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추 Oct 11. 2021

나약한 존재가 아닌 새로운 친구

석초딩&마이쏭&석봉, '슬기로운 시골 육아'

  “요즘은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 싶어요.”

  “역시 여기는 애 키우기 좋겠지?”


  내 직장은 면소재 작은 초등학교다. 교사들끼리 모이면 종종 이곳 교육 환경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산, 들, 바다의 풍요로움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자양분이다. 아이들이 많지 않다 보니, 지자체에서 지원을 많이 해준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돌봄 교실을 이용할 수 있고, 방과 후 수업은 무료다.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대학 입시를 치를 수 있고, 서울에 지역 출신 대학생을 위한 기숙사도 있다. 이런 대화는 대부분 아직 아이가 없는 나에게 출산을 권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여기서는 애 하나 낳아도 괜찮다니까. 한 번 잘 생각해봐.”   


  물론 매력적인 조건들이긴 하지만, 이런 이유로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내가 아이 낳고 키워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순전히 마이쏭의 육아를 지켜보면 서다. 마이쏭은 6년 전쯤, 셀프 웨딩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블로거다. 셀프 웨딩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마이쏭 블로그를 우연히 방문했다가 마이쏭의 생활 방식에 반해서 팬이 되었다. 이후로도 신혼생활, 임산부 시절, 석봉이(마이쏭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든 과정을 블로그를 통해 지켜보았다. 친구들과 하던 프로젝트를 빌미로 접근하여 마이쏭님을 영접한 적도 있다. 그 뒤로 인연이 되어 아주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이 정도면 성덕이다.)


  "저희 책 냈어요." 얼마 전 마이쏭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 나는 이미 블로그를 통해서 책 준비부터 출간 소식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책을 언제쯤 시중에서 구할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이쏭이 손수 집으로 책을 보내주었다. (이로써 나는 완성덕이 되었다. 완전 성공한 덕후.) 책 제목은 <슬기로운 시골 육아>다.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보던 석봉이네 모습이었지만, 책의 형태로 정제된 사진과 글을 보니 이 가족의 지향점이 한층 선명하게 들어왔다. 흙바닥에 앉아서 놀고 곤충을 잡으며 커가는 석봉이. 석봉이 곁에서 최소한의 안전지대만 만들어주며 자유를 느끼게 하는 석초딩. 석봉이가 아빠를 더 찾는 걸 좋아하면서도 질투하는 마이쏭. 셋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살가운 주말 가족드라마를 보는 것 마냥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갈 줄 모른다.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가족 모습 때문에  마음이 바뀐  아니다. 단란한 가족사진은 교과서에서도, 친구의 SNS에서도,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있다.  숱한 가족사진은  마음을 출산 쪽으로 기울게 하지는 못했다.  마음을 움직인  마이쏭이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블로그에 석봉이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데,   마지막에 마이쏭은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앞으로 신나게 놀자.”, “얼릉 놀자, 우리는 너의 병맛 같은 개그를 기다린다고ㅋㅋ육아를 하면서 어떻게 이런 말이 가능한지, <슬기로운 시골 육아> 보면   있다.          


가능한 우리는 부모 자식 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석봉이에게 우리는 부모이기 이전에 인생에서 만난 첫 번째 친구고, 우리 또한 석봉이를 새로 만난 친구라고 생각한다.
- '슬기로운 시골 육아' 158쪽


  딩크족이었던 마이쏭이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제부터는 우리의 시간과 노동을 이 어린 존재에게 나눠주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어른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석봉이를 키우면서 깨닫고 있다. 오히려 석봉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친구가 되어줌과 동시에 인생의 지혜를 주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육아는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석봉이가 없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조금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석봉이 덕분에 우리는 매일이 즐겁고, 앞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갈 생각에 설레기까지 하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 '슬기로운 시골 육아' 246쪽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워진다. 나처럼 내향형인 사람은 이미 있는 인간관계만으로도 충분하므로 굳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내 인간 망을 강제로 넓혀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끌었다. ‘아, 아이가 있어도 괜찮겠다!’

 

  그러니까, 나는 마이쏭이 아이를 대하는 관점 덕분에 마음이 출렁한 것이다. 아이는 내 인생에 절대 없다고 생각한 내게 이건 정말 큰 변화다. 그동안은 월경이 늦거나 몸이 평소와 다르면 혹시 임신은 아닐까 걱정했다면, 이제는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기대를 하게 됐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아이를 꼭 낳고 싶다’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남편은 아직도 완강하게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주거 환경과 육아 분담 등 현실적인 문제도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생긴다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즐거운 인생을 즐길 준비는 되어 있다. 인생은 늘 어디로 흐를지 모르니까. 나에게도 얼른 놀고 싶은 친구가 한 명 더 생길지도 모르지.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에서 배우는 엄마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