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날뛰다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감정이 마구 날뛴다. 남들 다하는 임신, 혼자만 유세떤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듯 펑펑 우는 나를 보면, 나 스스로도 내가 왜 이런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기에 유세라면 유세라고 치자.
임신한 지 이제 18주.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기분이 너무나 좋고 콧노래까지 부를 수 있을 정도지만, 반대로 어느 날은 지나가는 사람이 옷깃으로 나를 스치기만 해도 불현듯 짜증이 몰려온다. 이 하고 넓은 길바닥에서 왜 내 쪽으로 옷깃을 흩날리는지 알길이 없기에....
안타깝게도 오늘 나의 기분은 후자에 머물러 있다. 아침 출근길부터 사람들로 꽉꽉 가득찬 신분당선을 타서 그런지, 아니면 문이 닫히기 전에 어떻게서든 뛰어와서 열차를 타보겠다고 내 쪽으로 돌진한 아주머니 덕분인지, 그도 아니면 늘 그랬듯 체계 없는 우리 회사의 단점이 또 한번 부각됐기 때문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저 아침부터 오늘 조짐이 안좋다? 싶으면 기분이 널뛰기를 하는데.. 이런 나를 어르고 달래서 살아주는 우리 남편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임신 18주면.. 이제 임신이라는 생활에 적응할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내 모습, 내 생활이 적응이 안된다.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왕복 4시간씩 출퇴근을 하며 회사를 다니고, 회사 끝나는 시간에는 필라테스를 하든, 친구들을 만나든 어떻게 해서든 스트레스를 풀 만큼 보통사람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체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임신과 동시에 내 생활패턴은 한번에 무너져 버렸다. 예전에는 빨래를 널고 개는 일이 귀찮았을 뿐, 크게 손 안가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빨래를 한번 하면 최소 2시간 이상은 깊은 잠을 자야지만 피로가 풀린다. 떨어진 면역체계 때문에 구내염, 장염, 방광염 등등 염증이란 염증은 몸에 다 달고 사니 매일밤 잠이 오지 않아서 풀수면시간이 2~3시간도 안된다. 게다가 손발은 또 어찌나 붓는지... 압박스타킹을 신지 않으면 퉁퉁 부어버리는 종아리 때문에.. 한여름에도 압박스타킹을 신어서 답답해 죽겠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를 가장 미치게 만드는 건 내가 느끼는 감정 모두를 뱃속의 내 아이가 그대로 전달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내가 느끼는 힘들다, 아프다, 짜증난다는 감정이 혹여라도 내 안에 있는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까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해탈해버린 부처님처럼 이런 저런 어려움을 조용히 감내해 내기에는 내 깜냥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여러 방면으로 안타깝다. 아가야 미안해, 해탈하지 못한 엄마지만.. 네가 내 속에서 안전하게 지내다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볼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