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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미 Jul 22. 2020

아빠의 성수동 공장

나에게도 생경한 솜

저희 아버지는 솜 공장을 운영하십니다.

라고 하면면 모두가 "솜?" 하고 반문한다. 

"그러니까 하얀 솜이요?"

"네, 맞아요. 그 솜이요. 이불이나 베개에 들어가기도 하는 그 솜이요."


그러면 그제야 아~ 하고, 알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두가 솜틀집에서 솜을 트시나요? 하고 다시 물어본다. 

아니요, 진짜 솜을 만든다고요. 솜을 트는 게 아니라 그 트는 솜을 진짜로 만들어요. 진짜 솜이요. 

이런 솜을 만든다. 진짜 솜.

모두가 매일같이 솜을 쓰고 있는데, 솜이라는 단어가 낯선가보다. 실은 나에게조차도 늘 생경한건 마찬가지다. 에.. 한 글자인데, 발음이 좀 이상한것도 같고, 삿갓 같이 다들 알지만 입 밖에 내어 본 적 없는 그런 단어. 솜 공장 딸인 나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더 그렇겠지. 


아빠는 그런 솜을 30년 동안이나 만들어왔다. 매일 같이 커다란 트럭에 솜의 원료가 되는 화이버를 싣고서. 30년 전, 아빠는 성수동 안쪽의 한강이 마주한 뚝방 골목에 공장을 지었다. 나는 고작 대여섯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공장을 지은 아빠가 어느 박람회에 나를 데려갔던 것을 기억한다. 거기서 역사적으로 우리 공장의 첫 번째 솜 기계 계약을 했고, 실제로 공장 지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커다란 소리로 드르렁 거리는 기계가 들어왔다. 그 기계와 더불어 아빠의 솜 공장은 묵묵히 솜을 만들어냈고, 나와 내 동생을 키워냈다. 

이런 옛날 타일 건물이다.


솜은 하나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여러 갈래로 쓰인다. 


어느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손님의 목덜미에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터는 솜, 어느 약사의 면봉솜, 어느  의사의 알코올을 바른 솜, 추운 겨울 주택의 동파를 방지하기 위한 솜, 종합비타민제의 약병에 들어가는 솜, 어느 아이가 잠을 잘 때 함께하는 인형의 솜, 크리스마스트리 위에 눈처럼 소복이 올리는 데코레이션 솜. 


또 솜은 하나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여러 재료로 만든다.


일반적인 화학솜, 양털로 만든 양모 솜,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든 솜. 거기에서도 가는 솜, 성긴 솜, 몽글몽글한 솜, 무거운 솜, 가벼운 솜, 터치감도 재질도 다양하다. 거기에 기능성 솜도 있다. 이를테면 진드기를 방지한다던지, 아토피를 예방한다던지.. 후, 정말이지 솜은 아주 다양하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생각보다 사람들은 다양한 곳에 다양한 용도로 솜을 사용하고 있었다. 


솜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솜은 모두 하나같이 새하얗다. 그리고 포근하다. 어릴 적 줄곧 아빠의 공장에 놀러 다니면서, 그 화이버 위에 드러누워 한 손으로 화이버를 만지작 거리며, 내가 구름 위에 있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달콤한 상상을 내 방에서도 은밀히 하고 싶어, 화이버를 한 움큼 숨겨서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가려고 하면, 내 옷 어딘가엔 꼭 화이버 뭉치가 붙어 있어서 내 소중한 주머니를 아빠한테 들키고 말았다. 아주 큰 소리로 드르렁 거리는 솜 기계와 상관없이, 공장에서 갓 나온 솜은 부드럽고 포근해서 할 수만 있다면 그 솜들 위에서 잠들고 싶었다. 그 부드러운 솜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아마 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난 그렇게 솜 공장의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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