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살아보는 게 더 좋은 걸까?
사실 처음 동거를 생각했을 땐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해보거나 깊이 있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냥 그 상황이 그게 낫다고 느껴지게끔 세팅이 되어서 그렇게 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남자친구도 나의 제안에 동의를 해줬기에 물 흐르듯 진행이 된 것이 동거였다.
그 당시 내가 강원도에서 서울을 오가면서 근무를 하는 와중에 독립을 했고 주말에만 서울에 오는 상황은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주말에만 서울에 오기 때문에 집이 평일에 비어있는 게 싫었는데 때마침 남자 친구의 집 계약도 끝나가는 시점이라 합친 게 가장 크다. 돈도 돈이지만 그때는 나름 그게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자 친구도 나의 제안에 흔쾌히 응해줘서 짐을 천천히 합치고 그다음엔 돈도 합치고 이것저것 다 합치고 난 다음에 주말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9개월 여 간의 주말 동거를 한 다음에 내가 다시 서울로 오게 되면서 주 7일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막상 같이 살아보니 동거를 시작할 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냥 데이트하고 밥 먹고 연애할 때랑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거를 해보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상황이 다 좋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동거를 해본다면 내가 앞으로 이 사람과 더 오래 살아갈 수 있을지 미리 경험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예습을 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 만약에 미리 예습을 했는데 그게 좋게 흘러가지 않는다면 거기서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 예습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미리 함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서로의 생활 패턴에 익숙해졌다. 어떤 스타일인지 이미 파악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감정 소모는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서로 맞춰가는 시기이긴 하다. 다만 처음보다는 더 유연하게 넘어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에서 동거를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돈이 나가는 일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돈도 합친 상태이고 서로의 경제관념에 대해서도 파악이 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우리의 가계를 꾸려나가는지가 관건이다.
다만 동거를 하고 결혼으로 이어진다면 서로가 꿈꾸는 신혼생활에 대한 환상은 없을 것이다. 미리 경험해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남자 친구는 이미 신혼생활에 대한 환상은 없다. 사실 애초에 내가 결혼생활, 결혼식 등에 대한 로망이 없어서 동거에 대한 결정을 더 쉽게 내린 것 같다. 신혼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거를 하지 않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동거를 미리 해보는 것은 예습과도 같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학생일 때에도 선행학습을 하는 게 잘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동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이 예습 시간이 내가 결혼이라는 단계로 넘어가기까지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됐다. 앞으로는 나처럼 미리 이 예습 시간을 겪는 커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