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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16. 2023

7월의 월요일기

남편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었습니다.

1. 남편의 육아휴직

7월 1일, 남편과의 육아가 공식적으로 재개되었다. 출산하고 20일부터 50일까지 4주간 출산휴가를 썼던 남편에게 다시금 육아휴직을 써달라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내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고 하루 3시간 이상을 숙면해 본 적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도 거의 없었다. 잘 못 자는 밤과 낮이 이어지니 끼니를 못 챙겨 결국 친정에 왔지만 여기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매일 나를 챙기려 노력하지만 정작 나는 나를 챙기지 못한 채 여름이 왔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친구도 지인도 만나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졌던 날들. 가족같이 친한 친구를 마주하고서야 내가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까지 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기를 안고 불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퇴근을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 길로 남편의 육아휴직까지 일사천리로 진행.


누군가는 복직을 하느냐 묻는다. 대답은 아니오. 우리 엄마의 말을 빌어 덧붙이자면 “내가 믿고 아기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남편 한 사람뿐이라서.” 남편과 둘이 하는 육아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엄마의 육아대체자는 아빠가 돼야 하는 것이 맞기도 하고. 남편이 육휴를 시작하면서 나의 삶이 한순간 윤택해졌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내 건강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를 돌보는 삶. 사실 그게 내가 가장 원하는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 엘리멘탈

출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는 헤어질 결심이었다. 다행히도 그 영화가 너무 좋아 2022년에 본 유일한 영화였음에도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게다가 넷플릭스에 들어오자마자 5번도 넘게 봤는걸!


출산 후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 많았지만 당연히 영화관에 갈 기회도 없었을뿐더러 조금 짬을 내볼까 하면 이미 침대에 누워 쉬느라 시간을 다 보냈거나 아기를 돌보느라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어느샌가 사치가 돼버린 기분이었다.


남편의 육휴가 시작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내려 가다 영화를 한 편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개봉한 영화가 엘리멘탈이었고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한 장마 초입이었지만 물 한 병을 손에 쥐고 영화관으로 갔다. 갈 때까지만 해도 영화 보는 게 뭐 대단할 일인가 싶었지만 평일 낮 텅 빈 영화관에서 신작 영화를 즐기는 일은 꽤 대단한 일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청난 애니메이션과 물과 불 그리고 가족애와 사랑 등등 여러 가지 교훈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저 나는 그 시간 영화관에 앉아있던 것만으로도 이미 별 5점을 줄 수 있다.


3. 방

친정집엔 방이 여러 개 있다. 안방과 서재 내 방과 동생 방. 내가 아기를 데리고 도망 들어오기 전까지 엄마아빠 두 분이 쓰신 집이지만 규모만 보면 적어도 두 가족이 같이 써도 부족하지 않을 넉넉한 집이다. 아기를 집에서 두 번째로 큰 방에 뉘어놓고 집에서 제일 끝에 있는 작은 방인 내 방에 앉아 아기를 보고 있으면 참 상전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두의 평화를 위해 아기를 그 방에서 재우기로 결정한 거지만.


얼마 전 서울집에 다녀왔다. 친정집과는 사뭇 다른 아주 아담한, 일 년 전 남편과 자재를 하나하나 다 골라 하얗고 깔끔하게 꾸며둔 우리 집. 방은 두 개이고 우리는 그걸로 만족하며 살아왔다. 침실 하나 드레스룸 하나면 충분한 성인 두 명의 삶이었으니까.


이제 가을이 되면 성인 두 명과 아기 한 명의 집이 된다. 한 달에 한두 번 가서 쓸고 닦고 하면서 드레스룸을 비워 만든 아기방을 가만히 보곤 한다. 아기가 이 방에서 잘 잘 수 있을지, 우리는 이 방에서 아기가 얼마나 자랄 때까지 살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툭 튀어나온 화장대를 어딘가로 집어넣어야겠다, 콘센트 구멍마다 모두 다 커버를 씌워야겠지, 부엌 모서리와 문틈에도 무언가를 덧대어야겠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친정에서는 방 하나면 되는 삶이 왜 집에서는 온 집을 다 바꿔야 하는 삶이 되어버리는 건지 조금 아리송했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아기가 있는 삶은 늘 그런 법인가 보다 하면서.


4. 남편의 여행

임신 때부터 출산하고까지 나만큼이나 고생한 사람을 꼽자면 남편이 유일한 존재. 임신 기간 내내 병원에 들락날락거렸던 숱한 시간들과 밤잠 이루지 못해 뒤척이면 같이 일어나 이야기를 나누던 날들도 있었다. 아기를 낳고는 딱딱한 소파에 누워 3박 4일을 자기도 했고 조리원에서는 매일 우는 나를 달래느라 고생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뭐 더 심했고.


그런 남편이 육휴를 결정하고 나서 한 번쯤은 여행을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나도 이참에 제주도라도 당일이라도 가서 조금 털어내고 싶은 스트레스도 있고.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있지만 또 동시에 서로에게 스트레스와 짐을 지워주는 사이니까 각자의 몫만큼의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남편의 여행일정이 확정되고 비교적 쿨한 마음으로 남편의 여행을 응원했지만 막상 오늘로 그날이 다가오니 약간의 부러움과 더 큰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기를 늘 혼자 봐왔으면서도 지난 2주간 남편 덕에 조금 여유를 부려봐서 그런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남편을 보내고 아이와 놀아주면서 생각보다 조금 더 단단하게 잘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들었다. 남편이야말로 여행을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울 테니 (아닌가 엄청 가벼운 거 아냐?) 나는 내 자리에서 아기와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걸로. 다녀와서 잘 부탁해! 다음은 내 차례가 될 것이야.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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