 수 없는 날만 있을 뿐이다. 요가원이 방학에 들어가 갈 수 없을 때면, 요가 매트를 겨우 깔 수 있는 내 방에서 인터넷을 보면서 아사나를 따라 한다. 팔을 뻗으면 행거의 옷이 손에 닿고, 양다리를 벌려야 할 때면 몸이 벽에 부딪히지 않게 수시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1시간이 훌쩍 지나고 온몸에 땀이 흐를 때면 ‘역시 이번에도 하길 잘했어’라며 스스로에게 쓰담쓰담을 해준다.  

     

엄청난 부를 가지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명성도 있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생각하고,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성공적인 삶과는 거리가 꽤 있는 듯하다. 그래도 지금이 무척 만족스러운 건 요가에서 원 없이 사치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딱 한 가지를 분에 넘치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