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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잎은 떨어지지 않는다

by 무늬

어스름한 저녁에 시작된 글쓰기 모임이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서둘러 지하철을 타면 11시쯤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곧장 들어가고 싶지 않다.


경복궁역 입구를 지나 광화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복궁 담장을 따라 자박자박 걸었다. 궁궐 너머 쪽빛 하늘은 시간을 삼킨 듯 텅 비어 있었다. 한참을 걷다 플라타너스 나무 앞에 멈췄다. 적갈색 나뭇잎이 가지에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태초의 연둣빛은 온데간데없다. 툭 건드리면 떨어질 것 같지만 매서운 추위와 모진 바람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나뭇잎이다.

‘저 잎은 왜 아직 안 떨어졌지?’

고개를 떨궈 흙과 뒤섞인 낙엽 부스러기를 바라본다.

뾰족한 추위가 외투 속을 파고들어 버스정류장으로 걸음을 돌렸다.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았다. 창틀에 턱을 괸 채 파노라마처럼 이어진 가로수를 바라보았다. 매달린 잎은 새로운 초록이 가지 속에서 고개를 들기 전까지 그대로 붙어 있을 것이다. 내게도 낙엽이 되지 못한 기억이 있다.

창밖 풍경을 감상하는 대신 머릿속을 뒤적여 뽀얗게 먼지가 앉은 필름을 꺼냈다. 영사기에 빛바랜 필름을 집어넣었다. 불도 키지 않은 방에서 엄마와 아빠가 고성을 지르며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엄마가 홀연히 집을 나갔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유난히 추웠던 어느 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어머니. 문 좀 열어주세요. 애들만 잠깐 보고 갈게요.”

거실 바닥에 한쪽 무릎만 세우고 앉은 할머니가 야멸차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열어주지 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현관문 앞을 서성였다. 문 밖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내복만 입은 나는 문 앞에 앉아 엉엉 울었다. 문틈새로 들어온 한기가 바닥 타일을 타고 발 끝까지 기어올라왔다. 할머니의 말을 거역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손잡이 중앙의 차가운 금속을 돌렸다. 문이 열리자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발걸음을 느릿느릿 떼어 거실로 들어왔다. 그대로 나를 지나쳐 할머니 앞으로 가 무릎 꿇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어머니… 조금만 더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조금이라도 괜찮아요. 몇십만 원이라도…“

할머니는 엄마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 어두컴컴한 방에 시선을 고정했다. 할머니의 입술은 한 번도 열린 적 없던 문처럼 굳게 닫혀 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 기억들이 흐릿해지고, 결국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같은 필름을 반복해서 돌릴수록 시간은 오히려 그 위에 층층이 덧입혀져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엄마의 집은 가난했다. 8명이 넘는 식구가 16평 남짓한 집에서 몸을 부딪치며 살았다. 22살이 되던 해, 그녀는 동대문 평화시장에 있는 작은 넥타이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게를 운영하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가족들의 끊임없는 반대에도 결국 둘은 결혼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덜컥 엄마가 되었다. 화목했던 신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이른 나이에 선택한 결혼에 대해, 엄마가 된 자신에 대해 자주 권태와 회의감을 느꼈다. 스스로를 옥죄는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홀로 외출하곤 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씩 집을 비웠다. 그 무렵 아빠는 사업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엄마가 집을 나갈 때면, 나와 두 살 어린 남동생만 덩그러니 남았다. 엄마는 외출하기 전에 우리에게 수면제를 먹였다. 새벽녘, 몽롱한 약 기운에 잠에서 깨어 온 집을 헤매며 엄마를 찾았다. 울다 지쳐 현관 앞에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결국 부모님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나와 동생은 할머니 손에 맡겨졌고, 그로부터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내 속엔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분노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감정이 애매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애통하게 울지도, 격렬하게 분노하지도 못한다. 시간은 결국 탈색된 감정만 남겼다.


가끔 책꽂이 구석에 꽂혀 있는 엄마의 책을 몰래 펼쳐본다. 그 속에는 엄마가 밑줄을 그은 문장과 메모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는 고고학자가 된 것처럼 책 속 흔적을 더듬으며 엄마의 삶과 마음을 해석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과거의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건다는 것은 이미 썩어버린 과일을 베어 문 것처럼 씁쓸하고 텁텁했다.

밖에서 술을 마신 어느 날, 화장실 문에 붙은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A흥신소, 사람 찾기, 010…’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번호를 저장했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씁쓸한 고민 끝에 흥신소에 연락하지 않았다. 아직 필름 속 엄마를 현재로 끌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바싹 마른 슬픔은 여전히 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어떤 잎은 색이 다 바래도 떨어지지 않는다. 계절이 몇 번이고 지나가도, 끝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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