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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Dec 07. 2024

내란의 부역자가 될 것인가

쓰지 않으면 마음의 빚이 될 것

2024년 12월, 대한민국에 살며 작금의 상황 속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브런치에 일상을 쓴다면, 훗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했나'하는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미약하지만 이렇게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나서서 지켜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친위 쿠데타 같은 상황에서
국민을 지켜야 할 임무는 외면해 놓고,
이제 와서는 탄핵 트라우마를 운운하며
오히려 자신들을 지켜달라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국민들 앞에서 트라우마라는 표현을 꺼낼 자격이 있습니까?
군사독재에 오랜 세월 억압당했고
심지어 계엄군에 의해 학살당한
진짜 트라우마가 있는 무고한 국민들이
다시 총 든 계엄군에게 위협당했는데,
어떻게 지금 그 표현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습니까?
몇 년 정권을 잃고 자리를 잃었던 게 트라우마라는 겁니까?
대체 정치를 왜 하는 겁니까?
내란죄 피의자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국민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합니까?


2024년 12월 6일 MBC 뉴스 앵커의 촌철 같은 멘트다. 계엄 해제를 의결해야 할 급박한 순간,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은 과연 어디서 무얼 했나? 알고도 행하려 하지 않은 당신들. 계엄포고문을 보고도 항명하지 않은 계엄 사령관과 다를 게 무언가? 계엄군이 몰려오니, 모두 끌어내고 체포한다고 하니, 혹시 안전한 곳에 은신해 있기로 했던 것은 아닌가? 그들은 안다. 尹의 행위가 내란이고, 충분히 탄핵 사유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끝내 파면을 피하지 못할 것을. 그러니 트라우마 운운하며 탄핵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엔 다른 세상이 있다. 혹시 모른다. 어쩌면 독재 시절의 장기 집권을 꿈꾸는 지도.


군 장교로 복무하는 아들과 아버지의 통화 내용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아버지는 비상계엄 소식을 전하며 ‘네 목숨 지키라’고 울먹인다. 그리고 신신당부한다. “절대 민간인을 해치지 마라. 소대원들 잘 지키고.” 듣는 내내 눈물이 솟고 마음 깊은 곳에서 격한 통증이 밀려온다. 트라우마는 이런 것이다. 왜 평범한 시민들이 다독여 묻어둔 참담한 기억을 끄집어 내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하나? 권력자가 저지른 악행의 후유증은 약한 소시민의 몫이다.

https://youtube.com/shorts/WqWWQePEIhs?si=vIyJPTjPQG4RTL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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