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a Twin, <Head Leaking>
Terra Twin, <Head Leaking> EP (2024)
- 테라 트윈의 멘탈 과부하 연작
(커버 이미지: ‘Losing Your Touch’ mv 스크린샷)
밴드의 ‘성공적’인 데뷔 앨범이 공통적으로 갖춘 퀄리티가 있을까. 완성도, 중독성, 고유성, 시대성?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Head Leaking>에는 전부 있으며, 그 빛깔은 원앤온리하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겠다. 이미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한 입장이기는 하나, 인디 록을 사랑한다면 Terra Twin의 데뷔 EP를 한 번 듣고 치워둘 수는 없으리라 확신한다.
테라 트윈의 음악이 귀를 사로잡고 마음을 울리는 모양은 친숙하면서도 독특하다. “Blur가 자랑스러워 할 것”[Readdork] 이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로우raw & 로우 파이lo fi 플레이. 90년대 인디록과 얼터너티브 빈티지 아메리카나의 흔적을 두르고 청자의 시공간을 뒤흔든다. 와중, 어떤 ‘맥을 잇는’ 대신 자발적으로 ‘노웨어’에 터를 잡는다. 이들은 굳이 ‘실험적인 소리’를 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트렌드에도 관심이 없다. 자유롭고 꾸밈없는 에너지로 충만한 이 록커들은, 음과 박자를 제 식대로 가지고 놀며 오리지널리티를 창조한다. ‘Losing Your Touch’ 속 루이스 스피어의 댄스, 그것이 테라 트윈이 추구하는 예술의 한 단면이다. 여유와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제멋대로의 흥, 일종의… outsiderness.
https://youtu.be/Xb5Dzse66_Y?si=CxaJ6dJm6gndy1EN
헌데 <Head Leaking>이 데뷔 EP라면, ‘Eastern Boy’와 ‘I Don’t Know’가 수록된 <Terra 1>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역시 Terra Twin의 데뷔 EP다. 다만 여기서 일컫는 건 ‘종료된 프로젝트 그룹’으로서의 테라 트윈, 이후 결성된 ‘밴드 테라 트윈’과는 분리되는 작업이다. 인터뷰나 프로모션 게시물에도 이전 작업은 언급되지 않는다. 앞 페이지를 찢어버리는 대신 부드럽게 넘기는 식의 선언이다. 예술적 ‘틈’은 여전히 존재하나 그 위치와 형태는 한참 다르다. ‘뉴 테라 트윈’은 청자와 거리를 두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공연을 돌고 팬들과 만나며 전곡을 흔쾌히 해석해 주기까지 한다.
말하자면 ‘넥스트 에라’다. 파일럿에서 떨어져 나가 새로운 스타일로 돌아온 본편쯤으로 비유하면 될까. 메인 송라이터와 보컬은 여전히 맥심 밸드리이므로 종종 겹쳐 들리기는 하나, 음악색도 확연히 구분된다. 직전 글에서 다뤘던 유스 라군과 트레버 파워스의 작품들이 차별되었던 것처럼- 두 EP는 다르고, 각자 흥미롭다. <Terra 1>은 외계로부터 느닷없이 떨어진 완벽한 선물 같았다. <Head Leaking>은 반 년을 기다리는 동안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불린 기대감을 거뜬히 뛰어넘는다.
“guitar music”. 유튜브 공식 계정 소개에 단 두 단어만을 적어 놓은 테라 트윈의 음악에서는, 과연 기타가 두드러진다. 펑키 노스탤직 로우 파이 리프를 중심으로 시원하게 터지는 그룹사운드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흥’과 ‘신’을 뱃속으로부터 끌어낸다. 캐치한 사운드에 몸을 맡기고 마냥 뛰어 놀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복해 재생하다 어느 순간 메시지가 읽히기 시작하면, 스스로의 내면 풍경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오, 어쩌면 결국 ‘마냥 노는’ 행위가 요구될 수도 있겠다.)
“<Head Leaking>은 감각을/길을 잃는 것에 대한 곡들의 모음이다. 과부하와 진정한 연결을 형성하려는 시도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통제를 벗어나 날뛰기 시작하는지, 그리고 가끔 어떻게 그게 죄다 풀어지도록 내버려 둘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대개 그 이면에는 평화가 있다.”
- Maxim Baldry, [Readdork]
<Head Leaking>은 ‘데뷔 EP’이기 전에 주제가 분명한 앨범으로, 특정한 상태를 언어적/음악적으로 털어놓는 트랙들로 이루어져 있다. 존재의 위기를 겪기도 하는 화자들의 스트러글이 저마다의 농도로 스며 있는데… 테라 트윈이 ‘날뛰는 마음’을 다루는 방법은 ‘통제’와는 거리가 멀다. 머릿속을 헤집어 놓거나, 얹혀 있던 것을 토해내도록 돕는다. ‘바로 그거야!’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루이스 스피어의 기타 플레이에 크레딧을 남겨야만 하겠다. 그 날것의 에너지라니!
일관성이나 안정성에 집착하기보단 해당 트랙에 적합한 목소리를 찾는 데 집중하는 보컬은 매번 정확한 틈에 안착한다. 직접적이고 단순한 문장 위주의 가사는 결코 뻔하게 들리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을 초현실적 비유와 군더더기 없는 단문으로 형상화하는 송라이터의 재능 덕이다. 생생한 직설과 모호한 서술, 시적인 이미지화를 적절히 섞어 호소력 있으면서도 늘어지지 않도록 조절한다.
“People may come and people may go / And some people might get stunk for a while / But it’s all in your head now / If you need to say it / Then say it loud / I’m losing your touch” (‘Losing Your Touch’)
“There’s a rainbow above you / But you’re standing in the shade / Seeing you makes me feel so strange” (‘Losing Your Touch’)
https://youtu.be/Sj2pZtdGmWk?si=9xY_mJckeCUqyubN
EP 오프너는 작년 여름 먼저 공개되었던 ‘Head Leaking’. 레코드 제목을 차지하는 만큼, 가장 직접적으로 주제를 노래한다. “월요일 아침을 맞은 어린이처럼 떨고 있는” 화자의 머리는 “넘쳐 흘러 줄줄 샌다”. 특정한 원인에 의한 현상이든, 온갖 정서들이 뒤섞여 엉켜버린 것이든, 인간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테다. ‘Head Leaking’은 그 정신적 위기를 솔직하고 간결한 언어를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려 버린다. 가성의 벌스에서 단단한 발성의 코러스로 이어지는 보컬링 역시 곡의 흐름에 알맞다. 무게있는 박자감을 지닌, 파워풀한 (헤드뱅잉을 유발하는) 피스다. 이를 완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뭔가를 한계까지 끌어올려 발산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시니어 모델 Warren Loader를 중심으로 촬영된 뮤직비디오의 재미도 만만치 않다. 마구 달리는 맥심 밸드리가, 엔딩의 스톱모션 아트가 보이는가.
“삶에 대한 실존적 고뇌”[Readdork]라는 ‘Losing Your Touch’의 반주는 송라이터들이 의도한 대로 “밝고 감미롭다.” ‘Head Leaking’보다 경쾌한 톤의 리드미컬. 잠긴 목소리가 매력적인 보컬링에서는 데이빗 번 식 ‘토킹-싱잉’에 대한 리스펙(!)이 감지된다.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톤으로 시작해, 건조한 보편 서술로 이어지더니… “If you need to say it”은 시니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열린 결말은, 희망적이다. “Here I am knocking at your door”
“스투디오에서 하루만에 쓰였다. 그냥 한꺼번에 유기적으로 다가와서, 우리와 연결되었다.”[Readdork] ‘Hanging Around’ 송라이팅에 얽힌 에피소드를 접하고 ‘그럼 그렇지’하고 미소지었다. 개인적으로는, 첫 리스닝에서 마법에 걸렸다enchanted. ‘취향저격’은 충분한 표현이 아니다. 수없이 재생하고도 가사가 의미하는 바를 짚어내지 못했었는데, 맥심의 설명을 읽으니 그림이 그려졌다. ‘동종의 영혼들 가운데에 있음에도, 툭 불거져 버리는 이상한 무언가-에 목소리를 부여하기.’
“모두가 잘못 받아들여 (넌 이해할 거야) / 나한테 쏟아붓지 좀 마 (넌 알아챌 거야) / 넌 내가 머물고 싶게 만들어 / 예상하고 있지만 너무 멀어“ ‘침대에 두고 있는 그’는 ‘나’로부터 “튀어나온 이상한 무언가”의 의인화일까. 그리하여 ‘나’는 홀로 “눈물 속에서 헤엄치며” ‘너’를 부른다. 그 호명은 특정한 타인을 향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은근히 공감하고 있는 청자에게 손을 내미는 제스처로 해석될 수도 있으리라.
https://youtu.be/JecYNI-5lbU?si=bYcQUGw24DsBBbYe
‘Soup’는 기타 리프로 시작한다, 리드미컬한 와중 어딘가 날카롭게 어긋나 있는. 곧 보컬이 등장한다, “I’m trying to be man” 딜리버리는 ‘노래’보다는 ‘뱉음/던짐’에 가까운데, 석연찮다. 미묘한 불안정, 불균형이 얹혀 있다. 화자는 잇는다, “Still I don’t know what it take / For the recipe to break all come in(?) to the darkness” 그는 “오로지 고통을 잊기 위해, 머릿속이 차고 넘치도록 탐구한다”(?: 공식 가사 정보가 없다.) “이 곡은 ‘남성성’을,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conditioned 되었는지를 탐구한다.”[Readdork] 세상은 ‘색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자’가 되는 ‘레시피’ 따위가 정해져 있을 리 없지. ‘Soup’는 실체 없는 법칙에 얽매여 고통받는 존재를 조명한다.
브릿지에서 보컬은 현악기 스트링처럼 진동하는 에코를 입는다. 연약함을 수용한, 새롭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음색, 틀을 벗어나 가능성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클라이맥스에서 그룹사운드가 터지는 가운데, 화자는 멘탈 브레잌다운이 찾아온 듯, 또는 내면화된 프레임을 깨부수려는 듯 “Brain!”을 외친다. (Break the frame in your own brain!) (+1/31: 더 듣다 보니 뒤에는 brave 같기도...'your brain'에서 'you're brave'로 이어지는 걸까? 공식 가사가 절실하다.)
여기까지였다면, 단지 훌륭한 데뷔 EP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엔딩 피스로 인해 <Head Leaking>은 ‘something else’의 영역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Plain Bridal’은 개중 가장 노스탤직하고, 몽환적인 트랙이다. 테라트윈식 사이키델릭 슈게이징. ‘Nowhere Boy’와 ’‘Hold Tight’(Another Her)도 얼핏 떠오른다. “사운드를 최대한의 폭으로 늘리고 싶었다. 시작은 소프트하고, 끝은 카오틱하다.”[Readdork] ‘소프트’한 기타 리프 주위로 다양한 사운드를 쌓아 점차 증폭시키는데, ‘카오틱’한 그대로 조화를 이룬다. '혼돈의 미학'을 두른 작품에게 'hit the spot’ 당하는 모먼트의 황홀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가슴 속으로 (모순적이게도) 고요하게 스며드는 듯하다.
“Sometimes, you find light, and other times, you find lightning.”
- Maxim Baldry, [Readdork]
음악적/메시지적으로 한데 모이는 동시에 트랙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Head Leaking>은, 한 줄기로 흐르는 장편보다는 같은 기둥을 바탕으로 각자 뻗은 연작에 가깝다. 내면과 관계, 삶에 대한 통찰. 필연적으로 불거지는 이방인성의 직시. ‘으레 그런 줄 알았던’ 것에 대한 의문. 그리고, “함께 뭉쳐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Readdork] 의지.
고유한 예술적 감각과 특유의 ‘outsiderness’를 공유하는 4 in 1 인디록커들. 테라 트윈과 음악의 역사에 있어, 2024년은 기념할 만한 해가 될 테다.
+
사실 여기까지 죄다 서론이었다. EP 발매와 함께 공개된 Readdork 인터뷰에서, 맥심 밸드리가 친절하게도 곡의 핵을 하나하나 꺼내 주었다. 번역해 옮기면 끝날 일이었으나, 그건 또 이 별난 명작을 즐기는 예의가 아니지. 보잘것없는 코멘트를 달며 호들갑을 떨어야만 했다. 이제 맥심의 해석을 만나보자.
Maxim Baldry, 2024.01.26. interview by. [Readdork]
‘Head Leaking’
“내게 있어, 이 곡의 의미는 매번 달라진다. 곡을 쓰는 동안에는, 짜증과 분노로 가득했었다, 그러나 다른 날에는, 매혹적이고 카타르시스적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넘쳐 흐르는 시점에 다다라,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한 상태를 노래하는 곡이다. 나는 항상 스스로를 거의 표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끝까지 꽉 채웠다가, 어느날, 그게 전부 다 crashing out 하며 나오는 거지. 이 곡은 하루에 겪는 감정들의 멜팅 팟을 반영한다.”
‘Losing Your Touch’
“이 곡은 삶에 대한 실존적 고뇌다. 콘셉트적으로, 이 곡은 반반으로 나뉜다. 반쪽이 끝난다. 다른 쪽은, 방향의 전환이다. 우리는 인스트러멘테이션이 밝고 감미롭기를 바랐다, 엔딩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갈 수 있는지를 비추기 위해. 우리는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이유가 있다고 느끼고, 그걸 기념하고 싶어한다. 뮤직 비디오에서, 루이스는 상의를 벗고 춤춘다. 왜? 그대들은 묻는다. 왜 안돼! 우리는 말한다.”
‘Hanging Around’
“스투디오에서 하루만에 쓰였다. 그냥 한꺼번에 유기적으로 다가와서, 우리와 연결되었다. 자신의 커뮤니티를 찾는 것에 관한 곡이다. 친구들, 연인들, like-minded souls. 하지만 그 모든 아름다움 중에서도, 거기 속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튀어나와 있는 이상한 무언가를. 이 곡은 리플렉션의 시기 이후에 그 케케묵은 유물들을 찾아내어, 대담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에 관한 곡이다.”
‘Soup’
“루이스가 이 곡의 리프와 함께 나타나서는, 내게 보이스 노트로 보냈다. 나는 즉시 보컬 녹음으로 답장했다. 우리 둘 다 이게 EP에 들어가길 바란다는 걸 알았지. 주제를 중심으로 말하면, 이 곡은 ‘남성성’을,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conditioned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자주, 이 곡은 강박증으로 빠져서는 연결을 향한 우리의 꾸준한 집착을 한탄한다. 약간 실존적이라고 느낀다, 그러므로 한 손에 파인트 잔을 들고 폰의 전원을 끈 채 듣는 것이 베스트다.”
‘Plain Bridal’
“기차 여행 중에 했던 기나긴 공상으로부터 온 곡이다. 한데 뭉쳐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일에 관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빛을, 다른 때에는 번개를 발견하게 된다. 사운드를 최대한의 폭으로 늘리고 싶었다. 시작은 소프트하다. 끝은 카오틱하다. 완전한 순환의 순간이고, EP의 마무리로 느껴졌다.”
https://readdork.com/features/artistguides/terra-twin-head-leaking-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