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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Aug 21. 2024

밖에 뭐가 있니?

우주에서 헤메다 만나자

잠을 줄여가며 마들렌을 굽던 열네 살 소녀는 열다섯 살이 되자 인싸가 되었다며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눈물로 마멀레이드를 만들던 주인공의  그림책 <모두 가버리고>의 이야기는 더 이상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레시피 책을 뒤지며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그람책 속 주인공은 이제 엄마인 내가 되었다. '기다림'이라는 행위는 나에게 낯선 것이다. 마멀레이드가 충분히 수분기를 날려버리고 본연의 맛을 유지한 채 쫀득하고 깊은 맛을 내려면 불은 뭉근하게 한 채로 적어도 2시간 이상, 그 옆에 긴 주걱을 든 나는 틈틈이, 그것과 함께 하며 깊은 사유와 무아지경의 시간도 함께여야 가능하다. 

혼자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성장'을 가져다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는 그녀에게 '독립'이라는 자유는 엄마인 내가 보기에 너무 위험하지만 가족에게 떨어져 나가 있는 그 시간은 분명 그녀를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도 잘 안다. 그녀를 걱정하며 나는 오늘도 마멀레이드를 만든다. 엄마도 자식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이렇게 혼자인 내가 너무 외롭고도 불편한 것이다. 

아이들이 연착륙하듯 자연스럽고 건강한 독립을 해내는 것이 부모의 과업이라고 그러던데. 벌써 때가 된 것인지.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녀(내 아이)를 찾느라 매일이 분주하다.  책 속 내용처럼 가끔 함께고 늘 혼자인 내가 되었다.

특히나 올여름 방학은 인생 처음 맞는 아이의 '화려한 외출'이었다. 아이는 그것이 꽤 좋았고 성공적이라 생각했는지 오전에 좋아하는 스타일로 변신을 하고 엄마 나 ***이랑 놀다 통금직전에 올 거니까 찾지 말라고 통보한다.  

"금쪽아, 하루종일 어디서 무얼 하고 노니? 엄마는 놀라고 돈 줘도 그렇게 맨날 못 놀아"

"친구들이랑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 재밌어 그냥 " 

"그러니까 뭘 하면 그렇게 재밌냐고!"

"나는 노는 게 너무 좋아!! 집에 있으면, 엄마한테 책상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 나 이제 공부하기 싫으니까 책상에 앉을 일도 없어"

내가 바짓가랑이 붙잡고 공부시키는 것도 아닌데 눈에 불을 켜고 나간다.  공부하기 싫다는 말에 또 세상이 무너진다. 겨우 중학생이 공부가 싫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노력해서 자신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도 있고 그 시간에 투자하는 성실한 친구도 있으니 무조건 노는 친구들과 성적이 같으면 세상은 또 불공평하지 않을까 중얼중얼 이야기해 보았는데 튕겨져 나가는 텍스트가 눈에 보인다. 

이 녀석의 화려한 외출이 계속될수록 나의 불안을 점점 커져만 갔다. 어린이처럼 핸드폰을 검사할 수도 없고 어디 가는 곳마다 보고하라고 할 수도 없다. 놀고 온다는 아이는 10시 통금시간이 임박해서야 신데렐라처럼 허겁지겁 돌아오는데 하루일과를 다 마치고 나서 밤에 보는 아이의 얼굴에 '째지게 놀았다'의 희열이 가득 차있었다. 

한국에서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다. 왜냐, 무서운 애들 중2 애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지. 급변하는 시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이건 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다니는 걸까 도무지 엄마는 알 수가 없다. 




최근 가장 위협적인 행동을 가했는데 도리어 내가 공중분해 될 뻔했다. 그녀의 애착폰을 압수하려 들다가 눈에 흰자를 드러내며 자신의 권리를 뭉개는 엄마는 아동학대범이라고 신고를 하려는 것이었다. 

너처럼 화장 떡칠하는 아이가 무슨 아동이냐 넌 이미 아동이 아니지 않으냐 뻔뻔하다고 몰아붙이다가 112를 누른 아이, 본인도 놀랐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 저... 저.. 그러다가 끊었다. 


상담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폰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요, 그냥 보여주고 싶었어요. 엄마가 이만큼 화났고 폰에 중독되어 있는 네  모습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니 조절해서 써보자, 저는 이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

"그럼 그냥 그렇게 말하고 문 닫고 나오셨어야죠. 어머님이 전쟁선포한 거나 마찬가지네요.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이 생명줄이에요. 건들면 큰일 나요"


앞으로 갈길이 구만리다.

나는 얼마나 더 사리를 만들어야 하는가. 

현명해지고 싶다. 내 일생 행운이 남아있다면 오늘 다 몰아쓰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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