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 명절은 설레는 연간 행사였다.
명절 하루 전날 큰집에 도착해 아이들은 놀이터로 나가 놀고 어른들은 음식을 하고 고스톱을 치셨다.
밤에는 문방구에서 산 작은 폭죽을 터뜨리고 좋아했다. 자기 전까지 명절 특선 영화를 모여 봤고 형제들끼리 누워 수다를 떨다 잠들었다.
아침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다 같이 산소에 다녀왔다.
길은 많이 막혔지만 형 누나 동생들과 차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떠드는 건 즐거웠다.성묘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헤어질 땐 그렇게 아쉬웠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많은 게 바뀌었다.
일단 잘 모이지 않는다.
친척 어른들은 아프신 곳이 하나 둘 있으시다.
사촌 형제들은 각자 자기 삶 살기 바쁘다.
명절은 그저 직장 안 나가는 날. 쉬는 날일 뿐이다.
친인척끼리 모이기보단 다들 본인 친구를 만나거나 쉬는 걸 택한다. 아니면 국내외 휴가를 간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모이질 않으니 예전만큼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어른들끼리 모이는 건 그래도 유지되는 거 같다. 그분들끼리는 친형제니까. 그러나 사촌 형제들끼리는 조금씩 멀어짐을 느낀다.
내 세대는 그랬던 거 같다. 고등학생 때쯤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입시를 준비하고. 수험생활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그 사이 군대에 가거나 해외로 나간 경우도 있었다.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명절 때 출근을 한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각자 스케줄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었고 자연스레 거리가 생긴 거 같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른 만큼 사람도 달라졌다. 20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듯. 다들 각자의 가치관, 마인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졌다.
아마 지금 만나 깊은 속내를 이야기해 보면 결이 맞는 형제도. 맞지 않는 형제도 있을 것이다. 다들 겪어온 경험이 다르기에 이런 차이는 당연하다. 그래서 굳이 명절에 시간 내어 만나려 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조금씩 거리가 생기는 게 자연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긴 하다.
사촌 형제인 걸 떠나서,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나는 여전히 사촌 형제들을 가까이 두고 싶은 좋은 동생 형 누나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리가 생기는 건 내심 아쉽다.
형제들 사이에선 내가 거의 첫째 축에 속한다. 친가 외가 포함. 위로 누나 형 한 명씩 있고 나머진 전부 동생이다.
현재 나는 결혼하고 애 키우느라 정신없고 동생들은 20대 후반이라 취업 준비로 바쁜 거 같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여유가 좀 생기면 우리 세대끼리라도 모임을 추진해 봐도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