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 번째 월요일기
1.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8월의 가장 중요했던 일정이자 서울집을 떠나 친정으로 오게 된 가장 주요했던 이유. 8월의 이탈리아는 더웠지만 습하지 않아 그늘에 들어서면 바로 시원해졌다. 로마의 풍경과 포지타노의 엄청난 여유, 그리고 피렌체의 아기자기함 덕에 많은 회복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출국하는 날 극적으로 남편의 비즈니스 대기가 풀려 나란히 앉아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집안 곳곳을 비춰주는 베이비캠 앱을 삭제했다. 여행 절반이 지나간 후에서야 한 결심이었다. 앱을 삭제하고 하루 정도는 금단현상처럼 시시각각 아이의 동선이 궁금했다. 거실에서 방으로 간 건지, 방에서 나온 건지, 잠은 잘 잔 건지, 밥은 잘 먹은 건지 하는 아이의 일상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사실은 그 모든 것을 외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온 건데도 불구하고 나는 내 발에 걸려 넘어지고, 나는 내 손에 걸려 제자리 걸음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앱을 삭제하고 마침내 후련해진 마음으로 '마스크걸'도 보고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지 일주일. 아기는 엄마 아빠가 사라졌던 현실은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지만, 엄마 아빠가 돌아온 현실은 빠르게 인지한 것 같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안아달라 보채고, 안고 있어도 계속 보채는 나날들이 계속됐다. 여행이 끝나고 남편의 육아휴직도 뒤이어 종료됐다. 아기와 나, 둘만 남은 낮 시간이 시작됐다. 아기는 크고 있고, 나는 비로소 많이 안정됐다. 이탈리아 다녀오길 참 잘했다.
2. 가을
불현듯 달력을 보고 나서야 9월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월 31일과 9월 1일의 온도가 같아도 어쩐지 바람에서 가을이 느껴지는 것 같은, 가을의 시작인 9월.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노을이 어찌나 멋들어지게 지는지 매일 저녁 아기를 재우기 전 붉게 물든 아파트 외벽과 하늘을 보면서 즐거운 저녁을 보내기도 했다. 언제쯤 아기를 데리고 한강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을까?
3. 커피
매일 밤 잠 못 드는 날들이 이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커피를 줄였다. 한낮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주는 엄청난 청량감을 마다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잠이 더 중요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친정집 주변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막상 동네를 벗어나도 딱히 커피가 당기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을 쭈욱 보내고 말았다.
엊그제 10kg에 육박하는 아기를 하루종일 안고 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남편과 행궁동 정지영 커피에 갔다. 아기를 재우고 1시간 이내에는 외출하지 않는 게 내 스스로와의 약속이었지만 힘이 들어도 너무 들고, 체력이 바닥나기까지 해서 우선 나가야만 했다. 한밤의 행궁동에 그토록 많은 인파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거니와 몇 년 전 먹었던 커피맛과 확연히 달라진 엄청난 맛에 다시 한번 놀랐다. 여기 커피가 이렇게 맛있었다고? 돌아오는 길, 남편이 정말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었는데 오늘 오길 잘했다며 여러 번 신나 하며 재잘거렸다.
커피를 먹고 돌아와 맥주까지 한 입 마시고 나니 그날 잠은 다 달아나버렸지만 그래도 참 좋은 날이었다.
4. 좋은 날
좋은 날들이 모여 9월이 됐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계절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