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rd Connection, <그래도 우리는>(2024)
너드커넥션은 옛것에 기반을 두고 고유한 성을 쌓아가고 있다. 섬세한 송라이팅과 불특정한 언어로 시공간을 넘어 사적인 경험들과 공명하곤 하지만, 음악적 탐구와 진중한 사유를 고집하는 이들의 록은 사실 꽤나 동시대적이다.
비교적 유명한 곡들을 먼저 접했더라면, 선입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밤 좋은 꿈’, ‘대나무숲’으로 대표되는- 서정시를 닮은 가사와 우수어린 멜로디로 마음을 건드리고, 가끔 강렬한 클라이맥스로 변화를 주는 싱글 트랙들. 이 한국적 발라드들을 좀 더 일찍 알게 되었대도 (내가) 재생한 횟수는 지금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결국 취향의 문제.) 그랬다면, <New Century Masterpiece Cinema>를 듣고 반성했을 것이다. 그동안 낸 싱글을 모아두는 대신 낯익고도 새로운 세계를 구성한 너드커넥션의 정규 1집은, 완성도와 다양성을 갖추고 익숙하다는 감상이 끼어들 무렵 신선한 디테일로 귀를 환기한다. 시원하게 뻗는 하드록부터 파워발라드, 올드스쿨 케이팝의 흔적까지 한 흐름 안에서 소화한다.
이 폭은 느닷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1집부터 시작해 선후 디스코그래피를 서치하다 듣게 된 19년도 EP <TOO FAST>는 뒤늦게 발견한 보물상자(비유할 단어가 정말 그것 뿐인가) 같았다. ‘Waterfall’의 멜랑꼴리-심오한 리프부터, ‘Where are we’ 후반 거의 슈게이징이라고 해도 될 법한 연주까지, 이 밴드의 특별한 송라이팅 실력과 가능성, 일관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묘한 하모니로 이루어진 ‘Interlude’마저 별칭을 붙여주고플 정도로 귀를 사로잡는다. 보다 사이키델릭에 닿아 있는, 초현실적 아우라를 두른 트랙들임에도, 너드커넥션이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 추구하는 음악의 색이 비친다.
<그래도 우리는>을 들여다보기 전 1집과 2집 사이 싱글들을 살폈다면 어떤 맥락을 읽었을 수도 있겠다. (연대를 무시하고 무작정 정규를 돌린 후 EP와 싱글을 죽 재생하는 근본없는 리스닝 버릇 탓에 감각이 뒤섞였지만) 여전한 록발라드로 구분할 수 있더라도, 맺고 끊음과 강약을 신중하게 배치하고 디테일을 첨가한 ‘그 또한 우리 사랑’이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음색을 조절하며 나직하게 내려놓는 보컬도 한몫한다. 사이키델릭하나 몇 년 전 작업과는 차별되는 분위기를 띠고 풍성하게 나아가는 ‘버들길’은, 담백한 가사로 균형을 맞춰 꿈결 같은 아련함을 자아낸다. 후반부 고조되는 그룹사운드는 클래식 하드록보단 일종의 슈게이징을 좇는가 싶더니 깔끔하게 잦아든다. 포크 스타일 리프에서 출발해 자잘한 폭발과 절제를 반복하는 ‘파블로’ 등- 너드커넥션이 탐구를 지속하는 밴드임을 새삼 일깨우는 작업들이다.
https://youtu.be/qkZt-tu-t9g?si=_UWV6p-iCidSSE4B
<그래도 우리는>은, 발매 후 두세달쯤 리스닝을 미뤘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만큼 멋진 작품이다. 1집이 그러했듯 하드하게 열고 부드럽게 닫지만, 그 사이 굴곡의 모양은 다르다. “신시사이저 대신 현악기와 타악기로만 사운드를 채웠다”(박재현, [Vogue Korea])는 설명에 놀라며 ‘아하 모먼트’를 맞이했다. 과연 풍부하면서도 묵직하다.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구성과 분명한 메시지를 심은 가사. 감상에 젖게 하는 발라드의 비중이 줄어들고, 펑키-리드미컬하게 시작해 공격적으로 고조되는 곡들이 자리를 차지하는데, 거기 담긴 정서는 앞선 묘사처럼 단순하지 않다. 양면적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리겠다.
오프닝부터 어둠이 깔린다. ‘그림자 놀이’의 “괴담”은 소름 돋는 공포보단 지긋지긋한 상념에 닿아 있다. 귀에 강렬하게 달라붙지만 가장자리에 향수의 자리를 마련한 그룹사운드, 힘있게 질주하다 아련하게 맺는 보컬. 여기 적합한 표현은 아마도 ‘haunting’. 일단 기타 솔로로 인상을 남긴 후 두드리고 끊는 ‘Psychiatric Hospital’, 첫 트랙을 듣고 했던 예상을 비틀지만 서사적으로는 맥락을 잇는다. ‘headshrinker’의 펑키한 무감각, ‘CASH’는 그 분위기를 잇다가 템포를 점차 빨리하며 조바심과 집착을 드러낸다. 힘을 빼고 낮춰 읊조리던 보컬은 후반부에 박자감 있는 샤우팅이 된다. ‘Losing Myself’는 ‘Psychiatric Hospital’과 나란히 놓아볼 수 있을 듯하다. 펑키한 멜로디에 냉소나 혼란이 얹힌 네 트랙, 영어 가사는 건조한 감흥과 리듬을 살린다.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로 다 작성한 다음 더 울림이 있는 언어를 선택”(서영주, [Vogue Korea])한다는 이들의 작사법에 감사해야겠다. 이번 앨범에서는 특히, 두 언어의 뉘앙스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며 각자의 역할을 다한다.
<그래도 우리는>은 내외면의 혼돈과 허무를 표출하지만, 그 잔해에 청자를 내버려두지는 않는다.(그렇게 내버려두기에 아름다운 앨범들도 있지만) 1집의 ‘Green Fields’가 떠오르는 웅장함을 지닌 ‘무너진 땅 위에서’는 효과적인 전환점이 된다. 무언가를 때려부수는 듯한 그룹사운드로 곡을 열더니, 특유의 고운 보컬로 벌스를 가만히 늦추는 진행-이 가사의 정서와 일치한다. 보컬 딜리버리가 예스럽지만 디테일이 세련되어, 올드하다기보다는 색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결정적으로 ‘무너진 땅 위에서’는, 노스텔지아의 반대편을 바라본다. 파괴를 인지하는 채로, 손을 잡고(잡음으로써) 떠오르자고 노래한다. 품에 감싸안기보단 내던지고 터트림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주는 방향의 위안, 그 형태가 정교하고 마무리가 깔끔한 폭발이다. 이어 ‘사랑을 닮은 이유로’에서 자아로 파고드는 멜랑꼴리한 사색에 잠겼다가, ‘꽉 잡아’로 경쾌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무너진 땅 위에서’와 ‘꽉 잡아’를 합치면 데이빗 보위의 ‘Rock ‘N’ Roll Suicide’와 유사한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https://youtu.be/NyfYX3vw72A?si=IPAzEB7W3vLJg9B5
앨범을 재생하고 머릿속 영화로 관람하면, 화자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가사의 주제뿐 아니라 각 트랙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달리 설정했다고 느껴진다. 정신 병원에 있는 자와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니 나 좀 구해달라고 하는 자, 스스로를 ‘광대’로 일컬으며 애써 웃는 자, 돈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는 자와 로큰롤로 위로를 건네는 자… 그중 개인적으로 특히 흥미로웠던 대화(라고 할 수 있다면)는 ‘She’와 ‘Freddy’, 특정한 대상을 두고 그를 관찰하거나 말을 거는 형식의 스토리텔링이다.
우아하고 재기로운, 살짝 시네마틱하기도 한 ‘She’는 언뜻 거리를 두는 러브송으로 들리기도 한다. 허나 클로즈업해보면 ‘she’에 대한 화자의 감정은 매혹attraction보다는 존경admiration에 가깝게 다가온다. “모든 걸 가질 수 있지만, 진실된 사랑과 행복을 좇는 대가로 전부를 바치는 그”. <TOO FAST> 수록곡 ‘Marion’, ‘지나쳐 가는 사람들 속에 멈춰 있는 나’와 ‘지나쳐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꽃잎을 팔아 낙원을 사려 하는 너’의 조우가 겹치기도 한다. ‘Marion’이 향수였다면 ‘She’는 찬사에서 애도로 흐른다. 무게를 덜고 읊조리며 진행되던 관찰의 서사에는 어느 순간 애상이 실린다. 섬세하게 고조되는 보컬링에 미래의 상실감이 만져진다. 화자와 ‘she’는 이… ‘시대가 대놓고 저버린 가치들을 추구하는 행위’가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아마도 그 점까지가 화자가 ‘she’를 존경하는 까닭이다. “She definitely got some style on her face”, “top class beauty”는 외모보다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서술일 테다. “시간이 모든 걸 가져가겠지만”, 그래도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오프닝의 디테일부터 심상찮은 ‘Freddy’, ‘She’와 느슨한 연작을 이룬다고 상상해 본다. 이를 악물고 뱉다 놓아버리는 듯한 보컬과 후렴의 거친 그룹사운드, 하모니, 간주의 재치있는 기타 솔로. 변화무쌍하면서도 어수선하지 않은, 안 매력적인 부분을 찾기 힘든 트랙이다. “something like loving, hoping, thinking, that this world is a beautiful place”에 관해 말했던 프레디를 향해, 화자는 “꺼지라”고 한다. 방구석에서 비웃는 것이 아니다, 노력 끝에 지쳐 나가 떨어진 상태로 “디즈니 영화가 아닌” 현실을 직시한다. 이 비관적 고백의 딜리버리는 댄스를 유발할 정도로 흥겹다. 어쩌면 자포자기적 흥이려나. 이인칭 반어법(?)으로 실은 프레디를 응원하는 곡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 끌리는 해석은 아니다. 이러한 화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그래도 우리는>은, 예쁘장한 낙관을 걷어낸 곳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엔딩을 조심스럽게 장식하는 ‘가장 높은 인연’, ‘행운을 빌어’에 그 실버라이닝이 비친다.
https://youtu.be/e3GKP8sJTlA?si=cgdvm2FW2_zQd2bk
시원하게 뻗거나 강렬하게 두드리더라도 ‘정신없이 신나는’ 무언가는 아니다. 잔잔하게 귀를 토닥이는 트랙에도 그저 따스한 위로보다는 신중한 사유가 어려 있다. 너드커넥션은 앞세대 록을 오마주하면서도, 그 음악적 유산과 ‘그 시절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낭만’을 향한 향수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작년 EP의 지구종말적 경쾌함과는 또다른 카오스가 풍기는 <그래도 우리는>에서, 이들은 ‘그럼에도’ 동시대에 남아있는 인연과 사랑, 희망을 노래한다. 일종의 노스텔지아가 돼버린 가치들을,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세상은 디즈니 영화가 아님”을 이해하고, 순진하게 굴지 않으면서 순수한 장소를 찾는다. 굉장한 행복을 바라기보단 “사라질 너의 보통의 날들에” 행운을 빈다.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믿기보다는, 땅이 산산조각나는 동안 곁에 있는 이의 손을 잡고 떠오른다. 다양한 록을 넘나들며 너드커넥션은, 여전히 ‘너무 빠른’ 세상 한가운데 멈춰 서서 곁을 내어주려 한다. 마냥 곱거나 신나지 않은 이들의 록은 절망 속에서 사려 깊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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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커넥션과는 여러 모로 아주 다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이나, <그래도 우리는>을 프로세싱하며 가끔 ‘희망’에 관한 에즈라 코에닉의 철학을 되새겼다. 그래서일까, ‘가장 높은 인연’을 들으며 ‘Hannah Hunt’를 생각하고 말았다. (이 따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인연”, “서로를 누일 작은 섬”인 상대방에게 세레나데를 보내는 그 ‘절망을 아는 로맨틱함’이 닮았다고… 그냥 또 모던 뱀파이어 오브 더 시티에 도른 시기가 도래한 것일 수도 있고.
* 참고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