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ya Jun 25. 2024

흙으로부터

나는 유년기의 절반을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보냈다. 마당 속 정원에는 덩이식물과 채소들이 가득했다. 풀내음과 맞이하는 사계절의 변화는 분명 낭만스러운 기억이다.


하지만 식물과의 동고동락이 매번 로맨틱한 것은 아니었다. 보이는 '결과'로써의 정원은 한없이 아름답지만 가꾸는 '과정'의 가드닝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여름철엔 하루가 다르게 잡초가 치솟고, 땀과 햇빛이 뒤섞여 낑낑대는 사이 난생처음 보는 벌레가 튀어 오르거나, 발목을 수십 번 물리기 일쑤다. 텃밭의 채소는 부쩍 자라 애물단지가 되거나, 수확 시기를 놓쳐 방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정원이 주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우리는 가드닝을 자연스레 익히며 자랐다. 학교 정원과 집 화단에 화초를 가꾸고, 덩이식물을 수확하며 자연의 선물을 경험했다.


가드닝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행위이다. 말없이 조용히 흔들리는 식물에게 넌지시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은 부족한지, 온도와 광량은 적당한지, 분갈이나 비료가 필요한지와 같은 무언의 소통이다. 바바라 담로시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원예의 기법은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생각만으론 근사한 정원을 가꿀 수 없다. 식물은 우리에게 일정한 노력과 공간을 요구한다. 애초에 아파트가 즐비한 한국의 주택문화에서는 개인정원을 찾기 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식물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은 바로 플랜팅이다. 플랜팅은 화분 하나로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나른한 주말 주변의 감각적인 플랜트숍 혹은 도매 시장에 들러 느낌이 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보자. 그러다 문득 함께하고 싶은 운명의 짝을 만났다면, 남은 건 플랜팅을 시작할 결심뿐이다. 이것저것 준비가 어렵다면 식물 키트나 클래스를 수강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요즘은 환경적 제약에 맞추어 조화를 활용한 플랜테리어나 식물을 형상화한 오브제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찬물에 뛰어들기 전 가슴을 적시듯이, 순응을 위한 시간을 천천히 가져도 좋다.  



식물과 공존하는 삶은 쉽지 않지만, 그러므로 가치 있다는 말을 전한다. 가드닝은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며, 우리는 자연과 함께할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오롯이 나의 노력이 식물을 성장시킨다는 착각은 어리석다.


우리는 하늘과 흙, 공기와 바람, 별과 미생물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잠시 몸을 기대고, 작은 역할을 맡는 것이다.



나는 마초 고사리와 행잉플랜트 '캣'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바라보는 것만큼 싱그러운 경험이 있을까.


식물이 가진 수많은 정서적, 심리적 힘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늘 한계에 부딪힌다. 나는 글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감수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대답을 갈음할 수 있다면, 아래 존 뮤어의 문장으로 대신하겠다.  

Earth has no sorrow that earth cannot heal.

흙에게 치유할 수 없는 슬픔이란 없다.

작가의 이전글 빨리 낫는 건 약한 걸까 강한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