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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린 Jan 16. 2023

노랗게 바랜 아레카 야자의 이파리는 사실은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엣취. 오스트리아로 스키 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 사흘 차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슉슉' 스키를 타며 알프스를 누비고자 했던 원대한 계획과는 다르게 '훌쩍'거리기만 하다가 루돌프 못지않게 빨개진 코와 함께 베를린에 돌아왔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머리는 지끈 거리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 와중에 배에서는 꼬르륵 신호를 보내오니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여니 내 뱃속만큼이나 텅 비어있는 냉장고의 모습을 마주했다. 여행 간다고 가기 전에 이런저런 냉털 요리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차피 요리할 기운도 없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아직 비몽사몽 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원하는 배달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치즈버거 어때?” 같이 아파도 매번 더 심한 증상을 보여 안쓰러운 마음에 내 눈썹을 쳐지게 하는 그는 깊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 또한 버거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플 때만큼은 뜨끈한 국물이 떠오르는 건 오랜 해외살이에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지만 치즈버거는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아. 쌀국수는 어때?” 그렇게 쌀국수로 합의 아닌 합의를 보고 Wolt 앱을 켜 바로 주문을 넣었다.


삼십 분에서 사십 분 정도 걸린다는 쌀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짐을 풀기 위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끙끙대며 캐리어를 여는 도중 내 시선이 닿은 것은 다름 아닌 아레카 야자였다. 아보카도 껍질처럼 짙은 녹색이어야 할 야자 이파리의 끝은 반으로 가른 지 며칠이나 지난 아보카도 속살의 색을 하고 있었다. 연노랑색에 살짝 연둣빛이 섞여 있는가 하면 제일 끄트머리는 아예 갈색이었다. 우리 집에서 제일 키도 크고 건강한 아레카 야자가 이렇다면 다른 식물들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집구석구석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식물들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한 바퀴 순찰을 돌았다. 이런, 역시 아레카 야자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아스파라거스 펀은 완전 황토색이 되어 살짝만 손을 대도 바스러질 것 같았고 평소에 손이 별로 가지 않는 산세베리아조차 비실비실 했다.


일단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가위를 꺼내 들었다. 더 이상 소생 가망이 없는 부분을 가지치기를 해준 후 물뿌리개에 물을 받았다. 아무래도 물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발코니로 나가 아연, 철분 등의 것들이 함유되어 있다는 식물 영양제를 찾아왔다. 뚜껑 한 컵만큼 영양제를 덜어 물뿌리개에 떨어뜨리고 흡사 묘약을 만드는 마녀처럼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내 식물들을 살려내라’고 주문을 걸었다.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건 나인데 영양제에 책임을 떠넘기다니 염치가 없다. 스무 개의 화분의 메마른 흙은 아무런 불평 없이 영양제 든 물을 쪽쪽 빨아들였다. 곧 벨이 울렸다. 쌀국수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국수를 후후 불면서도 자꾸만 몬스테라에 그리고 접란(spider plant)에 시선이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노랗게 바랜 그들의 이파리는 사실은 시끄러운 내 마음이 불러온 결과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시끄러워진지는 한참 됐다. 주변의 친구들은 한 발짝 혹은 두세 발짝 씩 앞서나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고민이 시작되고부터다. 입사한 지 삼 년이 막 넘은 회사에 흥미를 잃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며 퇴사를 선언한 지 어언 서너 달째. 친구들로부터 경제 불황 또는 비자 문제 등으로 조금만 더 고민해 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한없이 가볍게 펄럭이는 나의 얇은 귀 탓에 여전히 일요일 저녁이 가장 두려운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루틴이 무너졌다. 밤새 잡생각 때문에 잠을 설치다 보니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들쑥날쑥해졌고, 독서라든지 일기 쓰기, 하프 음악을 들으며 하던 짧은 아침 명상 등 오가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자 지켜오던 것들을 안 하게 됐다. 청소마저 귀찮아져 눈에 보이는 곳만 대충 닦았고 행거 밑에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들을 못 본 척하기 바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화분에 물을 주며 식물들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스무 개의 화분들을 하나씩 돌보다 보면 금방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흘깃 눈길을 주긴 했던 것 같은데 여행까지 다녀오는 바람에 이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복잡하고 언짢은 마음 탓인지 쌀국수 맛도 그저 그렇게 느껴졌다.  


며칠 후 드디어 기운을 차리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친구도 나보다는 회복이 더디지만 독감의 정점에서는 내려온 것 같았다. 기특한 식물들은 우리보다도 회복이 훨씬 빨랐다. 한눈에 봐도 확연히 싱싱해진 식물들은 더 이상 축 늘어져 있지 않았고 자기들의 원래 색을 되찾았으며 빛이 났다. 심지어 몇 개의 화분에는 새로운 이파리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렇게 단번에 다시 반짝여주는 이파리들을 보니 이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나의 마음을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 상태도 식물처럼 눈에 보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기에 더 자세히 들여봐야 하나보다. 자기들을 말라죽일 뻔한 책임감 없는 주인을 만나 생활도 녹록지 않을 텐데 이런 교훈까지 주다니 앞으로는 식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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