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않인 Aug 21. 2021

어떤 위대함의 모양

<그린 나이트>(2021)



어떤 위대함의 모양

The Shape of ‘A’ Greatness

 

<그린 나이트(The Green Knight)>(2021, 데이빗 로워리)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스트 스토리>(2017)는 더스티 실버였고, <The Old Man & the Gun>(2018)은 빈티지 골드였다. <그린 나이트>(2021)는, 어둡고 짙은, 이끼의 녹색이다. 산맥에, 시체 주위에, 왕관의 보석에, 왕의 가운에, 초상화에, 어두운 성 안에, 화면 전체에 퍼져 있다. “왜 그린일까요.” ‘레이디’는 묻고, 답한다. ‘그린은 자연의 색, 이 땅의 색, 부패의 색. 붉은 욕망이 지나간 자리 잔해로 남은 색. 인간이 원하지만 커지면 무너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러나 끊임없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색’이라고. 그 그린을 어찌할 것인가, 무너뜨리고 인간의 명예를 쟁취할 것인가? 헌데, 그 명예, 위대함greatness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린 나이트>(2021). 왓챠피디아 이미지.


“이것은 바위에서 검을 뽑아 왕이 된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레이션과 함께, 왕관을 쓴 가웨인의 얼굴에 불이 붙는다. 주어진 ‘운명’을 아무 의심 없이 용감하게 뽑아 드는 주인공은, 이 이야기에 없다. 처단해야 하는 악도, 지켜야 할 레이디도, 짜릿한 승리도 없다. 작품이 각색한 가웨인은, 주저 없이 적을 베는 영웅이 아니라, 위대해져야만 하는지 고민하는 젊은이다.

 

그린 나이트의 ‘비밀’은, ‘반전’으로 쓰이지 않는다. 작품은 처음부터 어머니의 마법과 그린 나이트의 관계를 내보이며, 방향을 분명히 한다. 신비함이 줄어들어도, 인상은 충분히 강렬하다. 절묘하게 교차한 편집과 어두운 녹색의 화면, 사운드가 제 역할을 한다. 나이트는 도끼를 내려놓고, 내리치라는 듯 목을 뺀다. 가웨인은 두려워하고, 당황하고, 칼을 휘두르는 순간까지 망설인다. 목이 떨어진 나이트가 퇴장한 후엔, 혼란스러워한다. 단순히 준비가 덜 된 것 뿐, 때가 오면 기사가 되리라 여겼고, 지금이 그 기회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검을 휘두르고 나니 오히려, 기사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짧은 일 년, 미완성된 모험은 이미 이야기가 되어 퍼졌다. 반복해 플레이되는 인형극의 끝에 가웨인은, 목이 잘리며 게임을 마친다. 지겹게 도는 소문을 피해 다니다 진흙과 술에 범벅이 된 채 묻는다, “만약 위대해질 운명이 아니라면요?” 여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떠밀리듯 길을 떠난다. 에셀은 물었다, “왜 위대해야 해, 괜찮은 걸로 충분하지 않아?” 가웨인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명예를 얻기 위한, 위대해지기 위한 모험이라고 했지만-사실 ‘위대함’의 정체와 필요성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한 여정이다.


<그린 나이트>(2021). 왓챠피디아 이미지.


처음 맞닥뜨린 건, 왕들의 전쟁이 낳은 폐허와 범죄. 다음은, 남성의 폭력에 희생된 이의 원혼이다. 언뜻 휴식처인 듯 보이는 성은 유혹의 공간이다. 왕의 입을 빌려 어머니가 말했듯, ‘단지 게임’, 결국 모두 비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베리 키오건의 캐릭터는 실재하나 마법에 씌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예상 밖의 여정이,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강도는 도끼와 말을 훔쳐 달아나며 의미심장한 윙크를 날린다. 집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도끼만이 돌아온다. 외딴 성의 레이디는 어머니의 띠를 ‘돌려’준다.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에셀의 방울은 어느새 다시 돌아와 있다. 그를 닮은 레이디는 사랑에 대해 물은 후 그것을 앗아간다.

 

띠를 잃은 채 몸이 묶였고, 결박을 풀다 칼에 베였고, 추위에 떨었고, 독버섯을 토했고, 절벽에서 미끄러졌다. 숲에서 죽음을, 못 속에서 우주를 보았다. “특권을 벗고 자연에 압도되어 그 앞에서 겸손해졌다”.(Dev Patel, youtube ‘Screen Rant’) 별로 ‘위대하지 않은’ 사건들을 겪고, 성취감 대신 불안만 얻으면서도 끝내 방향을 돌리지는 않는다. 신체의 한계를 마주하고, 시험 당하고, 도망치고, 완전히 지쳐 목적지에 도착한다. 자신과의 싸움, 선택의 연속이다. 유혹을 받아들일 것인가, 목을 내놓을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지속할 것인가.

 

가웨인은 스스로를 기사라고 칭하기를 미루고, 낯선 이들은 그에 관한 판단이나 질문을 던진다. 강도는 ‘당신은 기사냐’고 묻고, 가웨인은 ‘그냥 지나가는 중’이라고 답한다. 위니프레드는 “기사라면 더 잘 알아야죠.”라고 경고한다. 레이디가 녹색 띠를 남기며 한 말은, “당신은 기사가 아니야.”. 로드는 묻는다, “명예? 그대가 삶에서 원하는 게 바로 그건가? 그렇게 예정된 모험의 여정을 밟고 나면, 짠 하고 명예로운 기사가 되는 건가?” 가웨인이 ‘기사’라는 정체성과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린 나이트>(2021). 왓챠피디아 이미지.


환상의 성에 걸려 있던 -‘뒤집힌’ 초상화의 존재는, ‘집으로의 여정’ 장 전체가 가웨인의 상상, 마지막 ‘관문’임을 암시한다. 죽음의 공포에 굴복해 도망쳐 나와, 그 두려움을 허리에 두른 채 왕의 자리에 오른다. 연인이 낳은 제 아이를 강제로 빼앗고, 이전 왕들처럼 전쟁을 벌여 아들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멸망 직전의 왕좌에 앉아, 모두가 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본다. ‘욕망이 지나간 자리’에 내내 묶여있던 녹색 띠. 마침내 그것을 풀자, 목이 떨어진다. 그린 채플에서 도망친 순간 두려움에 썩어가기 시작했던 목이다.

 

숲에서 묶여 뼈만 남은 제 모습을 상상했듯, 가웨인은 무릎을 꿇은 순간 본인의 앞날을 그렸다. 그대로 도망친다면, ‘그린 나이트’가 되어버릴 것임을 깨닫는다. 이제까지의 여정이 상상과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작품의 시작,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고 되뇌던 그는, 두려움을 차분히 푼 후, “이제 준비 됐어요.”라며 목을 보인다. 그린 나이트는 도끼를 거두고 말한다, “잘했어.” 가웨인의 목을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긋고, 마무리한다. “Now, off with your head.”

 

<그린 나이트>(2021). 왓챠피디아 이미지.


어머니는 단순히 기사/왕이 될 명분으로 쓰라고 모험을 건네 준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고민하여 답을 내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떤 기사가 될 것인지에 대해, 전쟁을 일으켜 마을 전체를 파괴하는? 여성을 성욕 해소과 출산의 도구로 착취하는? 삶에 대한 욕망이 아닌 죽음의 두려움에 잠식당해 속부터 썩어가는?


“왜 위대해야 해, 괜찮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거야?” ‘위대함’. 그것은 언뜻 의심할 필요 없는 기사의 자질로 보이나, 추상적 개념이다. ‘위대함’은 획득,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며, 왜 얻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 고민하고,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가웨인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위대함’,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의 무게를 지니고, 다시 특권이 있는 성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그거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위대한’ 기사들이 던질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질문에, 그는 남들보다 오래 망설이고 겁내어 답을 내렸다. 진짜 ‘모험’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그린 나이트>(2021). 왓챠피디아 이미지.



+

에셀의 얼굴을 한 레이디는, 학자, 화가, 작가다. 구전되는 이야기를 옮겨 적으며, 발전할 구석이 보이면 고쳐 쓰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각색자이기도 한 감독이 반영된 캐릭터라는 짐작이 든다. ‘그린’의 의미를 묻고 답하는 것도 그다. <고스트 스토리>에도 한 허무주의자가 예술의 ‘의미’ 혹은 ‘무의미’에 대한 작품의 고민을 대사로 풀어내는 장면이 있다. 이런 직설법이 몰입을 깨지 않는 까닭은 어울리는 톤으로 섞여 있어서다. 대사의 내용이 전부가 아니다. 레이디는, ‘그린’에 관해 ‘연설’할 때, 관능적인 눈빛과 말투를 사용한다. 그곳에 둘만 있는 듯 행동하고, 가웨인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상대의 존재와 말의 흐름에 압도된다. 말이 끝난 후, 그린으로 덮인 성의 ‘비전’이 끼어든다. 가웨인과 레이디가 멀리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로드의 대사가 이어진다. 연출적 디테일에 감탄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나야 뭐 언제나 과몰입하므로 캐릭터 심리 이해 위주의 감상을 적었다.


++(글 완성 이후 감독 인터뷰를 읽으면 벌어지는 일)


나는 가웨인의 머리가 잘리는 결말을 쓰고 싶었다. 그건 해피 엔딩이다. 그는 (상상 속에서 왕국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고,)  운명을 용감하게 받아들인다. 거기엔 명예와 완전함이 있다. 그게 그가 죽었다dead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는 죽임을 당한killed 거다. 약속한 것을 받은 거고,  영화  세계에서는 모든  맞도록 짜여 있다.   분명하게 결론이 나는 엔딩을 찍기도 했었다. 하지만 관객이 끝에 데브 파텔의 목이 잘리는 영화를 보게 된다면, 다른 기분으로 극장에서 나가게   아닌가.”

-David Lowery, Interview by. Joanna Robinson [vanityfair.com]


그렇다면, 내 해석은 각색의 의도와 달라지고 말기 때문에 잠깐 혼란스러웠지만, 뭐, ‘틀린’ 건 아니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인터뷰를 읽지 않고 버티며 홀로 상상했기 때문에, 글에 적은 고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감독 역시, 의도와 다른 해석을 해도 괜찮다고 답한다.


심지어 우리들, 데브, 프로듀서들, 나조차도 엔딩의 의미에 대한 의견이 각자 조금씩  다르다. 화면이 꺼지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David Lowery, Interview by. Joanna Robinson [vanityfair.com]



*참고 인터뷰

https://www.google.co.kr/amp/s/www.vanityfair.com/hollywood/2021/07/green-knight-ending-explained-does-he-die-gawain-dev-patel/am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