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Lowery: being alive is overrated
* 스포일러 포함
내 기억이 맞다면, 2021년도에 <그린 나이트>를 극장에서 세 번 봤다. 데이빗 로워리 작품이어서 한 번, 데브 파텔 연기에 매료당한 후 그의 팬이 되어가던 중 또 한 번, 영화 리뷰와 데브 파텔 아티클을 다 쓴 뒤 마음 편하게 마무리하고 싶어 또 한 번. 몽키맨 관람 후 덕심 최대치 찍고 스트리밍으로 그린 나이트를 보려다 왠지 아쉬워서(?) 안 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몇 주 후 CGV에서 A24 특별전을 열어 주는 게 아니겠는가. 지금 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데브 파텔 시청이 주 목적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영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당시 쓴 리뷰를 뒤집으려는 건 아니고, 이런 방향의 감상도 해 봤다, 정도로 짧게 덧붙인다.
영화가, ‘살아있는 상태’는 과대평가되지 않았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듯했다. 가웨인은 그린 채플로의 여정에서 유사 죽음들을 겪거나, 죽음에 닿아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마주친다. 그 과정에서 천천히 죽음을 향해 다가가며 ‘준비’를 마친다. 위니프레드가 “당신이 아는 자”라고 했던 ‘그린 나이트’는 아마도 가웨인 자신의 ‘가능한 미래’에 대한 은유다. 제 목을 자를 도끼 아래서 ‘가능한 미래’의 주마등을 겪은 가웨인은 ‘그저 살아있기 merely being alive’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살아만 있을’ 수도 있고, 이렇게 ‘죽음을 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고스트 스토리>의 주인공은 죽음 이후 땅에 ‘존재하는’ 유령들이었고, <노인과 총>은 사회의 룰을 벗어나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의 이야기였다. <그린 나이트>도 큰 틀에서는 감독의 전작들과 이러한 결을 공유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how to make a living’로 이해되는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가 아닌, ‘돈을 잘 버는 방법’으로 이해되는 ‘잘 사는 방법’이 아닌- 그 너머를 바라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사유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이번에 로워리가 쓴 트릭은 중세 판타지 전설 각색, 배경과 서사의 거리 덕에 관객은 현실을 잠시 치워 두고 고민해볼 수 있다. (한참 전 썩어버린 시대를 아주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하나마나한 풍자보다는 서늘한 애도를 택했을 뿐이다.) 죽음을 떠올리는, 그것에 다가가려 하는 행위는 우울증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인간은 삶의 방식을 정하듯 죽음의 방식도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혹은 이 자체가 착각인가? : 결론보다는 질문이다.
로워리가 ‘끝에 데브 파텔 머리가 잘리는 영화를 본다면 관객들이 다른 기분으로 극장을 나갈 것이므로’ 오픈 엔딩으로 바꿨다고 했는데[Vanityfair],,, 실마리를 남겨서 관객이 사유의 끈을 이어 풀어낼 수 있게(or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결말이다. 멋대로 상상을 뻗쳐보면 스스로의 특권과 중세 신분제의 모순, 권력의 허무를 깨달은 가웨인이 이 따위 왕 되느니 지금 죽겠어 하고 기사의 명예가 아닌 인간의 품위를 지키기로 한 거다
데브 파텔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끊임없이 망설이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인 캐릭터를 참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언어연기도 훌륭한 배우지만(라이언 오스트레일리아 악센트를 현지인들이 그렇게 칭찬을 했다던데…), 몽키맨 속 액션의 흔적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였는지 신체연기를 자세히 살펴보게 됐다. 섬세한데 시원시원하다고 할까, 머뭇거림 흔들림을 자잘하게 살리는데 방어적이지 않다고 할까… 어워드 관련 정보를 이제야 검색해봤는데, 연기 부문은 노미네이션조차 거의 없어서 살짝 충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