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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May 03. 2024

마라톤 주로 에 선 너를 보며

2024 서울하프마라톤 관전기 

지난겨울부터 너는 훈련에 매진했다. 20대 후반 꽃다운 너는 눈데 띄는 외모로 남산의 업힐을 오른 뒤에도 그렇게 빛나는 방울을 뿌렸더랬지. 그래. 너는 취미라고 들어왔던 러닝크루에서 어여쁜 외모만큼 운동기량도 빼어나 사람의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다 달리기에 진심이라는 자세까지 갖추었으니, 나는 네가 몹시 마음에 들었으니 우리 나이차이만큼의 거리를 애써 유지했었다. 네가 부상을 겪기 전까지는 그랬다. 


너는 지난겨울 내내 훈련을 열심히도 한다 들었다. 유난히 춥기도, 눈도 많이 내렸던 겨울을 지나오며 힘들다는 LSD(장거리 훈련)이나 마라톤 대비한 자세 교정 훈련 등을 빠지지 않고 찾아다니는 모습이었다. 페이스, 피지컬, 집중도까지 갖춘 네가 열심히 준비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멀리서 보며 응원하는 엄마 미소를 보였다. 3월에 있을 동아 마라톤에 풀코스 마라톤에 참가한다는 너에게 나는 동대회에 나갈 거면서도 '같이 뛸래?'를 말하지 못했다. 나보다 훨씬 잘 뛰는 너인데 내가 방해가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다. 


겨우내 준비했던 네가 정작 대회 당월에 들어서 모습이 안보이더라. 그럴 애가 아닌데, 정기전에서도 너를 찾을 수 없자 나는 인스타를 뒤졌다. 진지하게 자신의 러닝훈련을 털어놓던 네 공간이 며칠 조용하더라. 갑자기 네 피드가 올라왔다. 호감을 느끼는 이성도 아닌데, 두근거리며 보았던 네 피드에는 부상소식이 남겨져 있었다. 너는 장경인대와 고관절 염증이 생겨 저주파치료를 받고 있다며 너무 아프다고 우는 이모티콘을 반복해 남겨두었다. 대회가 목전인데 아팠구나. 


당시 나도 비슷한 심경이었다. 겨우내 부족한 짬을 쪼개어 운동을 했지만 훈련량이 턱없이 모자라 이번 봄 시즌에 계획했던 대회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심하게 쿵쾅댔다. 내가 신청한 대회이고 안 나가면 그만인 것을 사형장에 끌려가는 심경처럼 하루하루가 곤욕이었다. 3월 대회를 직전해 가을에 신청받는 대회개최 측에 욕설을 뱉을 뻔했다. 왜 그렇게 미리 신청하게 두곤, 8만 원의 신청비도 받아가서는 지금 돌아설 여지조차 안 주는가 말이다. 아 이 모든 건 내가 자발적으로 한 일이지만 타인 백 명이 들러붙어도 나는 대회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러닝크루들은 큰 대회 전 참가자 위주로 단체카카오톡방을 별도로 개설한다. 이번 서울마라톤에서 우리 크루에서만 약 40명이 참가한다고 했다. 자신의 PB(personally best)를 위해 40명이 나섰다. 잘 뛰는 남자 크루들에 크루원들을 위해 페이스 메이커까지 자청하고 나섰다. 느슨한 연대가 끈끈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대회 참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후배 주자들을 챙겨주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내가 뛰기 힘든 고비에 그들의 힘이 내게 지원되길 바랐었다. 


너는 대회 전날 그 단톡을 나갔다. 조용히 나가기를 하기 전, 너는 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응원해 주고 훈련해 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너는 다음날 대회 참가 후기와 기록들이 올라오면 견디기가 어려울 것 같아 대화방에서 먼저 나가겠노라 했다. 그래 그 마음이 얼마나 아쉬웠으랴. 또 다리의 쑤심이 마음에서 비롯될 정도로 너는 지금 상황이 안타까웠을 거다. 대회에 나가 15km 지점에서 DNF(Donot finish)한 내 마음도 그랬다. 


몇 주가 지나고 정기런에서 다시 너를 보았을 때 우리 둘은 유산소를 하며 태웠던 체지방이 다시금 온몸에 자리에 오동통해져 있었지. 나는 네게 드디어 말을 걸 수 있었다. 치료 경과는 어떤지, 지금 몸 상태는 어떠한지 등등을 나누었다. 너는 예전의 잘 웃는 모습으로 다리 아픔도 치료 과정도 덤덤히 이야기해 주었다. 500을 뛰던 네가 700을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네게 기프티콘으로 러너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물했다. 러닝을 좋아하는 네게 좋은 흥밋거리가 되어주고 또 위로도 전해지길 바랐다. 


1주일 뒤 너는 책 잘 읽고 있다며 한층 더 가벼워진 모습으로 정기런에 나왔다. 당시는 그 전날은 내가 고양에서 하프 마라톤을 뛴 날이고, 다가오는 주말은 네가 서울하프마라톤을 참가하기로 계획되었던 주였다. 나는 네가 이번 대회에 참여한다는 말을 듣고, '응원요정'을 자처했다. 거리에서 네게 필요한 순간의 힘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나 말고 너를 응원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고양하프에서 PB로 러닝에 복귀한 나의 응원이면 너의 상처극복에 더 힘이 되지 않을까? 


출발점, 10km, 15km 지점까지 우리 응원팀은 크루원들이 나타날 때 흥분된 목소리로 함께 목청을 드높였다. 트래킹으로 네가 오는 속도를 알 수 있었지만 저 멀리서 네가 나타날 때까지 나는 안절부절못한 마음이었다. 드디어 나타난 너에게 우리는 소리소리를 질렀다. J야. 힘내. 끝까지. 할 수 있다. 파이팅 등등의 큰 소리에 마음이 전해지도록 목청을 높였다. 너는 우리를 알아보자마자 울컥한 얼굴이더니, 급기야는 눈물을 또 방울방울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 그런 너는 눈물만큼 빛이 나더구나. 그래 내가 본모습 중에 너는 가장 아름다웠다.


대회참여하는 사람들 모두의 얼굴이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힘들만한 지점에서 봤는데도, 곧 쓰러질 듯 기력이 소진된 사람도, 걷기를 선택한 사람들도 무거워지는 자신의 다리를 들어 올릴 힘을 짜내고 있었다. 너와 대회 참여자, 현장 진행 인력, 자원봉사자, 응원요정들까지 4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있었다.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기.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기. 내가 끝낼 때까지 대회가 끝나지 않은 것임을 인지하기. 그래 나는 주로 에 서서 너를 본 게 아니라 다른 나를 보았다. 너는 대단했고, 그런 너를 알게 되어 나도 영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러닝(running)을 러닝(learning)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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