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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Nov 29. 2022

제주에서 요가를 한다는 것

습기라는 선물


예전에 인도로 요가 수련을 갔을 때 나는 리시케시에 있는 아쉬람에 머물렀다. 인도에서 현란한 아사나를 할 것이라 기대하고 갔지만, 오히려 그곳은 명상 위주였다. 이유는 기후에 있었다. 리시케시는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6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야 하는, 히말라야 기슭에 위치한 지역으로 섭씨 9~23도의 한대 기후다. 따라서 육체적인 아사나보다는 정신적인 수련, 명상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에 인도의 남부 지역은 따뜻하고 습해서 아사나 위주의 요가가 발전했다. 인도 남부의 요가 성지 마이소르에서 유래한 아쉬탕가 수련법이 '마이솔 클래스'다. 기후가 우리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요가 인생 8년 중 절반을 서울에서 절반은 제주에서 보내고 있는 지금, 그 차이를 선명하게 느끼고 있다.


제주의 날씨는 늘 습하다. 육지(제주에서는 제주를 제외한 한반도에 위치한 한국을 ‘육지’라고 부른다)와 달리 엎어지면 온 사방 가까이에 바다가 있다 보니, 집안 습도계가 웬만해서는 60%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여름에는 습도계의 기본값이 70% 이상이다. 일기예보 뉴스에서 같이 나오는 불쾌지수는 기온과 습도에 따라 인간이 쾌적하게 느끼는 정도를 계산해서 나타낸 수치다. 제주살이 6년 차에 접어든 나는 나만의 불쾌지수를 파악하고 있다. 집안의 습도계 수치가 70%가 넘어가면 괜스레 몸이 찌뿌둥해지고, 80% 중반을 찍으면 제습기나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로 불쾌지수가 치솟는다. 내가 어느 선까지 괜찮은지 알지 못하면, 애먼 곳에 나의 불쾌함을 풀 수 있다. 내 몸을 미리 아는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제주의 날씨는 대체로 흐리다는 사실을, 제주에 3박 4일씩 놀러 올 때만 해도 몰랐다. 그때는 서울에서 가장 먼 한국으로 왔다는 기쁨에 취해서 날씨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던 것 같다. 5년 전 초봄에 제주로 이주해 맞이한 그해 4월. 나는 어제도 흐리고, 오늘도 흐려서, 대체 언제까지 흐린가 싶어 일기예보를 봤더니 일주일 내내 먹구름 표시가 있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제주의 4월은 조금씩 비가 자주 오고, 갑자기 안개가 끼는 습한 날이 많다. 이때 제주의 작물들이 쑥쑥 자라는데, 특히 고사리가 제철이라 이 봄장마 기간을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제주에 먼저 살고 있던 이주민들이 제주살이 필수품으로 제습기와 제습제(물 먹는 하마)를 꼽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몇 달만에 꺼낸 옷과 가방에 퍼렇게 곰팡이 슬어 있더라는 괴담은 진실이었던 것이다. 


당시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느라 육체적 육아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던 나에게는 습기로 인한 몸의 통증이 더 무시무시했다. 그날 아침도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었다. 거실에서 제주 서귀포 앞바다가 보였는데, 비까지 내리니 세상의 모든 습기가 내 몸에 들어온 듯 한없이 축축 늘어지기만 했다. 그리고 어깨와 팔에 통증이 시작됐다. 차라리 내 어깨와 팔이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깨와 팔이 내 몸에서 잠깐이라도 분리되면 이 통증이 사라지지 않을까. 오른손잡이라 아이를 안을 때나 집안일을 할 때 몸의 오른쪽만 과도하게 사용하니 몸의 불균형이 심해져 있었고, 특히 오른팔과 어깨가 문제였다. 어떻게든 통증을 줄이고자 왼쪽 팔로 오른쪽 어깨와 팔을 손에 잡히는 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습기는 쥐약이며, 평소 출산을 경험하거나 사고를 경험한 이들이 비 오기 전에 온몸이 쑤시다며, 자신의 몸이 곧 일기예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아예 비가 확 내리면 상관없다. 하지만 비가 조금씩 오거나 비가 올락 말락 하면 오히려 통증이 더해졌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움직여야겠다 싶어서 어깨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아사나를 생각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비달라아사나로 윗등과 아래 등을 늘렸다. 테이블 자세에서 한쪽 팔을 반대쪽 팔 아래로 넣고 등을 비틀어 짰다. 하면 할수록 통증이 완화되는 듯했다. 집중 있는 수련을 한다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당시 나는 제주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마땅한 요가원을 찾지 못한 터였지만, 근처에 어느 요가원이라도 달려가야 했다. 병원에 황급히 치료를 받으러 가는 사람처럼, 집에 있던 옷차림으로 다급히 요가원으로 냅다 달렸다. 아사나가 절정으로 향해 갈수록 몸은 힘들어졌지만, 반대로 통증은 완화되었다.


내 몸은 아사나라는 약을 쪽쪽 잘 빨아먹었다. 요가원을 나설 때의 나는 요가원을 들어서기 전 나와는 180도 달랐다. 제주는 습도가 높으니까, 습도가 높으면 몸의 통증은 더 심해지니까 나의 통증은 어쩌면 제주에서 살아서 더 심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미 제주에 살기로 한 이상,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은 제주에서 통증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열심히 요가를 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따지니 매일 ‘꾸물꾸물’한 날씨의 제주에 살기 위해서는 매일 요가를 가야 했다. 


여느 때처럼 흐린 날 덜 아프기 위해 요가를 하다가 나는 내 몸의 기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게 됐다. 골반 확장이나 후굴과 같은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아사나가 특히 잘되는 것이다. 다리가 일자로 되는 하누만아사나, 양 옆으로 열리는 사마코나아사나를 하면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굽은 어깨와 뻣뻣한 등을 평상시와 반대 방향으로 써야 해서, 극도로 꺼리는 후굴 또한 비 오는 날만큼은 유난히 잘됐다. 몸을 앞으로 숙이는 전굴이 후굴보다 수월하다고 생각했는데, 습한 날에는 전굴보다 훨씬 후굴이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몸이 휙휙 젖혀지고, 구부러졌다.


이걸 경험한 뒤로 나는 흐린 날을 기다리게 됐다. 7~8월이 되면 비가 안 오는 날보다 오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날은 아사나를 취하기만 했다면 이내 쭉쭉 열리는 ‘확장’ 성수기다. 집안 습도계 수치가 70% 넘어가기 시작하고, 하늘에 구름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설레기 시작한다. 오늘은 또 얼마나 열릴까. 내 몸은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나에게 보여줄까. 제주에 사는 이들에게 습기는 ‘물 먹는 하마’로 퇴치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습한 날은 스스로 ‘물 먹은 몸’이 되어 더 깊은 아사나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이었고, 습하지 않은 날 갈고닦은 수련의 결과물을 달콤하게 누릴 수 있는 기회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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