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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Sep 24. 2024

신곡들과 새사랑

또 하나의 밴드를 좋아하게 되었다



(가장 최근 발매 레코드부터 거슬러 오르는 순서다.)

 

 

9/23

Perfume Genius, ‘My Place’

<Too Bright>이 십주년을 맞이했다. 기념 바이닐 발매에 맞춰 퍼퓸 지니어스가 보너스 트랙을 무려 셋이나 공개했다. 어째서 EP를 새로 만들지 않고 십 년이나 된 앨범에 덧붙이는 걸까 궁금도 했었지만, 그 세계/시기에 속할 법한 트랙이라고 판단했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고 적은 후 몇 번 들어보고 바로 납득했다. 특히 ‘My Place’에 당시 트랙들인 ‘Grid’ ~ ‘My Body’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와 디테일이 들려서, 심장에 손을 얹고 듣는다. 아직 완전히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가사에도 유사한 뉘앙스가 있는 듯하다. 앞 트랙 ‘Story of Love’가 엔딩에 터지는 구성이라면, ‘My Place’는 날카롭게 이어지다 잦아드는 구성에 가깝다. 엔딩에 “nevermind”를 되풀이해 읊조리는 것마저 too bright 스럽다. 전부터 보고 싶었던 두 독립영화 사운드트랙/스코어 작업도 각각 하더니만… 마이크 헤드레어스는 늘, 이런저런 서프라이즈(놀라움, 깜짝 선물)를 안겨주는 아티스트다.

(+ 덧붙임: 글 올리고 몇시간 후에 마이크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2013년에 쓴 곡들이라고 적었더라. 이 좋은 걸 10년 동안 안 들려주고 있었어….)


https://youtu.be/QvWhyQn-YWA?si=y-0FTRkmC9QmjPjk

'My Place'

 

9/4

Terra Twin, ‘The Recogniser’

테라 트윈이 내년 2월에 새 EP 발매를 예고했다. 5개월이나 남은 시점에 어떻게 기다리라고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EP 수록곡일) 싱글 하나를 던져 주었다는 것이다. 테라 트윈은 단순한 리듬을 기반으로 한 그룹사운드에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드리우는 재능이 있다. 맥심 밸드리의 가사는 초현실적이고도 직관적인 표현법으로 내면의 스트러글을 정확히 짚는다. 대체로 캐치한데, 늘 실험을 해서 예상을 깬다. Head Leaking 정도의 빠른 리듬에 노스텔직한 기타 멜로디, 서정적인 보컬- 이대로도 사랑받았을 트랙인데, 브릿지에 엉망으로 내지르는 샤우팅(보단 ‘비명’이 적합할 듯도 하다)이 등장한다. ‘Plain Bridal’의 아름다운 카오스와는 또다른데, 와중 기타음은 이상하게 고운 것이다. ‘루이스가 정말 아름다운 기타 멜로디를 쓰곤 하는데, 이번엔 강렬하고 어글리한 요소가 있었으면 했다’[NME]고 맥심이 그러더라. 다음 EP 전체적으로 ‘강렬하고 어글리한’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곧 재미난 뮤직비디오를 올려줄 것 같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https://youtu.be/HG_uBMLoHv0?si=Yim7zsOaD6M2B84I

'The Recogniser'

 

9/3

FIGHTMASTER, ‘Barracuda’ (Heart cover)

파잍마스터 뉴 싱글 공개 소식에 뇌가 마구 달아올랐다가 커버곡이라는 걸 알고 조금 식었는데, 들어본 후 정신을 잃었다….는 당연 과장이다. 그렇지만 오리지널을 존중하면서 아티스트의 개성이 가득한 커버곡을 만나면 이렇게 신나고 만다. 파잍마스터(진짜 본인 성이라고 한다.)의 시원하고 허스키한 보컬은 참으로 독보적이다. 그레이 아나토미도 안 보는데 어떻게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냐면… 우연히 화보 사진을 목격하고 첫눈에 반했다. 이후 그의 음악 작업과 인터뷰를 접하고 더 반하게 되었고. 뭐 이런 팬이 다 있나 싶겠지만, 그대들… 이 인간에게 반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https://youtu.be/s3iHIB3bbzE?si=oY1F0dUz9-Za_ys5


8/30

The Cactus Blossoms, ‘Be What I Wanna’

칵투스 블라썸즈의 새 앨범 <Everytime I Think About You>를 몇 번 돌린 후 풀앨범 재생은 그만두었다. 그 까닭은 매우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해 있는데… 잭 토리 특유의- 딥 블루를 텅 하고 담백하게 던져놓는 (주로 단조) 트랙이 딱히 없어서였다. 그 부분이 감성적인 올드스쿨 발라드로 대체된 듯하여 살짝 아쉬웠다. 그러던 와중, 이 멋대로인 팬의 귀를 사로잡는 리프가 들려왔다. ‘Be What I Wanna’는 2집의 ‘Downtown’이나 ‘Please Don’t Call Me Crazy’를 연상케 하는 묵직한 로큰롤 리듬과 디테일을 지녔는데, 더 차분하게 가라앉는 방향으로 딜리버리된다. 보컬도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느슨하게 저음으로 내려놓는다. 선인장꽃 형제들의 가사는 단순하면서도 묘하고, 보편성이 있으면서 흔치 않다. 로맨틱 러브송인가 하고 듣다 보면 또 그것만은 아니고, 화자가 아티스트 본인인가 하면 ‘우리도 그거 누군지 몰라’를 시전하곤 한다.  


https://youtu.be/AlkES2n7BZw?si=EtiwERK8MrHbZHCe

'Be What I Wanna'


+

9/20 공개된 제시 루더포드 신보 <Wanted?>는 만듦새와는 별개로 대부분 취향이 아니지만, 특정한 몇 곡에는 중독됐다. ‘When I’m Sad’는 보컬이 정말로 아름답게 뽑혀서 감탄했고, 가장 흥미로웠던 건 ‘Órale’. ‘Living Room’도 괜찮게 들었다. 쓸 정도로 뭐가 생기진 않았고, 띄엄띄엄 잘 듣고 있다 정도. 이 사람도 살짝 자의식 과잉에 오버띵커인 편인데(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아티스트니까.), 아닌 척 하지 않고 그래 나 이런데 어쩔래,라는 식으로 털어놓아서 오히려 받아들이게 된다.(그렇지만 난 당신의 음악이 궁금할 뿐 당신의 연애사는 안 궁금한 걸….) 




Temples


아무래도 또 하나의 밴드를 좋아하게 돼 버린 것 같다. 팻포썸 레코즈 뉴스레터를 실수로 구독하고 취소하지 않은 덕이다. 새로 밴드나 뮤지션을 접하게 되면 주로 데뷔 또는 가장 최근 작업을 골라 앨범 전체 스트리밍을 시작한다. 템플즈도 그렇게 돌리면서, 몇 곡은 아주 좋고 몇 곡은 무난하게 들을 만 하다,고 느꼈었다. 가사는 주로 초현실적이라 불쾌한 표현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와닿는 바도 없었다. (그와중 또 인터뷰는 읽었는데, 보컬이 본인에겐 가사보다 사운드가 중요하다고 확실히 짚는 걸 보고 납득했다. 이런 이상한 질문 받으면 대개의 뮤지션은 어떻게 그걸 분리하니…하고 넘기던데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짐작일 뿐이지만-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서 혹은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소리-음악을 가지고 이거저거 하는 게 좋은 편인 듯하다.)


그러하였는데   찍은 편집 어지러운 ‘Keep In the Dark’ 비디오에서 출발해, 라이브 비디오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인간들 라이브가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그냥 열심히 공연만 하는데 너무나 재미가 있다. 토마스 웜즐리랑 제임스 배그쇼 헤어스타일이 적어도 7년동안은 그대로였던  같다는 이상한 디테일마저 재미있다. 템플즈에 프론트퍼슨이 있다면 제임스 배그쇼일텐데,  그렇지도 않은 느낌이다. (드럼은 중간에 바뀌었으니)  맴버에게 비중이 골고루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크레딧도 살피면  제각각이다.  모르지만 다들 다루는 악기 마스터인  같은데(각자의 보컬이 본인 메인 인스트러멘탈과 닮았다.), 아니나다를까  밴드 말고도 음악적 사이드잡(?)들을 하고 있더라.


최근의 집착은 ‘Atomise’ KEXP 라이브다. 일단 나는 반전 있는 곡에 환장하므로, 이런 식으로 느슨하게 튕기다가 별안간 다른 톤으로 웅장해지면 무조건 좋아한다. 사운드가 터지는 순간에 서로 보고 씩 웃는 것도 좋고, 보컬은 분위기 반전 후부터 기타에만 집중하고 이후 보컬을 다른 둘에게 맡겨버리는 것도 좀 덕질포인트다. (위에 언급한 인터뷰에서 본인들 스스로를 네오 사이키델릭 록밴드 말고 익스페리멘탈 팝밴드로 간주한다고 했던데… 역시 실험하는 뮤지션이 최고인 것이다) 또다른 집착은 프랑스 FM 라디오에 나가서 한 ‘Gamma Rays’ 어쿠스틱st 버전 라이브다. 멜로디 리프가 꽤 날카로운 곡인데, 좀 다운하니까 달리 매력적이다. 그 방식이 본인들도 생소해서인지 소리가 어긋나서 그런건지 자꾸 슬쩍 웃는데, 정말로 무언가 웃겨서인 듯 보여서 보는 사람도 웃게 된다. 라디오 공식 유튜브 계정이 곡 제목을 ‘Gramma Rays’라고 틀리게 적어서 올리고는 1년 n개월 동안 방치했다는 것도 웃기다. 템플즈 더 유명해지고 이 비디오도 떠서 틀린 제목이 하나의 인사이드 조크가 되면 즐겁겠다.


https://youtu.be/4xZiIX9iIIA?si=HfdEThwnMefoal1P

'Gamma Rays' 그라마 레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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