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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찐두빵 Sep 14. 2022

뭐? 다 말했다고?

밀려드는 배신감

남자 친구와 같이 지내고 있는 것은 사실 나는 비밀이었다.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도 비밀로 하고 있었기에 언행이 상당히 조심스러웠고 나중에 결혼을 하더라도 타인에게 내가 남자 친구와 동거를 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남자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 친구랑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펭귄 "근데 나는 왜 이걸 비밀로 하고 싶을까?"

남자 친구 "뭘?"

펭귄 "우리 같이 지내는 거 말이야."

남자 친구 "응? 난 주변에 다 알고 있는데?"

펭귄 "뭐라고?"

남자 친구 "회사 사람들도 다 알아. 우리 같이 지내는 거."


악!!!


우리가 동거 중인 것을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다 말했다는 남자 친구.

이 사실을 최근에 알고 밀려오는 배신감이란... 

나 혼자만 숨기고 애썼던 것 같아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 친구는 어차피 같이 지내다가 결혼을 하게 될 텐데 동거하는 걸 왜 굳이 숨기냐는 이야기를 했다.

뭐, 물론 그게 맞지... 맞는데...

 

뭘까? 이 마음은 뭘까 굉장히 고민이 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할 것 같은 우리 사회의 남녀 차이를 여기서 느낀다.

사실 나는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인데 나도 모르게 내가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었나 보다.

밖에서는 평등을 외치지만 내 마음속 한편에서 나도 모르게 몽글몽글 커가고 있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사회적 시선을 먼저 느끼고 행동한 나의 '겁'이다.

내가 느낀 겁먹음이 커지고 커져서 어느 순간부터 남자 친구와의 동거를 숨기고 내비치지 않고 혼자 사는 척, 남자 친구랑은 근처에 사는 척했던 것이다.


내가 '척'하는 사이에 나의 마음이 조금은 위축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나는 어디에서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렇기에 남들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조차도 모르게 남의 시선을 지레짐작한 뒤 나 자신을 숨기면서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라는 자기 위안을 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반쪽 짜리 나만 드러내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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