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콜릿(2001) 리뷰
1. Information
초콜릿(영국, 미국. 121분. 라세 할스트롬)
금욕과 절제의 행동규범을 따르며 고요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던 프랑스 시골 마을에, 신비의 여인 비안느가 찾아와 초콜릿 가게를 열게 되고 그 초콜릿이 마력을 발휘해 마을 사람들을 사랑과 정열에 빠져들게 한다. 그녀가 몰고 온 바람이 못마땅한 마을의 보수주의자들은 비안느를 추방하려 하지만 마을은 점차 영혼이 깨어나고 오래된 구습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마녀가 아닌
3. Appreciation review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미국, 2005)과 웡카(미국, 2024)에서 초콜릿은 아이들의 신비로운 상상, 환상이거나 어린 시절의 꿈과 같은 역할을 했다. 초콜릿이라는 간식이 가지고 있는 달콤함이라는 속성이 영화 속에서 살짝 두근거리게 하는 느낌과 동심, 우리가 잊기 쉬운 원초적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코닉하게 표현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속에서도 초콜릿이 가게 주인과 손님들을 연결하는 단순한 간식거리를 넘어 그 손님이 갖고 있는 개개인의 열망, 자유의지와 살짝 닮아 있다.
프랑스의 한 마을로 바람을 따라 비앙(줄리엣 비노쉬)과 그녀의 딸 아누크가 망토를 쓴 채 이사를 왔다. 비앙은 자신의 어머니와 조상들이 가르쳐 준 치유제인 카카오를 세계사람들에게 전파하겠다는 포부가 있는 떠돌이이다.
그녀가 북풍을 따라 도착한 마을은 철저한 종교적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마을의 시장이자 종교활동을 관장하는 레노 시장(알프레드 몰리나)은 마을의 기준에 따라서는 비앙의 언행과 차림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성당으로 초대했고, 비앙은 자신은 성당을 다니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비앙은 마침 초콜릿 가게를 열었는데 가게 이름은 ‘마야’였다.
여기에서부터 비앙과 레노 시장은 각자의 삶을 지탱해 온 가치관이 정면으로 대립하여 긴장관계에 있게 된다.
금기와 자유의지
절제와 욕망
성당과 개인
참회와 선택
검정과 빨강
정착과 이주
청교도와 집시
남동풍과 북풍
마치 밸런스 게임 같다. 영화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각자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마을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소소하게 보여준다. 사실 시장이 마을을 사실상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때문에 그가 늘 주창하는 금기와 절제, 성당과 참회의 미덕들은 마을 사람들을 속박하는 것처럼 초반에 드러나는데, 그것을 단편적으로 나타내는 인물이 조세핀(레나 올린)이다. 조세핀은 어눌한 말투와 폐쇄적인 성격, 구부정한 모습 때문에 공동체 색이 짙은 마을에서 약간 겉도는 인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공동체의 시스템은 조세핀이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음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남편의 악행을 신고해도, 남편은 시장이자 목사인 레노를 찾아가 진정으로 참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죄를 뉘우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있을 때 신에 의지하면서도 좌절을 겪어야 하는 상황은 영화 밀양(한국, 2007.)을 떠올리게도 한다.
비앙은 가게로 엉거주춤 들어오는 그녀를 환대하고, 그녀의 도벽에도 그 너머의 슬픔을 발견하며 폭력을 당한 날에는 기꺼이 구조의 손을 내밀어 호의를 베풀었다. 그 가게에는 그렇게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환영을 받지 못한 개인의 슬픔을 안고 손님들이 한 명씩 찾아오기 시작한다. 비앙은 슬픔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향과 맛을 내는 초콜릿을 권유하며 그들이 자신의 슬픔이전의 욕구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시장이 악인인 것 같고 비앙이 선인인 것 같은 초반부의 전개에 비해 중반 이후는 비앙의 자문자답 형 고뇌와 방황이 있다. 비앙은 마야인의 후예인 듯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초콜릿을 다루는 법을 배웠지만 그녀 역시 어린 나이에 방랑자인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생이별을 겪은 아픔이 있고, 운명처럼 그녀도 계속 방랑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런 자신의 유연함과 자유분방함이 마을의 여러 금기들을 건들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도 혼란을 가져다주고, 자신 또한 딸과 함께 또 떠나야 하는 운명과 마주해야 했다. 딸은 이 마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마을은 종교와 규범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아래 유지되고 있지만 엄연히 공동체였고, 그들은 정착했으며 서로를 위할 줄 알았다. 딸 아누크는 그 안에서 친구를 사귀고 학교를 다니며 그들의 이웃이 되고 싶었지만, 북풍이 불면 엄마인 비앙과 떠나야 했다.
비앙이 느끼는 고뇌와 슬픔에는 성장의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흐름 앞에 고민하고 울기보다는, 엄마가 자신을 떠난 상실의 순간에 비앙은 비로소 독립을 했고 엄마만큼이나 자신도 자유로운 영혼임에도 딸 아누크를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또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랑하는 딸의 정착을 위해 그녀는 자신에게 불어오는 운명을 받아내며 마을의 대척점으로서가 아닌 그곳의 일부로 남기로 했다. 마을에 잠시 들른 같은 처지의 이방인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내재된 자유와 열망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평생을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방랑자의 운명을 극복하며 정착과 연대를 통해 딸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었다.
4. Postscript
색이 너무 진하면
조화를 위해 흰색이나 검정을 덧칠한다
농도가 너무 진하면
잘 저어 지지 않으니 물을 붓는다
공기가 너무 진하면
다른 공기를 넣어 서로 통하게 하고
빛이 너무 진하면
눈이 부셔 감아버릴 수밖에 없다
그럴듯하게
어울릴 수 있게
평범한 듯한 모양새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진한 것을 넣어두었다
5. Blending
영화 초콜릿에서 처음 비앙과 아누크가 등장할 때 망토를 입고 나오다 보니 그 모습이 마녀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문과 마술로 해악을 가져다주는 마녀가 아니라 신비한 매력으로 인간의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본성을 깨닫게 하는 마녀라서 흡사 일본의 동화에서 데려 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랑스러운 마녀배달부 키키(일본, 102분) 생각납니다.
키키는 몇 남지 않은 마녀의 피가 흐르는 13세 소녀로, 마녀들은 1년 간 집을 떠나 생활하는 수련을 거쳐야 진정한 마녀가 될 수 있어서, 어린 나이에 체험 삶의 현장으로 실습을 나가게 됩니다. 세상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도 마녀의 유전자가 있어 떠나야 하는 딸의 운명이 엄마는 못내 섭섭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마녀 조기유학을 부모와 마을 사람들은 환영합니다. 이 장면은 홀로서기, 독립이 성장의 일면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키키는 일용할 양식을 얻고 반려묘 지지를 책임지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엉뚱하고 발랄하게 적응해 갑니다. 그 마을은 행색이 이상한 키키를 반기지 않았지만 키키는 자신의 본성을 믿고 밀고 나갑니다.
두 영화에서 각각 초콜릿과 빗자루라는 그녀들의 변치 않는 정체성을 엿볼 수 있고, 그 정체성이 갈라져 나온 듯한 분신인 딸 아누크와 반려묘 지지가 정서적으로 그녀들을 안전하게 지탱합니다.
자신의 의도에 따른 행동이 선하고 옳다고 믿었지만 여러 역동관계 속에서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탐탁지 않은 시선과 혼란, 소외를 감당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두 마녀들은 방법을 다른 데서 다르게 찾지 않고, 자신들이 이미 갖고 있던 내면의 힘, 솔직하고 진실된 힘을 한번 더 믿고 남김없이 자기 자신이 되는 선택을 통해 성장합니다. 두 영화에서 성장에 필요한 것은 독립과 헌신,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