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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현 Jun 22. 2023

모든 불분명한 것으로부터

영화 파수꾼 리뷰


[영화 파수꾼 리뷰] 모든 불분명한 것으로부터




1. Information

파수꾼(한국, 117분, 윤성현)

한 소년의 죽음에 대해, 아들의 공백에 대해 뒤늦은 죄책감을 느낀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쫓아 사진 속 절친해 보이는 이들을 찾아가지만, 한 명은 대답을 회피하고 한 명은 자퇴를 한 후 어디에도 없는 상황. 미성숙한 소통과 오해, 독단적 우정이 가져온 폭력과 그 상처의 전염을 아프게 그린 영화(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솔직한 질문과 성의 있는 답변만이 무언가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3. Appreciation review

tip.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태(이제훈)는 야구공을 무척 아낀다. 야구공의 성질과 비슷하게, 겉은 딴딴하고 세 보이지만 속은 텅 빈 기태의 마음이 야구공에 숨겨진 채 소중한 타인에게 전해진다.

야구공은 처음에는 희준(박정민)에게로, 그리고 동윤(서준영)에게로 닿는다.


영화는 기태가 자살했다는 소식으로 시작된다. 일어난 순서를 거꾸로 진행하여 결과를 먼저 보여줌으로써, 그 사연을 나눠 가진 이들의 입장과 감정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

아들인 기태에게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아빠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듯 몇 가지 단서들을 보며 생전 가까웠던 친구들을 찾아 기태가 어땠는지 물어보기 시작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기태의 아버지가 일종의 인터뷰를 하면, 그 친구들의 답변과 연결된 각자 사정이 나열되는 연출방식이다. 영화 ‘오! 수정’ (한국, 홍상수)처럼 같은 장면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같은 장면을 각자의 입장과 서툰 감정으로 나눠가진 이들이 나온다.

아버지의 입장에선 아들이 자살을 했고, 그가 지녔던 사진 속 친구들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거나 종적을 감췄다.


희준이와 기태가 어긋나는 장면

기태 아버지는 셋 중 희준이를 가장 먼저 만나 질문을 하고, 희준이는 망자의 아버지로서 어른을 예의 있게 대하지만, 말을 아낀다. 아니 많이 피한다.

기태, 희준, 동윤은 고등학생이고, 친한 친구이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 때부터 친했고, 희준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게 되었다. 성향은 셋 다 달랐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미안하면 사과하기보다는 ‘미안하다 시 X’까지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춘기 남학생들이다. 기태는 특히 학교에서 소위 위세 좋게 잘 나가는 학생이었기에 더더욱 자존심이 있지 사과 같은 것은 하면 안 되는 인물이다.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으로 열등감을 잘 숨겨오던 희준이로서는 그런 기태의 위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장난스럽고 성의 없는 그들의 소통방식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먹혀들지가 않았다. 찰나의 장난이라 기억하지 못하고 ‘그래 미안하다 시 X’하고 말지만, 그 찰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부서졌는지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희준이는 그렇게 가장 먼저 대열에서 이탈했다.


동윤이가 기태를 외면하는 과정

희준이의 답변을 곱씹으며 기태 아버지는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 거라 짐작하게 되고, 희준을 통해 간절히 동윤을 만나고자 한다.

동윤이는 그중 그나마 중재자 역할을 하는 친구였다. 그런 동윤은 희준이가 이탈한 상황을 보며 기태를 원망하게 된다. 기태가 가장 의지하던 동윤이지만 기태는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뒤틀린 방식으로 동윤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 동윤이는 셋 중에서 자신의 감정에 가장 솔직한 편이고 그걸 표현할 줄 아는 성격이다. 그래서 동윤이는 기태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을 것이고, 일방적인 기대만큼 그에게 크게 실망하게 된다.


‘똑바로 얘기해, 몰라서 묻잖아 ‘

그러나 아무도 서로에게 제대로 대답해 주는 장면이 없다.


영화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춘기시절의 남학생 3명의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 신인에 가깝던 배우 3명이 영화 속 서툰 주인공들의 감정을 불순물 없는 순수한 연기로 현실감 있게 표현한 수작이다.


아주 사소한 오해가 생기게 되면서 그동안 잘 지켜왔던 ‘우리라는 경계‘를 허물고 각자 ‘서로’를 경계하는 것으로 바뀌는 안타까운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3명의 친구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내 상처를 지키기로 마음먹게 된다. 그 상처는 남들에게 쉽게 들켜서는 안 되는 무기 같은 것, 그동안 미약한 존재로 살아오며 관심받지 못한 채 혼자 서서히 갈고닦아온 것. 그런 나의 상처가 드러나는 것은 친구를 잃는 것보다 더 겁이 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무기는 우리를 지키다 결국 서로를 향하고 말았다.


자기 자신과 우리 중 아무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파수꾼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덩그러니 남겨진다.





4. Postscript


처음에는 우리의 경계를 만들다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로 해
그러다 너마저 불분명해지는 것 같아
정체가 뭐야
해치고 있어
지키고 있어
우리가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내 속은 점점 좁아진 바람에
너는 이만 나가줘야겠어
이제 나를 보호할 참이야
내가 가진 무기는 하찮아서 꺼낼 용기가 나지 않지만


5. Blending

이제 막 사회는 청년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기로 마음먹은 것 같지만 어째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도 계속 힘들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마치 적과도 같은 사회, 위태로운 인간관계와 모든 불분명한 것들이 마치 개인 생애에 재난처럼 느껴지는 영화, 함께 볼 영화로 메기(한국, 89분, 이옥섭)를 추천합니다.


윤영이 일하는 병원에 어느 날 엑스레이를 이용한 불법촬영이 발생하고, 윤영은 어떤 이유로 그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자신과 남자친구라 추측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윤영의 의심은 몇 가지 에피소드 속에서 시험의 단계를 거쳐 ‘일단은 믿기로 해요’라는 다짐에 이르게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영화는 끝날 때까지 모든 이들이 다양한 상황(뒷말과 소문, 퇴사, 청년실업,  데이트폭력 등)에서 의심하는 모습을 독특하고 감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의심에 대해 다들 불충분한 근거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확신하는데, 그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애잔하게 소모되어 버리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X9(이엑구, 이옥섭+구교환) 유튜브채널과 영화감독, 배우로 친근한 두 사람이 2019년에 만든 영화 메기는, 전지적 메기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화자이면서 물고기인 메기가 주는 인상이 굉장히 긴장감이 있습니다.

정어리를 활어 수준으로 운반하기 위해 투입이 되기도 하고, 지진과 싱크홀과 같은 재난을 제일 먼저 감지하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평상시 너무나 평온하고 조용한 메기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영화를 보는 하나의 재미입니다.

그리고 이 독특한 느낌들을 더 극대화시키는 배우 구교환과 문소리의 연기, 다행스럽게도 잘 중화시켜 주는 배우 이주영의 연기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인간역사상 발생가능한 불행을 하나의 위트로 연출해 내는 감독의 인류애도 굉장히 힙하게 느껴집니다.



영화 파수꾼과 메기는 자신의 마음속 어떤 의구심이 관계를 해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고, 그러면서 서로를 경계하게 된 이상 그 시공간은 예전에 서로가 나누던 그것이 아니게 되는 과정을 하나는 섬세하고 비극적인 색으로, 하나는 발랄하고 독특한 색으로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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