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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린 Aug 23. 2023

베를린에서 마주한 '옛날 명절날'의 모습

"이 장면 왠지 익숙하지 않니? 옛날 명절날 같아." 베를린의 한 아담한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한국인 여자 셋은 잠시 손을 멈추고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크게 한바탕 웃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여자 셋을 중심으로 파트너들까지 함께 모인 날이었다. 다들 공사다망하여 다 같이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 모임의 이름도 'Rarely in Berlin(드물게 베를린에 있는)'. 캐나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나와 남자친구는 오카나간 밸리에서 공수해 온 와인을 나눠 마시자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평소 맛깔나게 음식을 잘하는 S언니는 운 좋게 얇게 썰어진 삼겹살을 발견했다며 제육볶음을 준비해 왔고 J언니는 당일 아침 뮤직 페스티벌에서 돌아와 굉장히 피곤한 와중에도 우리가 좋아하는 바틀샵에 들러 사워비어 등을 사 왔다. 


'옛날 명절날' 같다는 말이 나온 것은 S언니가 고기를 볶고 J언니가 밥을 뜨고 내가 상추를 씻는 동안 우리의 남자친구들이 소파에 앉아 있는 광경 때문이었다. 한껏 들떠 오랜만이라며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 꼭 설날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안부를 주고받던 모습을 생각나게 했. "나도 사실 잠깐 그 생각했는데 말 안 했어!"라는 J언니의 말에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린 우리 셋은 "나는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거든", "그들이 할 일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내가 괜찮다고 했는걸",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등의 말을 바삐 꺼냈다. "하필이면 보기 그렇게 그들은 어찌하여 백인, 남성, 이성애자인 거냐"는 마지막 농담을 뒤로 손에 물기를 털어내며 우리는 다시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Ruhezeit(조용히 있어야 하는 시간)가 시작된 지 한참을 지나서도 우리는 알아서 소리를 낮추며 흥에 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다정한 친구들은 뒷정리까지 도와주겠다고 했고 수십 개의 접시와 잔들이 차례로 식기세척기 안에 들어갔다.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뽀득뽀득 깨끗하게 세척된 잔에 커피를 내릴 수 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전날 밤을 흐뭇하게 되새기다 '옛날 명절날' 같지 않냐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벌써 해외생활 8년 차이기도 하고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 가족은 '전형적'인 명절의 모양새를 갖추지 않은지 꽤 된 탓에 까마득한 기억을 살려보고자 했다. 그러자 고모들이 결혼한 이후에는 혼자서 음식을 준비해야 했던 외며느리 엄마를 도와 전을 부치던 날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엄마가 정갈하게 썰어놓은 애호박을 동생이 밀가루 옷을 입혀 (흘린 양이 더 많았지만) 내게 넘겼다. 그러면 나는 그 애호박을 계란물에 풍덩 빠뜨렸다가 프라이팬으로 이동시켰다. 엄마는 프라이팬 위에서 익어가는 애호박을 뒤집고, 또 뒤집었다. 희미한 기억에도 분명한 것은 엄마가 장보기에서부터 음식 준비까지 홀로 캐리 하는 주연배우였다면 아빠, 동생과 나는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 정도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엄마는 명절음식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 이외에는 나와 여자인 내 동생에게 집안일을 돕게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날이 온다며 지금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예상보다는 훨씬 적게 '손에 물을 묻히고' 산다.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바뀌었고, 아주 정상적인 파트너를 만났고, 고맙게도 집안일의 부담을 덜어줄 기술도 발달한 덕분이다. 그래서 내게는 식기세척기에 식기를 넣었다 빼는 것이 수고로운 일이고, 시켜 먹은 배달음식의 패키징을 분리수거하는 게 귀찮다. 삼시세끼 차려야 한다는 중압감은커녕 오래간만에 한 요리를 예쁜 그릇에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려 '좋아요'를 받으며 기뻐한다. 허리가 아프더라도 거를 수 없는 김장철 대신에 가끔 내키는 마음에 배추 한 포기로 김치를 담거나 하면 동네방네 소문을 낸다. 


이처럼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날의 '옛날 명절날' 같았던 장면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일부러라도 남자들에게 일을 시켜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사노동을 조금이라도 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철저히 내 세계에 맞춰져 있던 렌즈의 초점 거리를 넓히자 이 말이 마음속에 이리도 오래 머무른 까닭이 드러났다. 내가 아는 그리고 모르는 여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울컥했다. 수많은 '옛날 명절날' 군말 없이 노동했던 엄마, 이모, 고모, 할머니가 가여워서. 어쩌면 현재에도 '옛날 명절날'을 살고 있을 얼굴 모를 여자들이 불쌍해서. 당장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해 왔던 무수한 '옛날 명절날'의 순간들 또한 스쳐 지나갔다. 내 마음이 괴로울 것이 두려워 펼쳐보지 않은 여자들의 말이 담긴 책과 인터뷰들이, 답답한 여성혐오 댓글에 분통이 터질까 봐 클릭하지 않았던 기사들이.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조차 회피해 온 그동안의 내 모습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어제는 괜히 파트너에게 저녁 준비를 시켰다. 식탁에 앉아 와인 한 잔을 따르고 얼마 전 선물 받고 그대로 책장에 꽂아 둔 '82년생 김지영' 영문판을 펼쳤다. 무엇을 찾는지 주방의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젖히고 있던 파트너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이고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추석을 맞아 부산 시댁에 내려간 '지영'이 전 부칠 준비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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