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좋아, 여름이 좋아?
고등학교 2학년의 겨울이었던가. 어스름한 새벽에 자판기로 향하던 여자친구가 대뜸 물었다.
내 표정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당연지사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고, 겨울에는 여름이 그립다. 흑백논리만 내세우는 밸런스 게임이 알게 뭐람.
그럼에도 언제나 나는 여름이라 답했다. 여름이 좋기보단 겨울이 싫었다. 겨울이 싫다기보단 껴입는 게 싫었다.
두꺼운 옷을 쌓아 올린 내 몸은 둔해빠진 미쉐린이 된 것만 같았다. 제어할 수 있는 것이 몇 없는 세상에서 내 몸뚱아리 마저 통제받는 기분이 싫었던 걸까.
나는 벗는 게 좋다. 그 자유로움이 좋다. 바람이 스쳐 팔에 닿는 감각과 피부들이 맞닿는 온기가 좋다. 넌 아마 겨울이 좋다고 했겠지만 아무렴, 여름에 사는 나는 얼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러 번의 겨울을 함께했다.
겨울이 좋았던 작은 이유라면 누군갈 자주 껴안을 수 있었다. 지독한 땀냄새나 끈적거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온기를 빌미로 꽤나 오래 안겨있을 수 있었고 추울수록 더 오래 안을 수 있었다.
이런 걸 애정의 결핍이라고 하나. 인정하기 싫다. 난 그냥 안고 싶을 뿐이다. 살과 살이 맞닿는 것이라면 더 좋다. 너와 나 사이의 어떠한 벽도 없이 말이다. 나에겐 껴안는 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겨울밤 본가에 내려온 누나를 껴안고 한참을 서있던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일하던 친누나는 한때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아빠는 누나의 일을 존중하지 못했다. "퇴사하라"는 아버지의 차가운 고함에 창가에도, 눈가에도 서리가 맺혔다.
그 감정은 서운함 보다 더 묵직한 것이다. 복받친 감정을 안고 집을 나가버리겠며 울던 누나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잘하고 있다고. 나 또한 잘하는 게 뭔지, 지금도 여전히 모르지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 날 만큼은 추운 겨울이 좋았다.
나는 누구를 안음으로써 말을 대신한다. 껴안다 보면 말없이도 다 그렇게 알게 된다. 고맙다, 믿는다, 곁에 있어 달라, 그리고 사랑한다. 술 취한 친구의 등을 장난 삼아 껴안는다. 날 믿어줘서 고맙다고. 떠나는 친구를 붙잡고는 한 번 안아달라고 말한다. 넌 참 좋은 사람이라고.
겨울이 가기 전에 더 많이 안아볼 수 있길 바란다.
따뜻해진다는 핑계로 더 오래, 기왕이면 꽉 안고 싶다.
나 여름보다 겨울이 좋나.
대답하기 어렵다. 그냥 한번 말없이 안아주면 대답이 될까.
껴입는 건 싫지만 껴안기 좋은 계절에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