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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un 25. 2019

엄마,   
반짝이는 걸 보니 마카오 생각이나

지난 여행 파헤치기 : 마카오 편 01

지난 5월, 두 아이를 데리고 가족 여행으로 마카오에 다녀왔다. 11년 만에 마주한 마카오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때가 화려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훨~씬 더 화려해졌구나. 이것이 늦은 밤 공항에서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의 첫 느낌이었다. 싱그럽고 활기차던 대학생 시절, 조금 특이한 기운이 있었던 O 교수님의 추천으로, 같은 연구실 친구들과 함께 마카오에 가게 되었다. 많은 것이 풍요롭지 못하던 대학생 시절이라, 낡은 호텔에서 지내며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로 떠오르던 이 도시를 잠시 경험할 수 있었다. 솔직히 그 이후 다시 가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시 마카오 땅을 밟게 된 건 순전히 LCC 항공사의 프로모션 덕분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한국 시각으로 새벽 2시 정도. 너무 늦은 시간이라 우리는 얼른 잠부터 청했다. 다음 날 눈을 떠 창 밖으로 마주한 광경은 정말이지 으리으리했다. "우와~"가 절로 나오는 규모의 호텔들과 부대시설들. 그 뒤로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이 눈앞에 한 장의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졌다. 흐린 날씨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회색 빛의 도화지 위에 반짝이는 금박의 블록 몇 개를 척척 올려둔 것 같았다. 남편도, 율과 린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뭔가에 홀린 듯 한참 동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뜬 아침, 바깥 첫 풍경 감상 중

아침을 먹자마자 후다닥 준비를 끝내고 향한 곳은 호텔 내 수영장이었다. 갤럭시 호텔 계열의 호텔을 숙소로 정한 것은 80프로 이상이 바로 수영장 때문이었다. 많은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 이 곳의 수영장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글을 확인하고 예약했기에 기대가 컸다.


짜잔~ '역시는 역시'라고 하더니! 풀장에 들어서자마자,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눈 앞에 마주했을 때의 짜릿한 희열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괜히 '대륙 스케일'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다양한 깊이의 풀, 유수 풀, 분수가 나오는 유아용 물놀이장, 모래사장까지 갖추어진 얕은 풀, 인공 파도 풀, 자쿠지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오랜만의 물놀이 이기도 했고, 시설이 워낙 훌륭하다 보니 율이는 신이 나서 퐁당거렸다. 나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율이는 이미 초 흥분상태였다. 쉬지 않고 아빠를 끌고 다니며, 이쪽 풀에서 저쪽 풀로 신나게 다녔다. 린은 큰 규모의 수영장이 조금 무서웠는지 초반에는 찰거머리처럼 나에게 안겨있었지만, 워낙 물을 좋아하다 보니 금세 친숙해졌다. 아직 흐린 초 여름 날씨라 다행이었지, 날이 조금만 더 더웠다면 여기서 주~욱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설이 크고 물이 깨끗한 것도 좋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니 풀장마다 라이프 가드들이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 지켜보고 있는 것이 든든했다.

이 풀에서 저 풀을 오가며 신나게 물놀이 중

사실, 마카오의 본모습은 해가 지고 호텔들이 라이트업이 된 이후부터였다. 대부분의 호텔들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골드 베이스 조명을 하고 있지만, 때에 따라 붉은색으로 또 푸른색으로 조명을 다양하게 바꾸어가며 여행자의 시선을 끌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매일같이 저녁 식사만 끝내면 바로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매일 밤 침대 위에 옹기종기 모여 창문 너머로 야경을 감상했다.


다만 내가 느낀 마카오의 밤은 도쿄의 화려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와도, 싱가포르에서 본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풍경과도 달랐다. 수많은 카지노와 호텔, 대형 쇼핑몰이 대표 상품이 되어버린 황금 도시답게, 지극히 인공적이고 건조한 느낌을 가진 밤의 모습이었다. 상당히 멋지긴 하지만,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밤 풍경은 아니라고나 할까. 

창 밖을 바라보다 넷이 사진 찍기 성공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에게 이 조명들은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다. 아파트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저녁 산책을 하는데, 가로등 불빛을 보고 있던 율이 "엄마, 이렇게 반짝이는 걸 보니까 마카오 생각이나. 우리 또 언제 마카오 갈 거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이제껏 다녔던 여행들에 비해 크게 하는 일 없이 단조로운 일정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별로 남는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부분을 기억해준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어쩌면 여정이 심플했기에 율이에게는 이런 시각적인 여행의 잔상이 더 짙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율이는 여러 번 "엄마, 반짝이는 걸 보니까 또 마카오에 가고 싶어 졌어." 라며 지난 여행을 떠올리는 듯했다. 덕분에 나에게 이번 마카오 여행은, 현지에서의 추억들 보다는 다녀온 이후에 율이가 해준 말이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어버렸다. 여정이 끝났다고 해서 그 여행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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