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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Sep 15. 2023

나의 냉소는 어디서 왔을까

요즘의 나는 istj일까 한다는 말을 들은 친구는 본인이 istj였을 때 염세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긍정적인 istj의 모습을 보여줄게, 진심을 담아서 장난처럼 대답했다. 그러고 싶었다. 나는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다 스스로가 늘 냉소적으로 살아왔다는 걸 맞닥뜨리자니 머릿속이 멍해진다. 이 또한 오랫동안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살아왔던 거니까 그런 거구나 싶어서 글쓰기 창을 켰다.


  상처가 없고 고생을 모르는 사람을 싫어한다 나는. 구김살 없는 사람들이 부러우면서도 사랑할 수는 없다. 스무살의 내게 스물 다섯이던 동아리 언니는, 본인이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시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나보다 한참 선배면서 주책이라고도, 약점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사실 그 언니가 아직도 애틋하다. 그리고 다음 해 스물한 살의 나는 스무 살의 남후배가 설거지를 처음 해본다며 젓가락을 하나하나 집어서 닦으며 콩쥐라도 된 듯 슬퍼하는 모습에 오만정이 떨어졌었다. 전기밥솥을 태운 후배에게도 그랬다. 티 내지 않고 알려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리고 사실은 아직도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을.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사람이 놓아지는 이유는 그런 순간들이었다.

  누군가에게 속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도, 어리석다고도 생각하면서 나는 정상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서른 해를 살았다.


  이혼 가정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망설여진다는 걸 지금 키보드를 누르는 데 머뭇거리는 시간에서 느낀다. 지난 잡지의 가족 호에서 모부의 이혼을 말했던 사람들은 다 아무렇지 않아져서 쓴 거였을까, 그렇게 되고 싶어서 쓴 거였을까? 나는 이혼 가정이어서 슬프거나 괴로웠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 정상인지 정의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게 어려웠던 것 같다. 그냥 그게 다 정상이었던 걸 지금은 아는데도, 엄마는 그걸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런 이상한 모양새로 아빠와 살기도 했던 거겠지.


  아빠는, 경마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파산 신청을 했었나. 빚쟁이가 찾아오는 집이었다. 그럼 모부가 이혼했고 따로 살고 있으니 이 집으로 오지 말라는 말을 하면 된다는 게 어린 내게 주어진 거짓말이었다. 그 말을 하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거짓말이 당연하고 그로부터 보호받는 삶이었다. 그렇게 보호받던 아빠는 안방에서 잠만 잘 자고 있었지. 엄마가 열심히 돈을 모아 이사를 할 때마다 찾아왔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택시를 운전했다. 그럼 낮 시간 동안 나와 동생은 시끄럽게 떠들거나 놀 수 없었다. 아빠의 짜증과 호통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렇게 번 돈으로 주말에는 경마장을 다녔다. 다시 생각해도 자격 미달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기 싫다는 다짐을 매일 했다. 나는 아빠와 정말 닮았다. 생긴 것도, 성격도, 웃음소리도 늘 빼다 박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더 다짐했다. 저런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그건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고맙다고 생각할 아주 작은 부분이기도 하다.


  엄마는, 그런 아빠랑 헤어지지도 못하고 세신 일로 돈을 열심히 벌었다. 나는 지금도 엄마가 일했던 게 자랑스러운데 엄마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 그림일기가 숙제였다. 엄마가 일하던 목욕탕에 놀러간 하루가 재밌고 또 엄마가 일하는 모습도 좋았기에 그림을 그렸고, 그때의 나는 그림에 꽤나 재능이 있어서 귀엽게 잘 그린 그림에 신이 났지만 엄마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지 말라고, 세신사라는 것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그림일기를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못했고, 이후로도 항상 엄마의 직업란에 피부관리사라고 써야 했다. 한참이 지난 나중에 유명한 드라마에서 세신사 엄마의 직업에 대해 부끄럽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알았다.

  아마 그런 환경에서 나는 나에 대한 걸 다 감춰야 한다고 배웠던 것 같다. 나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되겠구나. 그렇게 항상 내 얘기를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 본 가벼운 관계의 사람이라서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집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소설의 주인공을 보고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누구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약점이 될 거라고도 생각했고, 알고 싶지 않은 면일 수도 있고, 이런 결핍이 있어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었구나 판단당하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고. 그래서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쓰다 보니까 알겠다. 본인의 얘기해 주었던, 얘기를 했던 다른 사람들은 다 용감한 사람들이었구나.


  김지연 작가의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나 같아서였다. 지나간 일들만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다 소화해서 정리한 이야기가 아니면, 감당할 수가 없으니 꺼낼 수 없는 거다. 이제는 어느덧 많이 자라고 아픈 일도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혼자서도 나를 잘 들여다본다. 이렇게 멈칫하고 아픈 구석이 있다면 더 들여다봐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써보는 것만으로도 한결 낫네. 느리지만 내 평생에는 지금이 최선이고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뭐. 한 철 또 지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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