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햄스터로소이다 - 7

연재소설 | 악마의 간악한 혓바닥

by 흰코뿔소

댑싸리 밑의 개팔자, 라는 말이 있다. 어른들 말에는 도통 귀를 기울일 줄 모르고 제 잘난 맛으로만 사는 젊은 것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테지만, 일단 ‘개 팔자’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좋은 뜻이 아니리라는 것쯤이야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맞다. 댑싸리 밑의 개팔자란 말은 보잘것없는 놈이 뜻에도 없는 행운을 만난 것을 비웃는 말로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비루먹은 개새끼가 될 것인지, 아니면 겸양을 지키고 팔자와 푼수를 아는 햄스터가 될 것인지는 우리 동족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도 언제나 경계해야 할 사안이로다.


나? 나야 걱정할 일이 없다. 뜻밖의 행운 뒤에는 언제나 불행이 낄낄거리며 장막 뒤에서 발톱을 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새옹지마란 말도 있지 않는가? 먼 옛날 어느 나라에서 어떤 햄스터가 키우던 말이 다리가 부러졌는데, 그 다리 부러진 말이 절룩거리다가 굴을 파고들던 고양이를 물어죽였다 – 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재앙 뒤에 복이 있고, 복 뒤에 재앙이 있으니 언제나 평정심과 경계의 끈을 놓지 말라, 뭐 이런 소리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위대한 가문에서 나면 기본적인 고사故事정도야 기본으로 꿰고 있는 법이다.


어머머자기야얘좀봐너무귀엽다 볼이빵빵해


저 멍청한 암컷 인간이 나를 구해준 것은 좋은데, 남이 밥 먹을 적에 흉측한 면상을 들이대지 말라는 것 정도야 아무리 못 배워먹은 인간 족속이라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실로 인간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생김새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첫째로, 지나치게 크다. 지나치게 크다는 것은 밥도 많이 먹어야 한다는 뜻으로, 널리 번창하고 번식하기에는 참으로 불리한 조건이다(그럼에도 온누리에 우글우글거린다는 점에서, 사실 인간은 메뚜기와 동류가 아닐까 하고 나는 궁리했다. 메뚜기라면, 우리 햄스터들도 잘만 하면 해치울 수 있는 무리가 아니던가?) 둘째로, 무릇 제대로 된 짐승이라면(그런 의미에서 날짐승은 제대로 된 짐승이 아니다) 네 발로 땅을 우뚝 밟고 서 있어야 할 법인데, 위태위태하게도 허우적대며 두 다리로만 걷는다. 셋째로, 눈, 코, 입 할 것 없이 넙데데한 얼굴에 죄다 뭉쳐 있다. 이것이야말로 끔찍함 중에서도 제일가는 것인데, 저것은 실로 조물주의 실패라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냄새도 제대로 맡지 못할 것이요, 심지어 우스꽝스럽게도, 귀는 대가리 양측에 붙어 있어서 움직일 수도 없게 되어 있다. 그 눈은 또 얼마나 역겨운지! 데굴데굴 이리저리 굴러대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훑어 대는데,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유리벽 너머까지 들릴 지경이다. 그 외에도 쓸모없이 길다란 네 다리, 듣기 싫게 깨지는 목소리 등 할 말이야 많지만, 존경하옵는 독자들의 비위를 더 이상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기에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여하튼,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도 나는 갑작스레 주어진 구원을 반겼다. 불평할 거리야 찾으면 많았지만 – 바닥재는 건조하고, 쳇바퀴는 삐걱거리고, 사료라고 넣어 준 해바라기씨는 바짝 말라 씹는 맛이 없었다 – 그래도 언제 먹힐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여기서 힘을 좀 비축해 두었다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자. 단박에 뛰쳐나가 보이겠다. 멀찍이서 비늘 덮인 놈이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나는 오히려 보란 듯이 두 볼이 터지도록 씨앗을 밀어 넣었다.

“뭘 보니, 이놈아.”


꿀꺽, 하고 입 안에 든 것을 삼키고 나는 도전적으로 말을 붙였다.


탁, 탁, 탁.


저놈의 꼬리치는 소리. 아니, 주둥이도 있고 혀도(비록 흉측하게 갈라지기는 하였으나) 있는데 왜 뚫린 입으로 말을 안 하느냔 말이다. 고양이가 물어갔나? 고양이도 야속하다, 물어갈 작정이었으면 혀뿐만 아니라 혀에 달린 몸뚱이도 통째 물어갈 것이지.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라구, 이 역겨운 놈아. 왜, 말을 하기엔 또 피가 덜 돌았니?”

말하며 나는 놈의 머리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동그랗고 작은 태양을 바라보았다(인간의 재주란 실로 – 이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 놀랍다. 태양이, 태초에 떠올랐던 태양이 저 작은 우리 위에 불타고 있다니!).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지금쯤 피는 충분히 돌았을 테다. 말인즉슨, 저 악마의 비열한 농간에 넘어가기가(물론, 내가 그럴 공산이야 없지만!) 보다 수월하다는 뜻이리라. 정신을 바짝 차리자.

그러나 간악한 혓바닥을 놀리는 대신 놈은 여전히 꼬리만 심술궂게 – 그래, 심술궂게 – 내려치고 있었다. 에이, 밥맛 떨어지게.


“이보라구, 남 밥 먹는 게 안 보여? 왜 자꾸 어수선하게 소란을 피워?”


“소란은 무슨.”


스산하고 음산한 저놈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털이 바짝 곤두선다.


“그러면, 네놈이 하는 짓이 훼방이 아니면 무어야.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둬.”


“자주 와.”


사회생활이라곤 알지도 못하는 벼락맞을 족속이, 여하튼 간에 비늘 덮인 족속들은 제 할 말만 지껄이고 만다. 어쩔 수가 있나, 이런 상황에서는 교양 있고 우월한 족속이 어느 정도 양보를 해 줘야 하는 법이다.


“뭐가?”


“인간 암컷.”


“와서 아주 잘 됐지. 자칫하면 그 잘난 주둥이에 나도 들어갈 뻔 했는데.”


“안 좋아.”


나는 갑작스레 화가 치밀었다.


“안 좋긴, 뭐가 안 좋아, 이 빌어먹을 놈아, 내 동족을 세 마리나 처먹고서도 남은 한 마리 삼키지 못해서 그게 그리도 불만이냐? 오냐,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라, 기꺼이 네놈 뱃가죽 속에 들어가 안에서부터 네놈 내장이란 내장은 죄다 파먹고 남은 뼈를 쌓아다 내 둥지로 삼겠다!”

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더욱 분개한 나는 목이 터져라 욕설과 저주를 내뱉었다. 내 손해지, 뭐. 배가 고파 다시 씨앗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을 때쯤, 더욱 열이 받으라는 속셈인지 뭔지, 한참을 다물고 있다가 놈이 다시 주둥이를 열어 쉿쉿거렸다.


“저 인간, 날 싫어해.”


그럼, 정신 똑바로 박혔고 두 눈이 멀쩡한 짐승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당연한 소릴.”


놈이, 순간 고개를 똑바로 들어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본능 때문에 순간 공포가 치밀었지만, 놈과 나 사이에는 유리 벽만 해도 두 개, 기둥만 해도 여덟 개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나는 다시 대담해졌다.

“당연하지 않아.”


“당연하지, 당연하고말고. 겉모습이든지 식성이든지 똑같이 혐오스러운 네 놈을 싫어하는 일이야 제대로 된 짐승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야!”


“밖에서는, 그럴지도.”


“뭐?”


“너도, 나도, 여기 있고 싶어 온 것이 아냐. 주는 대로 먹고, 넣는 대로 잔다.”


“그래서, 주는 대로 아무 생각도 없이, 죄책감도 없이 내 동족들을 집어삼켰나?”

“밖에서라도 나를 원망했을까?”


“그럼, 원망하고말고. 저주하고말고. 네 자손과 그 자손까지!”


“너희 족속도 사막을 다닌다. 사막을 다니며 더 작은 짐승을 먹어. 원래 그런 법이다. 나는, 아니, 너도, 그렇게 태어났어. 그래야만 해.”


“간악한 혓바닥을 놀리는 짓은 그만 해라! 너 따위와 같도록 나를 묶지 마!”


“여기선, 내가 바란 적도 없는 곳에서, 바란 적도 없는 존재에게 내 존재를 심판받아야 해. 나는 징그럽지 않아. 혐오스럽지 않아.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


저딴 놈과 대화 자체를 시도한 내가 멍청한 놈이지. 나는 재빨리 쳇바퀴에 올라탔다. 드르륵거리며 덜컹대는 낡은 쳇바퀴 소리가 이때는 반가웠다. 분노와 증오를 삭이기에도, 도움이 되었다.


“당연하지 않아.”


놈이 꼬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탁, 탁, 탁, 탁. 모래바닥에 끔찍한 소음이 한참이나 울려퍼졌다. 쳇바퀴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아무렴 좋다. 건강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때가 어찌 되었건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니까.


그래, 당연하든 말든 어쩌든 간에 아무려면 좋다. 나는 조상의 명예를 걸고, 언제가 되었든 네놈 눈알을 파먹을 테니까.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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