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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Aug 01. 2024

협곡 안의 밤하늘

<러브 라이즈 블리딩>(2024)



<Love Lies Bleeding>(2024, 로즈 글래스)

Unhinged review


* 작품의 장면과 결말, <세인트 모드> 결말 포함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루와 재키의 관계나 전개의 방향을 지레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며, 자신들을 억압해 온 가부장과 기타 등등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두 여자의 ‘상호 구원 서사’라고- 틀린 묘사는 아니나 딱히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로즈 글래스는 ‘노말한’ 관객에게 도덕적 만족감을 주기 위해 영화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렇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범죄 스릴러 로맨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세인트 모드>로 데뷔한 로즈 글래스가 쓰고 감독한 영화이기도 하다. <세인트 모드>를 한 방식으로 설명하면, ‘무언가에 단단히 사로잡혀 스스로를 가두고 돌진하는 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서사에도 닮은 데가 있으나, 영화가 인물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세인트 모드>가 모드를 위로하려는 듯 하다 끝내 내버려두고 관찰했다면,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루와 재키가 일으킨 회오리에 기꺼이 휘말린다.



스토리를 살피기 앞서 루와 재키의 겉모습부터 잠깐(혹은  오래) 살펴보자.  주인공의 외모는 80년대를 테마로 캐릭터를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다. 루의 헝클어진 멀렛컷과 헐렁한 민소매, , 점퍼는 중성적인 “little, dykey sister”[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어울리며, 배우가 ‘ 것으로소화할 만한 스타일이다. 재키의 타이트하고 짧은 상하의는 (으레 그래 왔듯) 남성적 시선에 의한 대상화의 산물이 아니다.  노출에는 공들여 세운build 근육과 힘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연애가 시작돼도 옷차림에는 여전히 그들 자신이 있을 뿐이다(달라진 것은 루의 민소매  정도).  로맨스에 없는 것은 ‘상대에게  보이기 위한 한쪽의 꾸밈 노동 비롯한 고정된 성역할이다. 루와 재키는 가부장 중심적 이성애의 울타리 바깥에 있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이들의 퀴어함을 언어적으로도 대강 넘기지 않는데, 재키의 바이섹슈얼리티를 낡은 언어로 왜곡하지 않고 “스트레이트인데 그냥   해보는  아니며, “  좋아한다 시원하게 짚는 식이다. 인위적 설정이 아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캐릭터성과 관계성 묘사다. ‘누구 보라고 만든 영화인가 답하는 일종의 선언으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고.


협곡에서 밤하늘로 이어지는 첫 장면이 지나가고, 카메라는 데이지를 따라 체육관으로 들어간다. 근육과 땀과 신음들의 적나라한 클로즈업, 루 랭스턴이 등장하자 화면의 온도는 인물을 따라 급격히 미지근해진다. 그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대신 막힌 변기를 뚫고 있다. 부친 랭스턴이 소유한 건물에서 일하는 그는, 태어나고부터 지금까지 부친의 왕국에 무기력하게 머물러 있는, 거기 속하기보단 ‘그저 걸려stuck 있는’ 자다. 그곳에 재키가 도착한다. 그는 떠나기를 반복해 왔다. 입양되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고, “괴물”로 불리다 오클라호마를 떠났다. 곧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라스베가스로 향할 예정인 그에겐 이곳 또한 거쳐가는 장소이나, 루는 거쳐가는 여자가 아니다. 재키는 루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이 여자들의 만남에는 처음부터 주먹질과 약물 주사가 있었고, 곧 우발적 살인이 끼어든다. 루의 언니 베스는 남편 JJ로부터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당해 왔고, 결국 정신을 잃고 입원한다. 이후 재키는 JJ를 죽인다. 이 행동은 약자 보호나 정의 실현의 차원으로 설명될 수 없다. 베스는 중요치 않다. 재키의 분노를 터트린 것은 루의 눈물, JJ를 죽여 “바로잡으려고make it right” 한 것은 루의 상태다. 옳은right 것은 정의도 도덕도 아닌 ‘너 자체’다. 물리적 힘이 약한 여성인 베스나 데이지가 앞길을 방해한다면, 그들을 설득하고 ‘연대’를 해낼 여유는 없다. 재키는 데이지에게 총을 쏜다. (랭스턴의 지시였대도- 그 총질에 JJ의 머리를 테이블에 내리칠 때와 유사하게, ‘감히 루와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분노가 섞여 있지 않았는가) 루는 재키를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언니”를 협박하고, 재키가 죽이지 못한 데이지의 숨을 끊는다.


이 세계는 마초적이고 비윤리적인 힘으로 굴러간다. 법은 믿을 게 못 된다. 랭스턴이 매수한 경찰은 청부살인까지 수행하고, 가정폭력과 외도를 일삼았던 JJ는 ‘최고의 FBI 요원’으로 기억된다. 루와 재키는 그 힘의 법칙에 따라 대상을 ‘손아귀에 넣는’ 방법으로 힘의 영향력을 벗어난다. 아내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를 완력으로 이기고, 경찰을 시켜 자신을 죽이려 한 부친을 FBI에 팔아넘겨야, 탈출할 수 있다. 루와 재키는 사람을 때리고,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고, 약자를 협박하고, 때로는 연인마저 믿지 못해 문을 걸어 잠그거나 총질을 한다. 후회하고, 증오하고, 불안해한다. 영화는 이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는 만큼 비난할 생각도 없다. 옹호하려거나 페티시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랑은 그런 사랑’이고 ‘이 영화는 그런 영화’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근육질의 여자로서 “괴물”이라 불렸던 재키는 사랑의 마법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대신 거인으로 거듭난다. 마을을 지배하고 작은 동물을 돌보며 ’내 손바닥 안에 두는‘ 느낌을 즐기던 랭스턴은 (그는 루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평정심을 잃더니 키우던 곤충을 씹어먹는다.) 거인 재키의 손에 붙들린다. 루와 재키는 밤하늘을 내달린다. 이 초현실-영화적 허용이 황당하다는 반응조차 어느 정도 감독의 예상 범위 내였으리라 짐작한다. 몰입의 감동을 극대화하려는 / 동시에 반대로 해체하려는 이중적 의도가 감지되어서다. 사랑에 취한 이들의 환상을 시각화함으로써, 그러니까 ’판타지를 판타지라고 대놓고 말하고 망상을 공유함으로써‘ ’양해를 구하지 않으려는‘ 대담한 제스처로 와닿기도 했다.


엔딩, 재키가 잠들어있는 가운데, 루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데이지를 지친 얼굴로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다. 끊으려 했던 담배를 문다. 사랑은 ‘약간 불편하고 공허한 느낌’은 물론 어떤 것의 해결책도 아니다. 스테로이드에 중독된 재키와 니코틴에 중독된 루는 서로에게 중독된 채 황무지를 누빌 것이다. 트럭에 자리는 둘 뿐이다. 길은 울퉁불퉁하고 시야는 흐리다. 이들이 서로에게 건넨 ‘구원’은 <아가씨> 식으로 깔끔하게 통제된 해방 판타지 속 자유롭고 약속된 미래가 아니다. 땀과 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 임기응변한 결과로 쟁취한, 불투명한 내일이다. <세인트 모드>의 엔딩, 모드는 (아마도)지옥불에 활활 타올랐다. 루와 재키는 상대방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서로를 안고, 또 서로로 인해 타오를 것이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아름다움은 그 의도된/스스로 인지하는 불안정성과 폐쇄성, ‘양해를 구하지 않는unapologetic’ 성질에 있다. 불특정 다수의 공감이나 이해, ‘인정’을 바라며 만든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로즈 글래스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잘 알았을 테다. 우리는 불편하고 불안한 상태로, 작품의 카메라처럼 재키와 루 사이에 흐르는 것들에 가까이 다가가 감탄하면 된다. 재키의 근육을 감상하고, 루와 재키의 섹스에 달아오르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심장을 졸이고, 상대방에게 취한 두 사람에게 취하면 된다. 루와 재키는 니코틴과 스테로이드, 피땀과 총성이 뒤엉킨 사랑의 골짜기에 빠져있다. ‘너’를 끌어안고 붉은 협곡을 들여다보면, 별이 가득한 밤하늘로 보인다.




+

퀴어에게 비극 클리셰를 덧씌워 카타르시스를 쥐어짜지 말 것이며, 반대로 이상향이나 대안을 바라지도 말라. 이 스테로이드 뚝뚝 듣는 (안티)판타지는 그대들의 대리만족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죄책감의 원인이 주인공들의 폭력성에 있는 이 길티 플레져는 그래서 특별하고 심지어는 소중하다.


++

오픈리 퀴어인 두 주연 배우가 즐거운 촬영을 했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It was really sexy. And I don’t mean from an outsider’s perspective: I felt turned on by it, and it was cool to have people witness that.” - Kristen Stewart, [Variety] 


+++

쓰는 동안 FIGHTMASTER를 되풀이해 들었다. 조금 다른 블러드셰드지만

https://youtu.be/j3cZVMbXyZI?si=SW6LK-eH2CKZis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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