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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미 Aug 07. 2020

아기가 집에 왔다.

아기 돌보는 게 무서웠어요.

갓 태어난 아기와 집으로 왔다. 내가 본 육아 서적에선 집으로 온 첫날, 아기를 데리고 이방 저 방 다니면서 설명해주라고 했다. 그래야 아기가 집을 어색해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다나. 아무튼 그 서적을 본 대로 나도 이방 저 방 다니면서 아기에게 말했다. 


아가야.

여기가 엄마 아빠 자는 방이고, 

여기가 로건이 네 방이란다. 

호호호,

아기는 진짜로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줬다.

처음 아기에게 뭔가를 중얼거려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정말이지 이런 건 너무 오글거린다. 특히 처음에는 오물오물 입을 떼는 것조차 어렵다. (물론 자고 있는 남편이 깰 정도로 숙련되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방을 설명하는데, 아기는 불편한 것 같았다. 졸린가? 배고픈가? 


흥애흥애흥애,

시작된 것 같았다. 아기와의 일상이.

 

나와 남편은 코로나로 인해 하필 (덕분에) 일이 정말 없었다. 자연스레 육아가 남편과 나 위주로 흘러갔는데, 우리 둘의 대화 중 가장 많은 것을 차지한 비중은 바로 아기의 의중 파악에 대한 토론이었다. 어떤 영상을 보니 아기의 소리 별로 Rrr 사운드가 많으면 졸리고, Hhhh 사운드가 많으면 배고픈 거라는 그런 정보를 확인하여, 우리는 열심히 R과 H를 확인했다. 결과는 물론 꽝이었다. (아무래도 그 영상은 미국 영상이었으므로 미국 아기 버전이라 틀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아기는 계속해서 뭔가 표현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잘 몰랐는데, 그것을 깨닫기까지가 한 달의 반 이상은 걸린 것 같다. 제일 어려운 것은 아기의 잠투정 대응인데, 나는 계속해서 배가 고픈 줄 알고 젖을 물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잠깐 밖에 나가서 나 혼자 아기를 보고 있었는데, 유래 없이 아기가 엄청나게 울기 시작했다. 기저귀? 아니었다. 분유? 아니었고, 잠? 흔들흔들 줄곧 안아도 주고 바운서에도 올려놨는데도 아니었다. 타이니 모빌이라도 봐야 하나? 


3시간이 넘도록 아기가 울었다. 대천문이 푹 꺼지도록 울었다. 어디가 아픈가? 남편이 오면 같이 병원이라도 가야 하나, 하면서 발을 동동 거리고 있었는데, 나도 너무 지쳐서 우는 아기를 내 배 위에 올려두고 소파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미안했다, 그땐.


그때부터 아기는 세상 평온하게 내 배 위에서 잠을 자는 게 아니겠는가. 


뭐야, 잠투정이었어? 

근데 왜 내가 재우려 할 땐 안 잤어? 

아마도 그땐 그런 무드가 아니었겠지. 아기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니까. 

아니면, 내가 제대로 못 재웠거나. 


혼자 아기를 보다 보면, 내 짐작이 맞나, 틀리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다. 이렇게 하면 되나? 그리고 매번 두려움에 봉착한다. 내가 혹여나 아기를 잘못 안아서 아기를 다치게 하면 어쩌지? 아기가 자다가 갑자기 숨을 안 쉬면 어떻게 하지? 


신생아를 혼자 볼 때에는, 손목이나 허리가 아파서 아기를 안기가 힘들어, 정도의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기가 불편할 때에 내가 올바르게 대처를 하고 있나?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자신감의 결여와 혹여나 아기가 어떻게 될까 봐 하는 두려움. 그것이 문제였다. 


아기를 돌보는 건 스릴 있고, 무서웠다.

그렇게 몇 번의 겨울밤이 더 지나 간 후에 우리는 봄을 맞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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